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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아파트 생활, 영화 '드림팰리스' '콘크리트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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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아파트 생활, 영화 '드림팰리스' '콘크리트 유토피아'
  • 윤성은 영화평론가
  • 승인 2023.09.19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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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
Town in Movie

많은 영화의 배경이 마을이다. 영화 주인공들의 삶의 터전 역시 그들이 사는 마을이고 동네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배경이 되는 마을, 그리고 이웃들과 때로 갈등하고 협력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간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되기도 하고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앞으로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에서는 마을과 사람들의 케미스트리, 그들 사이의 교감과 성장, 변화를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 속에서 주민자치의 바람직한 방향, 때로 반면교사의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 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는) 급격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도시기반시설의 충분한 공급이 제때 이루어지지 못해 생긴 한국의 독특하고 기형적인 결과물이다. (중략) 이는 곧 다양성을 거세한 완고하고 폐쇄적인 단지문화와 아파트 감수성을 굳건히 하는 동시에 이를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아파트와 아파트 단지에 대한 욕망을 강화하는 기제가 된 것이다.”

- 박철수 <아파트는 한국이다아파트라는 이름의 욕망> 중에서

 

몇 달 새 한국인들의 아파트 문화를 보여주는 영화가 두 편이나 개봉했다. 가성문 감독의 드림팰리스’(Dream Palace, 2023)는 저예산의 독립영화이고,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Concrete Utopia, 2023)는 제작비가 200억이 넘는 블록버스터로,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지만 현대 한국인들에게 아파트는 어떤 의미인지, 그 안에서 형성되는 연대감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정확히 일치한다.

 

아파트서 형성되는 연대감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한국인의 과반수가 아파트에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된 2023년이 상황에서 아파트에 대한 욕망은 그냥 아파트가 아니라 주상복합형의 호화 아파트, 대단지 아파트에 대한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집을 삶의 터전이 아니라 부동산으로 인식하는 한국에서 투자 가치는 아파트를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아파트에도 계급이 존재하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아파트의 계급장을 달고 있는 것이다.

 

드림팰리스혜정’(김선영)은 도시 근교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 입주한다. 그녀는 산업재해로 남편을 잃고 진상규명을 위해 투쟁하다가 결국 먼저 보상금을 챙겨 이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다른 유가족들이 혜정과 수인’(이윤지)의 남편이 실수를 해서 화재가 났다는 의혹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혜정에게 드림팰리스는 남편의 목숨값이자 동료들을 배신한 대가로 얻은 전리품이었다.

그러나 입주 첫날부터 혜정은 드림팰리스가 꿈의 궁전은커녕 허상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다. 수도꼭지마다 녹물만 콸콸 나오는 것을 본 혜정은 분양사무실에 항의하지만 직원은 아직 단지가 미분양 상태라 한 집만 고쳐줄 수는 없고 분양이 다 되면 그 때 한꺼번에 하자 보수를 해준다는 말만 반복한다. 혜정은 입주민대표회의에 들어가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러나 입주민들은 분양사무소 직원보다 더 완고하게 혜정의 입을 막는다. 아파트에 하자가 있다는 사실이 외부에 새어나가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드림팰리스에서 입주민대표회의는 아파트 단지라는 커뮤니티가 어떻게 세를 쌓고 유지해 나가는지 잘 보여주는 기구로 서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드림팰리스그리고 입주민대표회의의 두 얼굴

콘크리트 유토피아에도 입주민대표회의가 중심에 있다. 대규모 지진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서 황궁아파트는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곳이다. 외국어로 이름을 짓는 트렌드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오래 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 지진 후에는 아파트 간의 계급이 전복되면서 비싼 아파트 단지에 살던 사람들이 황궁아파트 주민들에게 도움을 요청, 아니 구걸해온다. 실제로 드림팰리스 사람들이 그 동안 우리를 얼마나 무시했어요같은 대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비싼 아파트 이름을 드림팰리스로 한 이유가 영화 드림팰리스를 의식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드림팰리스의 드림팰리스는 미분양 아파트였으니까.

그러나 점점 다른 아파트 주민들이 많아지면서 위협을 느낀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회의를 통해 외부 사람들을 내쫓아 버리기로 결정한다. 입주민대표로 선임된 영탁’(이병헌)은 처음에는 소심한 듯하다가 점차 리더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며 주민들의 신뢰를 쌓는다. 주민들이 외부인들을 속여 억지로 내쫓는 과정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하고 격렬한 싸움 끝에 아파트를 수성하는데 성공하자 주민들 사이의 유대감은 더욱 커진다.

