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반갑다. 진작에 학문으로 정립되었어야 할 ‘주민자치학’이 이제야 첫선을 보이게 되면서 비상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올해 2학기 대구대, 대진대, 서울대, 숭실대, 중앙대 등 전국 주요 대학 및 대학원에 전공 및 교양과목, 일반 시민들과 함께 하는 오픈 강좌의 형태로 개설된 것이다.
주민자치는 학제 간 연구가 특히 필요한 분야다. 흔히 가장 가까운 학문으로는 행정학이 꼽히지만 정치학, 사회학, 철학, 윤리학, 법학, 교육학 등의 영역에서 융합적으로 들여다보아야 온전한 접근이 가능하다. ‘당위’만 앞설 뿐 행정학에서조차 주민자치는 주류 분야가 아니다. 그래서 전문 연구자도 많지 않다. 이 같은 현실을 타개하고자 한국주민자치학회와 대학들이 나섰다. 올해 초부터 슬슬 불이 지펴지기 시작해 드디어 2학기에 최초로 주민자치학 강의가 개설됐다.
주민자치학 첫 학기 강의는 대학마다 개설 과목명도 조금씩 다르고 학부와 대학원에, 그리고 전공과목, 교양과목 등으로 강의 특성에서 약간씩 차이를 보이지만 큰 틀에서 중심을 관통하는 내용은 공통적이다. 주민자치의 개념과 원리 그리고 조건, 역사로보는 주민자치, 해외의 선진 주민자치 사례, 한국 주민자치의 현실, 주민자치회의 설계와 운영 등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중앙대 ‘주민자치연구’ 과목 첫 강의(오리엔테이션) 들어보니
9월 5일 중앙대 법학관의 한 강의실. 이날은 개강 첫날 오리엔테이션이기 때문에 평소보다 약간 늦게 강의가 시작됐다. 일찌감치 수강생들이 하나둘 강의실로 들어와 뒷자리부터 채운다. 시간이 되어 파악해보니 본 수강생보다 더 많은 수의 청강생들이 교실을 채웠다. 주민자치 교육에 목마른 전․현직 주민자치위원들이 대학 캠퍼스 정문에서 멀찍이 떨어진 이 강의실을 찾은 것이다.
올해 특임교수로 임명된 전상직 한국주민자치학회장 겸 한국주민자치중앙회장이 강의를 위해 슬라이드화면을 켰다. 제목에 ‘주민자치 접근방법 이야기’라고 쓰여 있다.
전상직 교수는 “주민자치는 품위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품위 있는 사회란?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라며 서두에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는 “경기 남양주의 사찰 수종사에 쓰인 글귀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침묵보다 나은 말을 하십시오. 침묵은 존재 양식의 기본입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나은 행동을 하라는 것인데 이는 가만히 있는 것보다 못한 짓을 하는 경우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라고 운을 뗐다.
전 교수에 따르면, 유교에서의 자치는 우리가 익히 아는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이 네 가지를 다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국가의 자치정책은 이 네 가지를 거스르지 않아야 하고, 자치학은 네 원리를 융합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상직 교수는 자치의 지평으로 각 종교의 핵심 원리인 ‘사랑’ ‘인’ ‘자비’를, 삶의 형식인 ‘일’ ‘놀이’ ‘배움’을 주민자치에서의 ‘마을사업’ ‘마을행사’ ‘마을강좌’와 연결시켜 소개했다.
그는 “주민자치 사업, 행사, 강좌를 얼마든지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 이번 강의에서는 그런 사례들도 많이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가격보다 높은 것을 가격보다 낮게 생산해야 한다’는 사업가의 사회적 책무, 소비자의 혜택과 생산자의 혜택 개념과 같이 주민자치 또한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라며 “주민자치는 동행이다. 주민들이 마을에서 함께 동행하는 것이다. 마을에는 능력 있는 주민이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으며 잘 되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행정적, 정치적, 사회적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자치는 주인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수업에서는 주민자치 원리와 사업, 주민자치센터 강좌 발굴 등 다양한 내용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학기 강의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김윤미 기자 citizenautonomy@gmail.com
사진 진정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