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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의 이야기 ‘수라’ ․ ‘206: 사라지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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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의 이야기 ‘수라’ ․ ‘206: 사라지지 않는’
  • 윤성은 영화평론가
  • 승인 2023.07.18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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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
Town in Movie

많은 영화의 배경이 마을이다. 영화 주인공들의 삶의 터전 역시 그들이 사는 마을이고 동네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배경이 되는 마을, 그리고 이웃들과 때로 갈등하고 협력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간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되기도 하고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앞으로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에서는 마을과 사람들의 케미스트리, 그들 사이의 교감과 성장, 변화를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 속에서 주민자치의 바람직한 방향, 때로 반면교사의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 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06, 한 다큐멘터리 감독은 어느 갯벌과 그 마을 사람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갯벌 간척사업과 그에 반대하던 사람들의 활동을 찍기 위해서다. 지역주민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갯벌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지만 정부는 방조제 건설을 강행했고,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갯벌 중 하나였던 서해안에는 33킬로미터가 넘는 방조제가 건설되었다.

사실, 공사는 아직 끝나지도 않았다. 확실한 것은 세계 최대의 방조제 건설은 곧 세계 최대의 생태 파괴를 의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자매처럼 지내던 마을 어민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후 충격에 빠져 영화도 포기하고 머릿속에서 갯벌을 지워 버렸다.

우연이었을까. 그 감독은 몇 년 전, 다큐멘터리를 찍다 포기했던 그 마을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오래 전, 주민들이 방조제 건설에 치열하게 맞섰던 그 갯벌에서 아직도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감독은 잊고 싶었던 기억이 떠올라 괴로웠지만 갯벌에 아직 국제보호종이 살고 있는 놀라운 광경을 보고 다시 기록을 시작했다.

그렇게 7년이란 세월이 흘러 지난 달 드디어 수라’(Sura: A Love Song, 2023)가 영화관에서 관객들을 만났다. 황윤 감독의 수라에 담긴 것은 1991년 착공되어 30년 넘게 진행 중인 새만금개발사업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은 수라 갯벌과 여기에 살고 있는 귀한 생물들, 그리고 2003년부터 갯벌의 생태계를 기록해온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하 새만금조사단’)의 이야기다.

 

수라갯벌은 살아있다

새만금조사단에는 작가, 목수, 인류학자, 전직 기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간척사업 발표 당시 정부가 내놓은 환경영향평가서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새만금의 생태환경을 조사하기 시작한 것이 모임의 시작이었다.

누가 알아주는 활동도 아니고 돈이 되는 사업도 아닌데 그저 이것이 가치와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여겨 기꺼이 청년 때부터 시간과 열정을 바쳐온 이들, 이제 그들은 중년이 되어 자녀와 함께 갯벌을 찾고 있다. ‘비단 위에 수를 놓다라는 의미의 수라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도 이 모임의 오동필 단장이다. 새만금조사단의 오랜 조사와 기록 덕분에 멸종위기 1급인 저어새부터 붉은어깨도요, 검은머리갈매기, 쇠제비갈매기,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쇠검은머리쑥새, 흰발농게 등 법정 보호종 40여 종이 수라에 서식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사실 정부는 수라갯벌이 보존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며 이곳을 매립해 신공항을 짓겠다고 선포한 상태다. 지척에 있는 군산 공항도 해마다 30억씩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 왜 또 다른 공항이 필요한지, 그것이 수라 갯벌만큼 가치가 있는 사업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논리적인 답변이 없다.

황윤 감독은 자신이 직접 수라에 가 보기 전에는 잘 몰랐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수라가 아직 살아있음을 눈으로 확인해야만 관심을 가져줄 것이라는 신념으로 장기간의 산통 후에 수라를 세상 밖으로 내놓았다. 그의 바람대로 수라는 갯벌 생물들을 오롯이 담아냄으로써 수라를 친근하게 만드는 동시에 이 갯벌이 살아있음을 제대로 증명해 보인다.

 

인간은 포기했지만 자연은 포기하지 않은 곳

이 영화의 첫 번째 미덕은 단연 갯벌의 아름다운 생태를 담은 촬영이라고 할 수 있다. ‘수라가 정치적이거나 선동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 또한 수라를 지켜야 한다는 말 보다 그 경이로운 풍광을 제대로 보여주는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영화를 반드시 영화관에서 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망원렌즈, 드론, 고속 촬영, 타임랩스 등 많은 장비와 기술을 동원해 찍어낸 장면들은 큰 자본을 들어간 BBC나 내셔널 지오그래피 채널의 다큐멘터리 못지않게 훌륭하다. 자연 다큐멘터리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로 알려진 김정근 촬영감독의 참여도 한 몫을 했다.

