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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정당(지역정당)’ 왜 필요한가?[연구세미나72-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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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정당(지역정당)’ 왜 필요한가?[연구세미나72-①]
  • 김윤미 기자
  • 승인 2023.07.05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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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회 주민자치와 정치, 그리고 ‘주민자치정당(local party)'

지역정당으로서 주민자치정당의 필요성이 강력히 제기됐다. 한국주민자치학회는 74주민자치와 정치, 그리고 주민자치정당(local party)'를 주제로 제72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를 중앙대학교 백주년기념관 9층에서 개최했다. 이현출 건국대 교수가 좌장을 맡은 이번 세미나에서 윤왕희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교수가 발제자로,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가 지정 토론자로 나섰다.

발제에서 윤왕희 교수는 현재 한국의 주민자치는 중앙정부, 지방정부가 허용하는 좁은 문틈 사이로 아주 답답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 위해서는 기존과는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치, 정당의 문제를 주민자치와 연관해 사고할 수 있으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더 크게 앞으로 나가갈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서두를 꺼냈다.

 

주민자치는 본질적으로 정치적탈중앙정치+탈지방행정 통해 지방정치영역으로 가야

 

윤 교수는 주민자치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자치권은 주민에게서 나오며, 주민자치는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지방의 정치이다. 주민주권론은 주민이 자치의 주체로서 최고 의사 결정권인 주권을 행사한다는 의미다. 주민 중심의 주민자치는 주민의 정치 참여 확대와 주민에 의한 의사 결정권의 강화로 이해할 수 있다라며 그러나 그동안 지방에는 행정만 있고, 정치는 없는상황이 지속됐다. 주민자치는 정치권력의 배분 측면에서 보자면,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주민이라는 세 주체가 존재한다. 주민자치의 강화는 세 주체 사이의 권한 재분배를 의미한다. 이제 주민자치는 중앙정치’+‘지방행정을 통해 지방정치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한다. 주민자치 운동의 방향 전환, 시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주민자치는 정치적 구성물로 이해해야 한다. 주민자치는 일정한 지리적 범위의 공동체 안에서 거주하는 주민들이 다양한 의견과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는 정치적 구성물이다. 공동체 내에는 수많은 필요와 요구들이 존재하는데, 복수의 요구들 가운데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는 정치적 선택이며 그 과정은 생생한 정치교육이다. 따라서 지방행정 중심의 주민자치로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라며 그러나 정부는 주민자치회의 정치적 성격을 부정하고 있다. 주민자치회의 정치활동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주민자치회에서 정치적 성격을 빼버리면 지방행정의 틀 속에만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주민자치 운동도 이 프레임 안에 갇혀있었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 이 같은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아닐까라는 아쉬움이 든다라고 밝혔다.

계속해서 윤왕희 교수는 한국은 오랜 권위주의 통치, 특히 유신시대의 영향 등으로 반정치적 성향이 강하다. 19세기에 토크빌이 관찰한 미국인들의 습속이 민주주의와 잘 부합하는 것이었다면, 현재 한국인들의 습속은 지극히 반정치적이다. 정치는 나쁜 것이며 정치가 개입될 경우 공동체의 일이 오염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라며 이러한 인식의 근원에는 그동안 중앙정치에 예속된 지방정치의 무기력이 존재한다. 지방정치의 예속화는 공천 문제에도 기인한다. 지방선거 공천은 중앙의 당 엘리트들(국회의원 및 당협위원장)이 자신의 권력자원으로 활용할 인물들을 충원하는 과정으로 변질됐다. 이러한 현상은 정당 공천이 기초의원 후보자에까지 확대된 2006년 지방선거 이후 심화됐다. 이로 인해 기초지자체 선거(기초단체장, 기초의원)에서 정당공천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지방정치에서 정당의 역할을 없애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 정당 공천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공천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게 문제다. 지방의원 선거에서 정당 공천을 배제하면 선거와 정치과정에서 정당의 영향력이 보이지 않게 된다. 정당 공천의 배제는 정치과정의 불투명성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정치 자체가 원천 봉쇄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짚었다.