 

입주민대표회의와 영탁을 중심으로 주변이 재정비 되고 방범과 음식물 공수 등의 시스템이 생겨나자 주민들은 하나로 똘똘 뭉쳐 재난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 외부인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쌓아 놓은 바리게이트는 견고한 성벽 같고 그 뒤로 우뚝 솟은 황궁아파트는 궁전처럼 보인다. 그렇게 황궁아파트는 드림팰리스가 된다.

승리에 도취된 이들이 슬기로운 공동생활의 지침을 마련하는 장면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블랙코미디적 특성을 명확히 보여주는 부분 중 하나로 과장되게 연출되어 쓴 웃음을 자아낸다. 밖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입주민대표회의는 꽤나 기능적인 조직으로 평가받았을 것이다.

 

집단이기주의의 작동과 내부의 균열

그러나 재난 상황에서는 국회의원도, 부자도 없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이들의 기조는 얼마 되지 않아 균열을 일으킨다. 외부에서 식량을 수급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더 많은 보급품을 받게 되면서 몸이 불편하거나 나이가 많은 이들이 불만을 갖게 된 것이다. 이 공동체에서 공평의 원칙은 평등과는 또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 여기서 영탁을 도와 이러한 원칙을 세우고 실천해 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 부녀회장 금애’(김선영). 금애는 이 공동체 내부에서는 평균, 혹은 표준에 해당하는 인물이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집단 이기주의를 표상한다. 황궁아파트 주민의 일원으로서 이 공동체를 존속시키기 위해 못할 일이 없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금애 역을 맡은 배우 김선영은 드림팰리스의 주인공 혜정도 연기해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입주자대표회의에서의 역할 차이만큼이나 두 캐릭터는 확연히 다르며 김선영의 연기 톤도 그렇다. 무엇보다 금애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보여주고, 혜정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변화한다.

혜정은 녹물을 고칠 방법은 빨리 아파트를 분양시키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분양사무실 직원과 합의한 대로) 아파트를 할인해준다는 문구를 쓴 현수막과 전단지를 뿌리며 분투한다. 그러자 입주민대표는 집값을 떨어뜨렸다며 혜정에게 강하게 항의하고 혜정은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가 된다. 한편 농성에 지친 수인도 혜정의 도움을 받아 기업에서 받은 합의금으로 대폭 할인된 드림팰리스를 구입하는데 입주자들은 할인된 가격으로 아파트를 산 사람들이 입주하지 못하도록 단지 입구를 막기로 결정한다. 그 사이에 수인과 사이가 틀어진 혜정은 아파트에서 자신의 입지를 위해 입주민들에게 협조하지만 수인의 이삿짐 차가 입주민들에게 공격당하자 가운데서 어쩔 줄 몰라 한다.

 

미분양 아파트 사태나 아파트값 하락이 입주민들에게 위기감을 조성하고 집단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상대가 가격을 낮춰 팔고 있는 분양회사가 아니라 언젠가는 이웃이 될 사람들이라는 점은 논리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입주민들은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기보다 그저 과격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전체적으로 볼 때 혜정은 이성과 감성이 조화된 평범한 인물이다. 그러나 극중 여러 차례 좌절을 거치면서 예전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 아파트 공동체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태도를 바꾸게 된다. 그러나 수인과 자녀들이 물리적으로 공격당하는 것만은 차마 보고 있을 수 없다. 아파트 단지 앞 바리게이트를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수인의 이삿짐 차, 그 차를 막아서다가 다친 입주민, 차에서 수인 가족을 끌어내리려는 사람들, 그들을 말리는 혜정까지 드림팰리스의 절정부는 아비규환의 촌극을 보여준다. 과연 입주민들의 육탄 방어는 드림팰리스의 가격을 올릴 수 있을까.

 

한국만의 독특한 아파트문화, 그 속에서 공동체의 방향은?

한국에 와서 처음 아파트 단지를 본 외국인들, 특히 서양인들은 깜짝 놀란다고 한다. 그 풍경 자체가 다른 나라에서 보기 드문 것인데다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 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문화가 해외에 많이 알려지면서 아파트 단지가 가진 편의성도 인정하게 되었다지만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문화권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한국의 독특한 주거형태로서 아파트 공동체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드림팰리스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참고하시길 권한다.

 

사진=인디스토리/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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