러닝 타임 내내 어떤 교과서나 TV 채널, 인터넷에서도 볼 수 없었던 해양 생물의 신비를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쇠제비갈매기 새끼의 보송보송한 털, 흰발농게의 깜찍한 눈, 검은머리갈매기의 혼인색도 신기하지만 러시아 툰드라에서 우리의 수라갯벌로, 다시 오세아니아 대륙으로 이동한다는 도요새 무리의 날갯짓은 뭉클한 감동까지 선사한다. 인간은 포기했지만 자연은 포기하지 않은 곳이라는 확신과 반성, 미안함이 동시에 밀려오는 장관이기도 하다.

이 다큐멘터리의 중심에는 오동필 단장을 비롯한 많은 단원들이 있다. 생물학자도 아닌데 단원들은 수라의 생물들 이름 뿐 아니라 그 습성까지도 다 꿰고 있다.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살아있는 것에 대한 애정 말고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열정적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 ‘수라에 등장하는 생물들은 모두 엔드크레디트의 출연자 리스트에도 이름이 올라가 있다.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는 따듯함, 그들과 계속 더불어 살고 싶다는 절실함이 잘 전해지는 대목이다.

 

‘206’ 이념 갈등으로 희생된 민간인들의 유해 발굴

수라와 같은 날 개봉한 또 한 편의 한국 다큐멘터리도 주목해 볼 만하다. 허철녕 감독의 ‘206: 사라지지 않는’(206: Unearthe, 2023. 이하 ‘206’)은 한국전쟁 당시 남한에서 이념 갈등으로 희생된 민간인들의 유해를 발굴해 나가는 영화다. ‘206’이라는 숫자는 사람 뼈의 개수를 의미한다. 전쟁이 아닌 무차별한 학살로 인한 희생이었고, 무고한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끌려 나갔다가 당한 변이었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부모나 조부모, 자녀였던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아직 학살 장소에 묻혀 있는 상태다.

군부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은폐되기도 했으나 유족과 시민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1기 진실화해위원회’(2005)가 출범되어 유해 발굴의 물꼬가 트이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에 해체된 후에는 정부 기관과 관계없이 결성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하 시민 발굴단’)이 이 작업을 해왔으며, 지금은 2020년에 출범한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와 함께하고 있다.

수라와 전혀 다른 소재의 영화지만 공통점도 많다. 이 다큐 또한, 우리 역사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가해자를 찾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유해를 발굴해 희생자들을 제대로 추모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는데 그 목표가 있다. ‘수라처럼, ‘더 늦기 전에라는 의식이 바탕에 깔려있는 것이다.

 

시민들의 자발적 모임, 엔드크레디트에는

무엇보다 이 영화도 시민들의 자발적 모임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 ‘수라는 오동필 단장과 그의 아들 승준, 그리고 황윤 감독 위주로 서술된다면, ‘206’은 몇몇 시민 발굴단 단원들의 인터뷰와 발굴 현장 스케치를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단원들의 상당수는 진실화해위원회 전직 조사관 출신들이고 유족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자발적으로 합류했다.

고고학자와 같은 유해 발굴 전문가부터 대학생까지, 나이도, 직업도, 사는 곳도 다르지만 이들은 공통된 목표를 위해 묵묵히 이 고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자신의 조상도 아닌데 형태가 남아 있는 작은 뼛조각은 물론 이 하나하나까지 맞춰가며 정성껏 유해를 모시는 모습만으로 가슴이 뜨거워진다.

또한, 이들은 유해를 수습한 뒤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약식 제례를 지내고 감식을 통해 유해를 가족 품에 돌려주기까지의 전 과정을 함께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망자의 두개골은 공포영화에서나 등장하지만 이 다큐에서는 전혀 무섭거나 자극적인 이미지로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발굴된 두개골들을 잔뜩 모아놓은 장면은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한편, 단원들의 피와 땀으로 얻은 결실이라는 생각이 들어 감동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206’의 엔딩 크레디트에는 각 지역별로 발굴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지역을 넘어 세상을 좀 더 살만한 곳으로 바꾸는 이들

수라‘206’에 등장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모임은 한 지역을 기반으로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지역이 처해있는 위기, 특정 지역들의 문제와 관련해 생겨났다. 그리고 이들은 세상을 좀 더 살만한 곳으로 바꾸어 나가고 있다. 첫 번째 본받을 점은 자발성이고, 두 번째 본받을 점은 이타심이다. 전국구 단체의 도움을 받았거나 이들의 활동을 가까이서 지켜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들도 똑같이 다른 지역의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필요할 때 기꺼이 나서줄 것이다. 현대 사회의 주민자치는 때로 공간적 개념을 뛰어넘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진=스튜디오두마미디어나무스튜디오에이드/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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