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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키워드로 본 제주특별자치도 리 주민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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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키워드로 본 제주특별자치도 리 주민자치
  • 김윤미 기자
  • 승인 2023.08.17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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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제주특별자치도.

제주, 특별, 자치, . 하나하나 간단치 않은 의미와 무게의 단어들이 4개나 합쳐져 있다. 제주라는 두 음절만으로도 이미 특별한데 자치가 있고 남다른 자연환경인 이기도 하다. 그래서 제주특별자치도(이하 제주도)는 지방자치, 그중 주민자치로도 특별한 지역이다. 공동자원을 기반으로 한 섬이며 주민자치, 마을공동체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행정동 단위로 구획된 다분히 행정편의주의적인 현재의 주민자치(위원)회와 달리 제주도의 주민자치는 전통적인 자연마을 몇 개가 모인 를 중심으로, 공동자원을 든든한 기반으로 하여 끈끈하게 구축되어 왔다. 물론 개발 붐이 불어 닥치고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전통적인 제주 리 주민자치에도 변화가 불가피하지만 이와 같은 마을공동체의 원형속에서 찾을 수 있는 시사점은 향후 통리 주민자치회의 방향 설계에 있어 발상의 전환점이 되거나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탐라,

대한민국 최남단에 위치한 특별자치도. 제주도를 포함하여 80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도 전체가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면적은 1849.02, 인구는 624394(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은 2개 시와 2개 군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200671일에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제주시와 서귀포시, 2개의 행정시와 7개 읍, 5개 면, 31개 행정동, 172개 행정리로 개편되었다. 564개 자연마을이 있다.

제주도의 옛 이름 탐라(耽羅)는 땅, 언덕, 읍성, 성곽, 국가 등을 뜻한다고 한다. 제주도 제1의 정체성은 일 것이다. 섬은 고립, 폐쇄의 의미까지는 아니더라도 독립, 개별성, 독특함으로 연결될 수 있다. 주위가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뭍(육지)과는 다른 환경과 문화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제주도는 4.3이라는 전대미문의 비극을 겪었다. 1947년부터 1954년까지 77개월에 걸쳐 일어난 이 사건으로 제주도는 폐허가 되고 당시 제주도 인구의 1/10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4.3위원회가 확정한 공식 희생자수가 14532명이며 진상조사보고서는 인명피해를 3만명으로 추정한다. 최대 8만명까지 추정하기도 한다) 4.3은 제주도민들에게 외지인이나 관, 행정에 대한 공포와 불신,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 사건이다. 이로 인해 자연마을에서 오래 알고 지낸 이웃들과의 유대는 더욱 끈끈해지고 상대적으로 외부에서 온 이주자에 대한 텃세나 폐쇄성이 강해졌을 수 있다.

제주도에는 234개의 마을(62개의 법정동과 172개 리의 합)이 있다. 일반적으로 행정복지센터나 주민자치(위원)회는 행정동을 단위로 설치, 운영되지만 제주도의 마을자치, 마을()회는 법정동과 리(자연마을 몇 개가 모여 형성)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아래 소개할 마을규약 역시 마찬가지다.

 

향약(마을규약)

현혜경라해문(2020)에 따르면 제주도의 마을운영규약은 향약’ ‘규약’ ‘정관’ ‘회칙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나 그 기원은 조선시대 향약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연구는 제주도의 234개 마을 중 203(87%)의 마을운영규약을 수집해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길게는 50년 전후, 짧게는 20년이 채 안 되는 시기에 현재와 같은 마을운영규약이 정립되었으며 2010년 전후 개정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마을운영규약에서 쟁점이 되는 것은 주로 마을주민의 자격, 권리와 의무 마을의 의사결정 구조 선거권과 피선거권 마을자산과 청구권 등이다.

먼저 주민의 자격은 마을규약을 둘러싼 모든 쟁점의 출발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자격 여부에 따라 권리와 의무, 선거권과 피선거권, 마을재산에 대한 권리 등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쟁점은 행정에서 규정된 주민과 마을규약 상 주민’(회원) 사이의 차이에서 발생하며 이는 선거권/피선거권, 의결권에서부터 마을 공동재산 사용권에 이르기까지 권리(의무) 행사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 민감하다. 여기에 세대주 1(일반적으로 남성) 한정, 나이 제한 등이 적용될 경우 논란은 더욱 확장될 수 있다.

