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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몽의 마을, 동상이몽의 영화 '바비' '킬링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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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몽의 마을, 동상이몽의 영화 '바비' '킬링로맨스'
  • 윤성은 영화평론가
  • 승인 2023.08.16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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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
Town in Movie

많은 영화의 배경이 마을이다. 영화 주인공들의 삶의 터전 역시 그들이 사는 마을이고 동네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배경이 되는 마을, 그리고 이웃들과 때로 갈등하고 협력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간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되기도 하고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앞으로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에서는 마을과 사람들의 케미스트리, 그들 사이의 교감과 성장, 변화를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 속에서 주민자치의 바람직한 방향, 때로 반면교사의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 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름 극장가 성수기의 초입에 핑크빛 영화, 아니 핑크색 영화가 상륙했다. 현재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여성 감독, 그레타 거윅이 연출하고 마고 로비, 라이언 고슬링 등 톱스타들이 출연한 바비’(Barbie, 2023)는 바비 인형과 바비랜드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기대가 컸던 만큼 개봉 한참 전부터 홍보에 꽤 많은 비용과 공을 들였다. 6월 말에는 마고 로비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고 극장가는 한 때 바비의 시그니처 컬러라고 할 수 있는 핑크색으로 물들기도 했다.

그러나 개봉(719) 이후 바비에 대한 한국 관객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못해 싸늘한 정도다. 개봉일부터 박스오피스 3~5위권에 머물며 기개봉작들에 밀리더니 1주일 동안 약 31만명 정도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고 점점 관객수가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매주 텐트폴 영화들이 줄이어 개봉하고 있으므로 만회할 기회는 아마 오지 않을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에서 이처럼 홀대받고 있는 바비가 북미를 비롯한 몇몇 국가들에서는 역대급 흥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비는 개봉 첫 주말에 15500만 달러(한화 약 1997억 원)를 벌어들이며 2023년 북미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경신한 데 이어 전세계 흥행 수익에서도 총 33700만 달러(한화 약 4323억 원)를 기록했다. 이는 동시기 개봉작이면서 올해의 기대작으로 손꼽혔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2023) 보다 2배 가깝게 높은 수치다. 또한 배급사인 워너브러더스 역사상 프랜차이즈 영화를 제외하고는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이며 호주, 브라질, 영국 등 총 18개 국가에서도 올해 개봉작 중 가장 높은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했다. 가히 바비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이런 반응에 힘입어 개봉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할리우드에서는 벌써 속편에 대한 이야기가 솔솔 나오고 있다.

 

화제작 바비흥행 둘러싼 나라별 온도차

같은 영화에 이렇듯 극과 극의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동안 한국관객들이 할리우드 영화보다 한국영화를 더 많이 사랑해온 것은 여기에 녹아 있는 우리만의 정서로 설명 가능한 측면이 있었다. 그렇다면 바비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정서가 있는 것으로 보아도 될 것인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국가들이 대부분 영미 문화권임을 감안할 때 충분히 설득력 있는 가설이다.

바비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에 대한 인용으로 시작한다. 유인원들이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신세계가 열린 것처럼 아기 인형만 갖고 놀던 소녀들에게 어느 날 바비 인형이 떨어지면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는 내용으로 패러디했다. 국내에서도 문화 콘텐츠에 대한 교양이 어느 정도 있는 이들은 대번에 알만한 패러디지만 관객들의 리뷰를 보면 그 기발함에 대한 감도는 영미문화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다음에 등장하는 신은 바비들이 살고 있는 바비랜드의 일상이다. 인종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만 바비랜드의 아름다운 바비들은 각자 자기가 원하는 바를 성취하며 즐겁게 살고 있다. 정치계, 법조계는 물론 다양한 전문직에 진출한 바비들은 일에도 파티에도 열심이고 슬픔이나 외로움 따위는 느낄 이유 없이 완벽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마고 로비가 분한 바비는 백인에 금발머리, 8등신의 비율을 가진 전형적 바비완벽함의 표본이다.

그런데 바비랜드에는 놀랍게도 불만을 가진 이들이 있다. 바로 바비()의 남자친구()()’이다. 전형적 바비의 남자친구인 전형적 켄(라이언 고슬링) 역시 멋진 외모와 능력을 가졌지만 그는 바비가 자기를 봐주지 않으면 스스로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바비가 다른 켄과 어울릴 때마다 질투를 하고 성질을 부리기 일쑤다. 바비에게 최고의 공간인 바비랜드에서 켄은 주변인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영화가 될 수 없다. 행복하기만 하던 바비는 어느 날부터인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사소한 일들부터 맘대로 되지 않으며, 슬픈 감정이 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발꿈치가 평평해지는 병에 걸린다. 바비는 이런 일에 경험이 있는 이상한 바비에게 병을 고치려면 현실 세계로 가서 자신의 주인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는 말을 듣고 먼 길을 떠난다.

