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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음사례와 향약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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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음사례와 향약과의 관계
  • 박경하 한국주민자치학회 부설 향약연구원장(중앙대학교 역사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3.10.11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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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향촌사회의 자치규약’. ‘향약의 사전적 의미이다. 여기에 바로 이어지는 것은 덕업상권’‘과실상규’‘예속상교’‘환난상휼등 학창시절 역사시간에 달달 외웠던 향약의 4대 강목이다. 다분히 정형화되고 박제화 된 향약에 대한 인식을 바꿔준 것이 바로 조선시대 기층민들의 상부상조 자치조직 촌계이다. 오늘날 주민자치의 한 원형과 단초를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이에 조선시대 향약 연구 전문가로 사단법인 한국자치학회 부설 향약연구원장인 박경하 교수의 향약이야기를 연재한다. 전통시대 향약·촌계를 재조명함으로써 오늘날 주민자치에 주는 의미와 시사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편집자주]

 

 

향음주례(鄕飮射禮)는 중국의 옛 제도로 예기禮記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 중국에서는 주대(周代) 이래 행하여졌던 것 같다. 후한에는 군현에서 향사례(鄕射禮)를 행하였고, 633(당 정관 6) 송 태종 때에는 향음례(鄕飮禮)를 천하에 널리 알렸다. 명 태조는 1372(홍무 5) 명의 의례와 주관(周官) 독법(讀法)의 취지 아래 매년 정월과 10월에 유사와 관이 연고한 사대부를 거느리고 학교에서 향음례를 행하고 민간에서는 100호 단위로 모여 이장(里長)이 주최하였다. 이 의식은 1383(홍무 16) 10향음주례도식이 널리 배포되고 그 후 이사제(里社制)와 일체화되면서 이사제의의 부속 행사가 되었다.

조선에서는 건국 초기 정도전이 저술한 조선경국전<향음주조(鄕飮酒條)>에 소개되었고 이후 세종에 의해 편찬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도 실려 있으며 <향사례>는 오례 중 군례의식으로 <향음주례><가례(嘉禮)>에 속해 있다. 이 의례는 오례의(五禮儀)에 규정되어 있으나 성종 때까지는 거의 시행되지 않고 있었다.

1883년 향약절차성책 향약 강신회시 좌석 서열도(오른쪽 페이지). 사진=전상직 본지 발행인 소장본
1883년 향약절차성책 향약 강신회시 좌석 서열도(오른쪽 페이지). 사진=전상직 본지 발행인 소장본

 

향음주례, 성종대 유향소복립운동과 함께 주목

그러다가 이 의례는 성종대 유향소복립운동이 본격화되면서 관심을 끌게 되었다. 성종대 중앙에 진출하기 시작한 영남사림계열은 중앙의 고관에서부터 향리에 이르기까지 관권에 의탁한 여러 가지 비리행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중요한 정치적 과제의 하나로서 세조 때 혁파된 유향소를 복립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본래 지방사회가 정치적으로 유교적 예속을 전파하는 수단으로서 창안된 향사례 향음주례를 여행할 기구로서 그 부활을 꾀한 것이었다.

국조오례의. 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조오례의. 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러한 배경 외에도 1474(성종 5) 국조오례의의 찬성에 고무되었음인지 정극인은 1475(성종 6) 고현동에서 동중 30여가와 더불어 향음례를 실시하여 향촌민들을 교화하였다. 조선경국전에서 소개하고 있는 향음주례는 다음과 같다.

 

