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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유럽국 프랑스-영국-독일의 ‘자치’는 왜 다른 형태를 띠게됐을까?[연구세미나79-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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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유럽국 프랑스-영국-독일의 ‘자치’는 왜 다른 형태를 띠게됐을까?[연구세미나79-②]
  • 김윤미 기자
  • 승인 2023.10.29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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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 연구세미나 제79회 '서양근세자치론(1) 근세 서양국가의 도시-농촌과 주권론-자치론'

근세 유럽이라도 다 같은 유럽이 아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 각기 다른 지방자치-주민자치의 형태가 발현되고 작동되었다. 이 근원을 고민해보는 시간이 26일 한국주민자치학회 제79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 서양근세자치론(1) 근세 서양국가의 도시-농촌과 주권론-자치론발표에서 펼쳐졌다. 서울 인사동 태화빌딩 그레이트하모니홀에서 열린 이날 세미나는 김성민 건국대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이관춘 연세대 객원교수가 발제를, 지정토론에는 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와 장은주 영산대 교수가 참여해 열띤 토론을 전개했다. 발제는 고대중세와 같이 일본 학자 토시유키 오타키(Toshiyuki Otaki) 저서의 방대한 내용을 이관춘 교수가 체계적으로 정리해 소개했다.

발제 후 지정토론이 이어졌다. 먼저 이찬수 인권평화연구원장은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이상적이고 목적론적인 가치들은 모두 대문자 단수가 아니라 소문자 복수들이라는 데 있다. ‘자치의 개념과 의식은 탄생했지만 자치의 현실은 대문자 단수의 자치(The Autonomy)가 아니라 소문자 복수의 자치들(the autonomies) 차원에서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자치들이 서로 대립적이기까지 하다. 어떤 실천도 그 내적 의도와 목적이 어떻게 설정되어 있느냐에 따라 도리어 반자치적, 사실상 타율적, 나아가 문명 종속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라며 자치는 자유를 기반으로 한다. 개인의 자유, 그리고 지역 거주자들에 의한 지역 자치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실제로 이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도 상당 부분 뒷받침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데 자유를 자치로 구현해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자치에 대한 공통의식과 방법론을 합의하고 구체화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자치의 외형이 전개되어온 역사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지만 그 속내, 인간 행동의 심층으로 들어가면 ’()’()의 개념들이 갈등하고 있는 현실이 더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찬수 원장은 오늘의 사회는 추상적이든 물질적이든 자신의 이익을 확대하려는 행위들이 얽혀 복잡하게 작동한다. 이런 행위들이 얽히면서 인간이 통제할 수 없을 수준의 체계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사실상 개개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며, 차별을 정당화하는 집단적 질서 안에 속박시킨다. 자율(Autonomy)이 아니라 욕망들의 중층적 결합에 의한 사실상의 타율(Heteronomy)이며, 더 정확하게는 자율(Autonomy)’을 내세운 타율들(heteronomies)’의 충돌이다. ‘소문자 자율들’(저마다의 요구와 욕망들)대문자 자율로 포장하면서 서로 부딪힌다. 수직적 통치보다 더 강력한 개인과 집단간 자기중심적 통치의 욕망들이 자치의 실질적 주류가 되어온 것이다. 거버넌스에도 자기중심적(ego-centric) 혹은 이기적(selfish) 통치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현실에서의 자치는 사전적 이상 혹은 역사적 외형과는 달리, 자유조차 상위의 통제장치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는 데 교묘하게 사용한다. 사회에는 법적 견제 장치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더 심층적 동력이 작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계속해서 그는 자치도 대문자 단수’(Autonomy)가 아니라 현실에서는 소문자 복수’(autonomies)이다. 셀프-거번먼트(Self-Government)가 아니라 셀프-거번먼트를 앞세운 셀프-거번먼츠(self-governments), 나아가 셀브스-거번먼츠(selves-governments)인 것이 현실이다. 이런 말은 어법상 형용모순이지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현실에서는 (governing)’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하려는 보이지 않는 시도들이 충돌한다라며 이것은 발제자가 서양 근세의 특징으로 들었던 근대적 국민국가의 탄생’, ‘현세중심의 인간중심적 사고’, ‘종교개혁’, ‘대항해시대등이 도리어 근세의 모순과 역설을 반증하고 있는 것과 구조적으로 같은 현상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국민국가(nation state)가 자국의 영토와 경계를 실선화하면서 양적 확장을 하는 과정에 다른 국민국가와 충돌하고, 국가나 교회 조직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오직 신앙에 의한 구원을 내세우며 인간의 내적 주체성을 중시하던 종교가 현실에서는 대항해시대, 식민지의 건설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던 모순적 역사가 이것을 잘 말해준다. ‘자치의 시도가 인간을 정말 자율적으로 만들었는지 고민해봐야 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 원장은 도리어 오늘의 자치는 수직적 일방적 단순 사회보다도 더욱 리좀적으로(들뢰즈) 교묘하게 얽히면서 그만큼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탈근대, 나아가 인간이 지질 구조까지 변화시키면서 지구의 주체로 등장한 인류세시대에 근대 서양의 자치와 자치론의 역사는 과연 어떤 의미인가. 인류세의 자치는 자율 혹은 자치라는 이름의, 어쩌면 더 교묘하게 내재화한 욕망들의 잔치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 아닐까. 당연한 말이지만 자치가 자치이기 위해서는 욕망의 조절과 통제를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라며 배우들의 연기가 한 편의 연극을 완성해가듯이 차이를 긍정하며 다름을 감내하는 연기로서의 행위가 민주주의를 만들어간다. 이러한 생각과 시도가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찾아낸다. 이것이 합의이다. 합의는 공감과 더불어 평화라는 이름으로 폭력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장치다. 자치의 목적은 평화여야 한다. 평화는 감폭력(減暴力)의 과정’, 폭력을 줄이는 과정이며 궁극적으로 폭력이 사라진 이상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자치도 이러한 평화론에 합의하는 지난하고 반복적인 합의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합의는 나의 행위 안에 너를 긍정적으로 수용할 때 이루어진다. 힘들고 때로는 불만스러워도 합의를 통해 평화 지향적 공론의 장이 만들어진다. 자치도 결국 연기로서의 행위와 과정이다. 연기가 어렵고 불만스럽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행위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라고 제시했다.