세부적으로 주민의 자격과 연결되는 마을운영비(회비), 이주민 참여, 자산 청구권 관련 내용도 논의 대상이다. 특히 마을 공동자원을 활용한 사업 다각화나 새로운 사업의 창출 등으로 운영규약 개정에 대한 요구와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환경권에 대한 관심도 증대되고 있다. 환경권을 리민의 권리와 의무사항으로 규약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늘고 있다.

현혜경라해문(2020)마을운영규약은 전통사회로부터 출발한 규칙이므로 변화가 필요하고 변화의 주된 내용은 기본권의 원리에 충실하면서 민주적으로 평등한 원리가 잘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현재의 법률체제 안에서 법리적인 해석과 적용이 가능해야 한다. 마을공동체에 참여한 모든 주민에게 주어진 독립된 주체적 자기결정권의 지위가 보편적으로 적용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마을총회

주민자치가 제대로 이뤄지는 마을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마을총회다. 보통 1년에 1, 많게는 2번까지 열리며 주체는 마을 주민으로 이루어진 마을()회다.

리 마을회는 이장을 중심으로 운영위원회 격인 개발위원회가 있고 부회장, 총무 등 임원진과 감사, 연령조직이자 자생단체인 청년회, 노인회, 부녀회 대표와 영농회, 어촌계, 목장계 대표 그리고 각 자연마을 대표와 장학회, 마을문고회 대표 등이 포함된다. 여기에 공동자원 개발을 위해 설립된 법인(. 행원리풍력에너지특성화마을법인)도 구성원이 된다. 이 법인들이 해당 마을회라는 큰 우산 속에 소속된다는 것은 꽤 의미가 크다. 당연해 보이는 수순일 순 있지만 만약 이 같은 상황을 도시에 적용해본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이처럼 마을회에는 주민들에 의해 직선된 이장과 개발위원회, 자생단체인 청년회, 노인회, 부녀회, 경제공동체인 어촌계와 목장계, 봉사단체의 성격을 띤 장학회와 문고회, 그리고 이들과 성격을 달리하는 신생단체인 공동자원 개발관리 사업법인까지 다 아우르고 있다. 물론 한 사람이 몇 개 조직에 공통적으로 포함되기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다른 조합으로 엮이기도 할 것이다.

역시 당연한 구조이지만 마을총회가 최고 의결기구로서 권위를 갖고 형식적이 아닌 실제로 작동한다는 것은 주민자치가 생생하게 구현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조천읍 신촌리 마을어장 모습
조천읍 신촌리 마을어장 모습

 

공동자원

천혜의 자연환경’. 마치 클리셰와도 같은 이 표현이 꼭 들어맞는 곳,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를 첫 손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제주도를 설명할 때 주민자치, 마을공동체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지역이라는 표현 앞에 공동자원을 기반으로 한 섬이라는 문구가 먼저 나왔다. ‘공동자원이 있기에 주민자치를 잘 할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주민자치를 잘 해야만 하는 필요도 생겼을 것이다. 공동자원이 제주도 리 주민자치의 핵심으로 언급되는 이유다.

공동자원(commons)’에 대한 관심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엘리너 오스트롬 교수의 유명한 저서 <공유의 비극을 넘어(Governing the Commons)> 이후 다시 촉발되었지만 제주도민들은 일찍이 그 중요성을 깨닫고 주민자치를 통해 잘 관리, 활용해온 역사와 전통이 있다.

이와 관련해 박서현 제주대 학술교수는 전통적 의미의 커먼즈(commons)마을공동체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자원과 이러한 자원을 관리하는 규칙을 의미한다. 오스트롬 교수의 커먼즈개념은 자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이를 성공적으로 관리할 제도를 강조했다면, 공동자원이 이를 운영창출하는 과정과 활동, 실천을 통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활동과 실천도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커먼즈의 핵심이 공동의 것을 공동운영창출하는 실천즉 커머닝(commoning)에 있다고 박 교수는 강조했다.

바다에 둘러싸여 있고 산과 오름, 곶자왈, 하천 등을 품고 있는 제주도의 마을에는 천연자원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공동자원들이 있고 이는 곧 마을 주민들의 생활터전이자 생계수단이 되기도 했다. 행원리와 마라리의 바다, 가시리의 공동목장은 주민들의 주요한 일터이자 수입원이었고, 선흘1리의 동백동산과 하례1리의 효돈천은 주민들에게 식수와 목재, 뗄감을 주는 자원의 보고였다.