 

현 정당법 상 지역정당 불가하나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기회의 창 열려

 

이와 관련해 윤 교수는 지역정당(local party)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주민의 의견을 조직하고 정치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정당정치‘, 그리고 이러한 정당정치를 지역 차원에서 구현하는 지역정당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자치는 정치 측면을 강조하는 주민자치와 행정 측면을 강조하는 단체자치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라며 여기서 지역정당은 지역을 중시하는 생활정치 정당으로 지역 주민들의 구체적 생활 단위인 지역에서 정치에 직접 참여할 기회를 확대한다. 특정한 지자체(특히 기초지자체) 내에서만 활동하는 정당으로서 실생활 정치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지방 뿐 아니라 서울시 자치구에서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현행 정당법 하에서는 지구당뿐 아니라 지역정당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왕희 교수는 정당법 상 정당 설립의 최소 요건이 있다. 중앙당은 수도에 소재해야 하고 5개 이상의 시도당을 가져야 하며 시도당 내 1000명 이상의 당원을 가져야 한다. 법 제도 상 전국정당만 존재할 수 있다. 이 요건들이 기성 정치인들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으나 신진 정치세력들에게는 매우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려 진입장벽이 높은 상황이다. 정당을 만드는 것도 살아남는 것도 힘든 일이다. 그래서 거대 양당 체계가 굳어지고 견고화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같은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윤왕희 교수는 지방자치법 전면개정으로 정치적 기회의 창이 열렸다라며 지방자치법 제4(지방자치단체의 기관구성 형태의 특례)의 내용을 언급했다. 이는 따로 법률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임 방법을 포함한 지방자치단체의 기관구성 형태를 달리 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주민투표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단체장 중심형, 의회 중심형, 단체장 권한 분산형 등 지방자치단체 기관구성의 다양화를 위한 근거 규정이 도입됐다. 이는 지방자치단체의 구성자치권(structural autonomy)으로 지역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지역의 실정에 맞는 통치체계를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현시점이 지역의 정당제도, 선거제도, 기관 형태 등의 통치체계를 선택할 수 있는 전환기적 상황이라고 본다라며 기회의 창이 크진 않지만 작게는 열려 있다. 이를 얼마나 크게 만들 수 있을지는 주민들 역량에 달렸다. 물론 국회에서 법을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주민들이 이 내용을 잘 모르고 따라서 어떤 내용이 더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윤왕희 교수는 주민자치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4가지 정치제도(기관구성 형태, 선거제도, 선거구 획정, 지역정당 제도)가 향후 지방자치단체 내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될 수 있도록 해야 지방자치법 개정의 당초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기관구성 형태를 선택하는 문제는 선거제도, 선거구 획정, 지역정당제도와 연동돼 있는 것으로서 주민자치를 강화하기 위해 함께 결정돼야 할 정치제도들이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주민자치정당, 주민자치의 직접민주주의 보완 역할

 