바비가 켄과 함께 도착한 LA는 바비랜드와는 모든 것이 다르다. 남성들은 뻔뻔하리만치 의기양양하고 자신감에 넘쳐 있으며 모든 분야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데 반해 여성들은 그들 옆에서 심부름이나 하고 있는 신세다. 바비가 남성중심적 사회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 켄은 점점 기분이 좋아지고 에너지가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한국 관객들이 바비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

LA에서의 시퀀스는 북미 관객들이 가장 먆이 웃는 부분이기도 한데 그들의 문화권에서 남성들이 남성성을 드러내는 다양한 방식을 마음껏 희화화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맨몸에 무거운 금속 액세서리와 길고 화려한 모피를 두른다든가, 말과 영화 대부를 좋아하는 것을 남성성의 상징으로 여기는 모습 등이 그것이다. 현실 세계를 지배하는 남성들의 허세는 과장되어 있고 지극히 부자연스럽다. 켄은 곧 바비랜드로 돌아가 현실을 모델로 한 가부장제 마을, ‘켄덤(Ken+kingdom)’을 세운다.

여기서 현실 세계를 남성중심적이라 비꼬고 남성들을 희화화 시키는데 왜 북미 관객들은 성별에 관계없이 바비에 열광하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이것은 한국 관객들이 바비에서 공감하지 못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북미 관객들에게는 이런 신들이 유머와 재치로 받아들여질 뿐 시비나 공격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신랄한 정치, 사회 풍자 코미디에 익숙한 그들은 바비가 블랙코미디라는 장르 안에서 그 미장센이나 톤 앤 매너처럼 귀여운 풍자를 보여준다고 느낀다.

가스라이팅으로 켄덤의 일원이 된 바비들을 한 사람씩 교화시킴으로써 바비랜드를 되찾는다는 결말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다소 잠잠해지기는 했지만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우리 사회와는 많이 다르다. 이것은 어느 사회에 성평등이 더 많이 이루어졌는지와는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성평등을 반대해서가 아니라 오락 영화 안에서까지 젠더 담론을 생산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가진 이들에게는 바비가 사치스럽고 극성스런 교육 영화로 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단순한 유머 코드의 문제도 있다. 이것은 특히 이 영화의 형식과 연결된다. ‘바비는 엄밀히 말해 뮤지컬 영화는 아니지만 뮤지컬적 요소를 많이 갖고 있는 작품이다. 노래 가사로 바비랜드를 소개한다거나 영화 중간에 갑자기 춤과 노래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는 등 노래를 통해 인물의 상황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이러한 신들 또한 북미에서는 이 영화를 흥겹게 만드는 매력으로 받아들여졌다면, 국내 관객들에게는 다소 어색하고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뮤지컬적 요소에 대한 반응차이, ‘바비’-‘킬링 로맨스닮은 꼴

이러한 형식에 대한 반응차는 올 봄에 개봉한 킬링 로맨스’(Killing Romance, 이원석, 2023)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영화에 또한 중간에 뜬금없이 뮤직비디오 같은 장면을 삽입하며 웃음을 유발시키고자 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소수의 마니아들을 제외하면 어색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고 그 결과 약 2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75억원의 제작비가 든 작품에는 재앙이라고 할 수 있는 성적이다.

그러나 외국인 관객들이나 해외에서의 반응은 상반된다. 달시 파켓, 피어스 콘난, 제이슨 베셔베이스 등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비평가들은 이 영화에 극찬을 쏟아냈고, 우디네 극동영화제 상영 당시에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고 보면 킬링 로맨스또한 자신을 바비인형 취급하는 남편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아내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주제 면에서도 바비와 닮은 데가 있다.

특정 주제에 대한 가치판단을 제하고 정리해 보자면, 지역마다 다른 가치관은 바비랜드켄덤처럼 상반된 사회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같은 영화에 대한 각기 다른 반응도 문화권의 차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맥락에 있다. 생각과 취향의 차이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해해 보려 노력한다면 바비와 켄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세상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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