공동자원의 형태가 다양한 만큼 시대 변천에 따른 이들의 운명도 다채롭게 변모했다. 또 각 마을의 상황과 주민들의 활동, 실천(커머닝)에 따라 마을의 구도가 바뀌었다. 전통시대, 그리고 산업화 이전까지 제주도의 공동자원은 주민들이 정한 규약이나 암묵적으로 정해진 관습에 의해 관리운영되어왔다. 지금도 생계에 직결되거나 활용도가 높은 바다, 목장의 경우는 마을회에 소속되어 있는 어촌계, 목장계 등에 의해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전에 비해 활용도가 떨어져 방치되어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공동자원들(곶자왈이나 하천, 목장 등)의 운명이다. 목장의 경우는 부지 자체가 외부업체에 매각돼 골프장으로 변모한 지역들이 많다. 일시적으로 수입이 발생할 수는 있지만 마을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점에서는 아쉬운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공동자원의 운영과 활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그 마을 주민들의 역량, 주민자치의 잠재력을 잘 보여주고 이끌어내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아이디어를 창출해내고 이를 추동하는 힘은 이장을 비롯한 리더들의 추진력에 크게 좌우되지만 이후 소통을 통한 주민들의 공감과 참여, 적극적인 활동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공유자원 가치의 창출, 마을의 활력은 만들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연은 약탈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으로 지속가능해졌다.’ 최현 제주대 교수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변화 그리고

리 주민자치를 언급할 때 늘 따라오는 대표적인 쟁점들이 있다.

공동자원, 공유재산이 있는 제주도 리에서 향약의 전통이 면면이 이어져 마을자치가 잘 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신참자, 이주자가 진입하기 어려운 기존 리민들간의 폐쇄된 그들만의 리그인 것은 아닌가?’ 또는 공동자원이 있는 제주 리의 주민자치를 도시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이주자의 신규 진입이 어려운 제주 리의 이러한 폐쇄성에 대해서는 여러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강호진 전 제주주민자치연대 대표도 제주도 리 공동체에서 회원 자격을 엄격히 폐쇄적으로 정해온 게 사실이지만 최근 사회 변화에 따라 이 또한 바뀌고 있다. 점차 그 조건이 완화되고 있다. 또 그간 주민투표 시 가구당 1, 주로 남성들이 투표권을 행사해왔던 것이 점차 11표 등 조금씩 변화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도시에서의 적용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도시형 모델은 아파트 자치회 모형으로 가보자는 일부 흐름이 있다. 아파트 자치가 완벽하진 않지만 파편화된 구조 속에서도 공동체성, 민주성을 살리려는 움직임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제주대 김자경 학술교수는 대부분 주민들이 도시적 삶을 살고 같은 문제에 봉착한다. 도시에서의 커먼즈, 일방적 시혜가 아니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으로 지역사회에서 뿌리내릴 수 있는 것을 찾고 있다. 도시적 삶에서 어떻게 사회적 관계를 재구성하면서 과거 공동체적 관계를 다시 만들어갈까 하는 것이 도시의 관건이라 생각한다. 주민자치도 그 지점을 잘 파고 들어야 한다. 오스트롬은 무임승차자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뤄 2, 3중의 장치를 설정했다. 이런 상황까지 다 고려해 접근해야 한다. 도시는 좀 다른 차원으로 봐야할 것 같다. 서로 다른 지역에 살지만 공통의 목적을 가진 결사체로 묶인다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하며 새 차원도 제시했다.

 

<리 주민자치 대표 사례>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제주의 중요한 포구 중 하나인 행원리는 6개의 자연마을, 6개의 어촌계(조합)로 구성되어 있다. 행원리에서는 주요 공동자원인 바다를 크게 3구역으로 나눠 각 2개의 조합(자연마을)에 할당하고 있는데 바다의 물리적 조건에 따라 불이익이 없도록 구역을 돌아가면서 이용하도록 해 갈등을 방지하고 있다.