이어 윤 교수는 주민자치를 강화하는 취지에 맞춰 지역정당을 주민자치정당으로 명명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에서는 그동안 로컬 파티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적인 명명의 필요성도 없었다. ‘지방정당이라는 명칭은 중앙과 지방의 관계를 연상케 하는 종속적, 주변적 뉘앙스가 단점이다. ‘지역정당이라는 명칭은 지역주의가 강하게 각인된 한국적 현실에서 볼 때 의미의 왜곡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최근에는 동네정당이라는 명칭까지 등장하고 있지만 학술적 용어로 채택하기에는 적절해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지역주민들의 자치역량 강화와 정치적 대표체제의 변화를 의도하는 새로운 정당 형태임을 쉽게 부각시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로컬 파티주민자치정당으로 명명하려는 것이라며 “‘주민자치회등과 함께 일관된 용어체계로 편입될 수 있을 것이다. ‘주민자치정당은 자치와 정당을 아우르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직접민주주의적 요소와 대의민주주의적 요소를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민들에게 한층 더 높은 수용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주민자치정당의 제도화와 관련해 윤왕희 교수는 지역정당 시스템이 지방자치에 관한 법률과 조례를 통해 규정되면 이를 토대로 주민자치정당은 각 지자체의 관할 하에 다양하고 자유롭게 설립, 운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민자치정당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주민의 정치적 투입과정 제도화 통한 주민자치의 안정성과 책임성 확보 지역현안을 둘러싼 정책 경쟁 활성화 차원에서 강조했다. 윤 교수는 주민자치론은 주민의 참여를 강화하지만 주민참여의 제도화 즉, 주민의 투입 정치과정의 제도화를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주민은 복수이므로 정치학 관점에서 보면 이견과 갈등 그리고 균열이 불가피하다. 갈등의 제도화를 통해 자치의 영역을 제도화하여 투입의 정치과정을 안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며 고전 민주주의가 시민 모두가 참여하는 민주주의라면, 현대 민주주의는 정당이 정책 대안을 제시하여 경쟁을 하고 시민들은 대안들 중에서 선택하는 정치적 분업에 의한 민주주의다. ‘주민자치정당은 과거의 정당들과는 달리 지역 주민들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정당의 존재 이유를 입증하면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직접민주주의만으로 왜 부족할까? 이에 대해 윤왕희 교수는 참여의 폭과 깊이의 문제를 극복하기 어렵다. 주민자치회의 고질적인 문제도 참여의 활성화가 담보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특정 부류, 특정 성향의 사람들로 참여가 국한될 경우 직접민주주의는 오히려 주민의 의사를 왜곡할 수 있다. 전자민주주의(e-democracy)로 참여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견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전자민주주의는 참여의 문제를 극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더 악화시킨다고 본다. 자발적 참여의 문화가 보편화 돼 있지 않은 경우, 온라인을 통한 직접민주주의는 일부 강성 참여자들에 의한 공론장의 왜곡과 극단적 대립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주민자치정당을 통해 어떤 참여, 어떤 민주주의가 될 수 있을까? 윤 교수는 주민자치정당은 생활정치의 의제를 발굴해 내어 주민들의 고른 참여를 유도할 뿐 아니라 의제에 대한 실행력을 높여줌으로써 주민들로 하여금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이는 주민자치에 대한 신뢰를 향상시켜 나가는 선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제시했다.

계속해서 그는 주민자치정당은 기초자치단체 내의 모든 단위에서 활동하며, 하부 단위들과 상부 단위들의 연계성 및 체계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리, , 구의 형태로 최하위 단위에서의 활동이 중심이 되는 가운데 아래로부터 주민들의 의견과 요구를 구조화 해내는 작용을 하게 될 것이다. 기존의 정당들과는 달리 선거를 위한 정당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 내의 주민자치 활동이 중심이 된다라며 기존 정당들의 중앙당-지구당(당협)처럼 지배-종속의 관계가 아니다. 상부 단위가 하부 단위를 지배하는 관계가 아니라 순수하게 주민자치의 직접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역할이다. 주민자치정당은 주민자치와 관련된 실생활 의제에 집중하고 주민들과 활발하게 소통한다. 주민자치정당에게는 국고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고 순수한 자발적 결사체로 운영된다. 지역사회에서 경쟁력을 인정받는 정당만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한다면 정당 난립의 문제도 해소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민자치정당이라는 창의적 기획으로 주민자치의 새 돌파구 열자

 

끝으로 윤왕희 교수는 그래도 지금과 같은 수준의 정당을 과연 신뢰할 수 있나, 정당을 불러들이게 되면 주민자치가 오히려 난장판이 되는 것 아닌가, 한국에서 제대로 된 정당을 만든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정치나 정당보다는 중립적인 행정의 틀이 더 안전하지 않을까 등 여러 의구심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상만을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정당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정당을 없애버리거나 정당정치를 배제한다면 주민자치의 더 많은 가능성과 활력을 사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우리가 현재 목도하고 있는 한국 정당의 모습은 극히 부정적인 오작동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주민자치정당이라는 창의적 기획을 바탕으로 주민자치의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사진=문효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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