온 고을 유생들이 모두 모여 술을 마시고 약()을 읽으면서 잔치를 하는 예절인 향음주례는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선왕의 뜻이 담겨 있다. 빈객과 주인이 읍하고 사양하면서 자리로 올라가는 것은 존경과 겸양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요, 손을 씻고 세면을 하는 것은 청결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요, 처음부터 끝까지 매사에 반드시 절을 하는 것은 공경하는 마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이 존경하고 청결하고 공경한 다음에 서로 접촉하면 난폭하고 교만함이 사라지고 환난이 종식될 것이다. 주인이 賓客(빈객)과 그 수행한 사람을 가리는 것은 현자와 우자를 구별하기 위함이오, 빈객을 먼저 대접하고 수행인을 후에 대접하는 것은 尊貴(존귀)함과 卑賤(비천)함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賢者(현자)愚者(우자)가 가려지고 존귀함과 비천함이 밝혀지면 사람들은 勸勉(권면)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술을 마실 때는 즐겁게 하되 음탕한 지경에 이르지 않고, 엄숙하되 소원한 지경에 이르지 않는다. 신은 경계하지 않고서도 교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오직 음주로 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같이 향음주례는 단순히 음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존양결경(尊讓潔敬)’ 등의 예절을 가르치는 훈련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향음주례는 음주의 순위를 치위(齒位) 덕행(德行)으로 정하고 귀천을 밝히고 군신지의’ ‘장유유서를 강조하는 수분(守分)’의 교육이었다. 예천에서 권오복이 지은 <향사당기>에서 향사례의 모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 국가에서는 옛 법을 좇아 예교(禮敎)를 숭상하고 향사(鄕射)를 마련하였다. , 활을 쏘는 것()은 한 가지 기예(技藝)에 불과하다. 그러나 손님의 차례를 정하고 벌주(罰酒)를 드는 예()가 이 의식에서 거행된다. 그리하여 한 고을의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이 고을의 부로(父老)들이 명칭은 비록 향사당(鄕射堂)이라고 하였지만 권장하고 징계하는 깊은 뜻이 실로 이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향례합편. 사진=전상직 본지 발행인 소장본
향례합편. 사진=전상직 본지 발행인 소장본

 

향약, 향음주례의 연장선상에 있어용어도 시대상황의 산물

향사례에서는 과녁에 맞추는 기예를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고 사()정지(正志)’를 뜻하고, 연고덕행자를 숭상하여 백성들의 선악을 권면 징계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향음주례는 수령이 앞장서서 향중유덕자를 골라 베푸는 주연이로되 음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효제목린(孝悌睦隣)’을 권장하는 것이어서 빈주백배이주삼행(賓主百拜而酒三行, 손님과 주인이 백번 절하고 술이 세 차례 돈다)’하는 예절이 엄한 것이어서 주례를 통한 예법의 훈련이기도 하였다.

향약과 향음례는 향약을 군현수령이 주도할 경우 그 외형이 매우 비슷하다. 향례합편(鄕禮合編)에서는 향약의 효과는 향음주례와 차이가 없다라고 양자를 구별하고 있지만 실상은 강신례(講信禮)’가 끝난 후에 향음주례를 베풀기도 하고 향음주례 후에 강신례를 베풀기도 하여 향약에서 양자는 연이어 계속 열리는 것, 하나의 행사에 있어서 선후의 차이밖에 없었으니 사실상 향약을 향음례라 하든 향음례를 향약이라 하든 용어의 혼용에 불과한 것이었다. 숙종대의 한 향약 강신례의 경우를 보면,

 

매년 춘추로 각면 풍헌과 유사가 술과 안주를 가지고 관가에 모이고 관가 역시 술과 음식을 준비하여 향음주례를 행한 후에 향약을 강의한다.”

 

라 하여 여기에서는 학교가 아니라 관가에, 그리고 향약의 운용은 풍헌 중심으로, 즉 향임과 약임이 일원적이었는지 풍헌들이 모여 향음주례를 베풀고 이어 약조를 강하는 향약의 모임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향음례는 관에서 교화를 위하여 역내 덕행자를 선정 초빙하여 주연을 베푸는 것으로, 삼대유풍이라 하여 한당 이래 유래가 오래된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오례의>에 각급 관아에서 주최하도록 되어 있으나 잘 준수되지 않았다. 중국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향음례는 효제목린의 내용을 담은 약조를 강석하여 흡사 향약의 강신례 같았고 실지로 향음례와 향약은 서로 혼칭, 전칭되어 같은 이칭처럼 사용되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서는 대개 향약을 시행할 때에도 먼저 향약문을 읽어 권선하고 독약이 끝난 후 향음주례와 향사례를 병행하였던 것이다.

즉 향음례가 인의효우 등의 덕목을 내세우고 백성을 교화하려 한 도민예속(導民禮俗)’을 지향하며 사회경제적으로도 여유 있었던 시절의 것이라면, 향약은 구체적이고도 세세한 여러 금기를 내세우고 위반자의 규제처벌에 치중하는 즉 외벌(畏罰)을 통하여 제방민속(堤防民俗)’을 도모하는, 사회경제적으로도 여러 모순과 부조리가 노정되어 어떤 대책이 필요하였던 시대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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