행원리는 반농반어 마을이지만 농사는 쉽지 않다. 바람이 많은 제주에서도 특히 행원리는 씨앗과 흙이 다 날려갈 정도로 강한 바람 때문에 농사가 어려웠다. 바다와 함께 마을의 공동자원으로 마을공동목장이 있고 6개 자연마을에서 골고루 돌아가면서 이용하고 있다. 바다도 목장도 공평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 갈등의 소지를 최소화했다. 다만 목장의 활용도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농사를 어렵게 만든 행원리의 바람은 마을의 새로운 공동자원, 수익원이 되었다. 다른 마을의 성공사례를 보며 1990년대 들어서 이장 등 마을 리더들이 주민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풍력발전 설치를 추진, 법인을 설립하고 마을 공동자원의 안정적 수익원을 조성했다. 이 경험을 통해 주민들은 외자 유치에 적극 참여했고 2008년엔 점점 방치되고 있던 마을공동목장에 제주폴로 승마리조트가 들어서게 됐다. 풍력발전이라는 새로운 공동자원이 조성되면서 노인복지회관, 게이트볼장, 목욕탕 등 마을 내 공공시설이자 공동재산들이 늘어났다.

풍력개발 관리를 위한 별도의 법인(행원풍력에너지법인)이 새롭게 설립되긴 했지만 이 운영과 마을 주민자치는 별개가 아니다. 마을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이자 마을총회 격의 마을향회안에 개발위원회, 노인회, 부녀회, 청년회, 어촌계, 목장회, 장학회 등과 함께 소속되어 있다. 각 단체별 회계는 별도로 관리되더라도 의사결정은 마을회라는 큰 우산 속에서 복합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공동자원관리는 비슷한 목적을 띠더라도 어촌계, 목장회와 같은 전통의 조직부터 풍력법인 같은 신규 조직들이 마을회 안에서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서북부의 중산간마을 가시리는 4.3사건으로 마을이 전소되고 600여 명의 인명피해로 당시 인구의 절반 이상이 희생되는 등 마을 자체가 붕괴되는 큰 피해를 입은 곳이다. 제주도에서 3번째로 인명피해가 많은 지역으로 기록되었을 정도다.

가시리 마을 재건의 중심에는 공동자원인 공동목장의 역할이 컸다. 1970년대 들어 제주도에도 개발열풍이 불어 닥치고 대자본이 유입되면서 공동목장 매각 움직임이 일어났지만 주민들은 마을 공동소유의 공동자원인 240만여 평에 달하는 공동목장을 지켜냈다. 가시리 주변 마을의 공동목장 대부분이 외지인에 매각되어 골프장으로 개발된 것과 달리 가시리 공동목장만이 그 일대에서 거의 유일하게 마을의 공동자원으로 남아있게 됐다.

가시리는 마을의 비전을 자본 중심의 개발이 아닌 주민 중심의 성장으로 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리회, 청년회 등을 중심으로 주민들과의 소통과 의견수렴, 외부 전문가 및 관련 기관과의 협력 등을 통해 정부 지원사업에 공모해 2011년까지 총 90억원에 가까운 재원을 확보하기도 했다.

마을 공동자원의 근간인 공동목장은 풍력발전단지 유치를 통해 연간 9억 원의 임대료 수입으로 마을 재건에 가장 중요한 경제적 기반, 재원이 될 수 있었다. 또 공동목장에는 조랑말체험공원과 유채꽃플라자 등의 마을 특화 공간이 조성돼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관광상품이 되었다.

가시리는 공동목장을 비롯한 마을 공동자원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면서 주민소통공간, 문화시설, 공동목욕탕 등 편의시설 등으로 마을 공동자원을 확장시켜나갔다. 이를 통해 주민들 간의 관계는 더욱 친밀해지고 공동체는 활기를 띠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마을회관 별관을 리모델링해 조성한 주민사랑방 가시리 디자인카페’, 그리고 외부 예술가와 주민들을 위한 다목적공간인 가시리 창작지원센터가시리 문화센터등이다.

가시리는 마을이 소유한 공동자원의 가치를 이해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아울러 새로운 공동자원을 창출한 모범사례이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건 마을지도자들의 안목과 노력, 특히 행정이나 외부인들에게 폐쇄적일 수밖에 없었던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7번의 마을발전 대토론회 및 여론 수렴 등의 열정적 노력과 끊임없는 소통, 신뢰를 통한 참여 확산, 주민의 역량 강화, 적절한 협치 등이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1

제주 동부지역 중산간 마을인 선흘1리는 근대화 과정에서 끊어졌던 공동자원과 주민들 사이의 유대 관계를 생태관광을 통해 현대적 방식으로 복원함으로써 마을의 공동자원을 지속가능하게 관리하는 마을 공동체 발전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을의 곶자왈(암괴들이 불규칙하게 널려있는 지대에 형성된 숲)을 현대적으로 활용, 새로운 공동자원을 창출해낸 것이다.

선흘1리 역시 4.3사건으로 마을이 거의 붕괴되는 비극을 겪었지만 1980년대에는 400여 가구, 10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할 정도가 되었으나 1990년대 이후에는 급격히 인구가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선흘1리 생활의 터전으로 불리는 동백동산은 동백나무가 많아 이름 붙여진 선흘 곶자왈의 상록수림지대이다. 전통시대 뿐 아니라 근대화 이후에도 동백동산은 선흘1리 주민들의 삶에 있어서 귀중한 자원이었다. 동백동산을 비롯한 곶자왈은 4.3사건 이후 초토화된 마을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집을 짓는 목재, 식수, 뗄감 등을 제공해주는 등 주민 생활과 밀접했고 주민들도 이곳을 공동자원으로 여겨 잘 가꾸어왔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동백동산의 쓸모는 점점 줄어들고 제주도기념물로 지정되어 국가에 수용되면서 공동자원으로서 주민들과의 유대는 약화되고 점차 애물단지처럼 취급되었다. 그러다 2011년 이곳이 람사르습지로 지정되면서 동백동산의 가치가 재발견되고 주민들은 이를 활용한 마을재건에 나서게 됐다. 이장 등 마을지도자를 중심으로 마을사업을 모색 중 국립습지센터와의 생태체험프로그램 운영을 계기로 주민들의 동백동산 생태가치 학습 및 이를 활용한 사업 논의도 시작됐다.

이후 마을 주민들은 원탁회의 리민큰마당을 개최해 마을의 방향성을 스스로 찾고 생태관광에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이후 세계 최초의 람사르마을’, 그리고 환경부의 생태관광지로도 지정됐다. 선흘1리는 생태관광을 통해 동백동산을 보전하며 새로운 일거리도 제공하고 마을 주민의 복지 향상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제주시청에서 동백동산습지센터를 건립하기도 했다.

선흘1리는 버려진 땅을 활용해 마을의 새로운 공동자원을 만들고 이를 통해 공동체 활성화까지 이뤄낸 흔치 않은 사례로서 이 밑바탕에는 역시 소통과 참여, 신뢰 그리고 주민 역량강화, 협치라는 주요한 키워드가 자리하고 있다.

제주에서 가장 긴 하천인 천미천의 모습
제주에서 가장 긴 하천인 천미천의 모습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1

하례리는 서귀포시 남원읍의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효돈천과 서쪽으로 면해 있다. 고인돌 유적이 있고 석기 유물이 발굴될 정도로 마을의 역사가 오래되었다. 하례1리에는 12개의 자연마을()이 있으며 2018년 기준 유권자 수는 980명이다.

마을의 최종 의사결정기구는 마을총회이며, 여기서 선출된 이장과 개발위원 6, 그리고 노인회장, 부녀회장, 청년회장 등을 포함한 개발위원회가 운영 실행기구이다. 마을회 총무 역할을 담당하는 새마을지도자 2명도 마을총회에서 선출되는데 이들은 청년회 활동 후 청년회장이 되어 경력을 쌓은 이들 중에서 주로 뽑히며 자연스럽게 이장 후보가 된다고 한다. 이외에 영농회장, 어촌계장, 문고회장 등도 주요 직책이다. 하례1리 역시 마을회라는 큰 우산 아래 개발위원회, 어촌계 및 연령조직들이 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통적으로 효돈천은 하례리의 중요한 식수원이자 공동자원으로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점차 공동자원에 대한 의존이 약해지면서 이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과 관리, 유대도 줄었다. 감귤재배가 확산되면서 마을의 풍경과 자연환경도 변화하게 되었고 농업노동도 품앗이형태에서 임금노동으로 바뀌게 되었다. 농업소득과 생활수준이 향상된 만큼 효돈천을 중심으로 한 자연과의 유대, 인간관계의 모습도 달라지게 됐다.

한편 1965년 이미 천연보호지역으로 지정된 효돈천은 2002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의 핵심지역으로, 2014년엔 환경부 생태관광마을로 지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외부 전문가가 청년회와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성과를 거뒀다.

효돈천을 중심으로 한 생태관광 프로젝트 추진 이전에도 하례1리에서는 여러 외자유치 사업들이 진행됐으나 주로 외부 시설, 공간 설치로 주민들의 능동적 참여와 호응을 끌어내기 쉽지 않았다. 이와 비교할 때 마을의 중장기 발전방향으로 수립되어 마을총회에서 인준을 받은 생태관광마을프로젝트는 참여와 소통 면에서 진일보한 형태다. 더구나 마을의 자연환경을 잘 보존하고 지키며 이를 활용해 마을의 문화와 가치, 자긍심을 끌어올린 것은 직접적 소득이나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그 이상의 가치를 창출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주민들은 마을의 자원에 대해 조사해 기록했고 직접 환경교사가 되어 초등학생들에게 환경교육도 하게 됐다. 또 생태관광으로 개발된 효돈천 트레킹 프로그램을 계기로 마을 소모임이 활발해지고 다양한 친교가 이뤄지며 마을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이 더욱 끈끈해졌다. 감귤재배를 통해 소득이 증대됐으나 임금노동의 확산으로 약화된 유대가 다시 회복되면서 주민들끼리 뭔가 함께 하는 경험들이 다시 쌓이게 된 것이다.

선흘리 동백동산의 모습
선흘리 동백동산의 모습

 

서귀포시 대정읍 마라리(마라도)

마라도는 한반도 남쪽 끝에 위치한 0.3(30)의 작은 섬이다. 1883년 고종 20년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이래 2021년 기준으로 44세대 82명이 거주하고 있어 단위에서도 매우 작은 규모다. 인근 가파도()16번째 마을()이었다가 1981년 마라리로 승격되었다.

마을에서 공동어장에 대한 입어권의 허용 및 제한 같은 규범을 최초로 성문화 시킨 것은 1965년 제정된 마라도 향약으로 알려졌다. 마라도 향약은 총칙, 해산물, 부역, 관혼상제, 우마장, 회의, 재정 그리고 부칙 등 총 82260조로 구성되어 있다. 1981년 마라도가 대정읍 마라리로 승격되면서 마라도 향약은 마라리 자치규약으로 바뀌게 된다. 공식적인 행정단위()의 편제 속으로 편입 되면서 주민들끼리의 자치성격이 강했던 규약에 행정의 개입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이후 2018마라리 자치규약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에 따르면 마을조직의 구성권, 마을의 중요 사업 계획 및 안건처리, 공동 채취 해산물의 수익금 분배, 전입 허가 여부 그리고 벌칙 제정 등을 다루는 최고의사결정 기구는 마을총회다. 정리민(정회원의 개념) 자격조항은 엄격하며 이들 만이 임원이 될 수 있다.

집행부는 1년 임기의 반장과 그를 보좌하는 총무 1, 외무 1인이 있으며, 반장의 자문기관으로서 내무, 외무 및 총무가 있다. 임원진의 임기는 1년이며 모두 마을총회에서 선출됐다. 1981년 마라리 자치규약에서는 반장이 이장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따로 개발위원회를 두어 리의 발전사무를 담당하게 했다. 이 개발위원회에서는 이장을 탄핵할 수도 있어 권력 분산의 양상이 보인다.

마을총회와 별도로 해녀회가 존재했다. 이는 조선시대 말부터 조직되어 왔으며 마라도 향약에 이들 활동에 대한 규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해녀회는 공동작업일의 결정, 불법어로의 방지, 어로행위시 위반사항의 단속, 술판매 금지에 대한 감시 등을 수행해왔다. 이들은 공동권리와 공동의무를 중시하는 전원 합의체로 마을의 공동자원 보호와 분쟁 해결에도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 그러다 1962년 어촌계 하부조직으로 귀속되었다.

 

사진 월간 주민자치 DB / 제주특별자치도청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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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2015), 제주특별자치도 마을특성 및 실태조사(제주시)

제주특별자치도(2015), 제주특별자치도 마을특성 및 실태조사(서귀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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