이찬수 원장은 또 공동체가 같음(, unity)’함께(, com)’ 하는 집단이라고 할 때 핵심은 같음보다는 함께에 있다. ‘함께하지 않는, 타자를 인정하지 않는 같음은 폭력이다. 타자를 인정하려면 자신을 비워야 한다. 자치는 함께의 실천이(어야 한). 그런 자치가 평화를 만들어가는 것이고 그럴 때 자치라고 명명해야 한다. 변화하는 형식 안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늘 비판적으로 살펴야 한다. 그 내용이 정말 .. .., ..인지, 그 자치가 과연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늘 비평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권력이 분화되어가는 것만이 자치가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같이 가야 한다 생각한다. 발제문을 귀로 직접 들으면서 자치의 현실에서의 의미, 배경 등을 들으며 서양 자치의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오늘 우리의 자치 현실과 의미를 되돌아보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좌장을 맡은 김성민 교수는 영성이 담긴 논평을 해주신 것 같다. 철학적 접근으로서의 개념 정의를 해주신 거 같다. ‘권력 작동 방식의 분화일 뿐인데 이게 자치로 치환? 욕망과 자유와의 관계, 분화 아닌가?’라는 질문에 특히 공감한다고 밝혔다.

다음으로 장은주 교수는 자치와 관련하여 서양의 근세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거시적 질문은 또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 싶다. 개인적으로 서양의 절대주의 국가 시절 이면에서 면면히 이어 온 자치의 뿌리와 양상이 의미가 있어 보였다. 이번 공부를 하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부분이기도 하다. 강력한 국민국가(national state) 체제가 확립된 본격적 근대 이후에 비해 이 초기 근대 시기만 해도 분권적이고 지역과 도시의 자치에 기초했던 중세의 흔적과 영향이 강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흔적과 영향은 어떻게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듯싶다. 그렇다면 서양의 자치 전통은 중세적 기원을 갖는다는 것인가 질문을 던지고 싶다라며 이런 의문을 따라가다가 새삼스럽지만 더 근본적인 의문도 떠올랐다. 도대체 자치란 무엇일까? 개인적으론 자치를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와 동치로 이해한다. 민주주의는 곧 인민의 자치(self-rule/self government). 그것은 또 자율(autonomy)’, 곧 인민의 자기-입법에 따른 통치다. 그런데 근세 자치의 역사에 대한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도대체 이 민주주의는 어디에 있는지를 묻게 된다. 자치가 때때로 그냥 분권으로 개념화하는 게 더 적절함 직한 사태들과 연결되는 것 같아서다. 유럽의 도시들이 근세에도 나름의 자치를 했다고 할 때 그 자치가 언제나 다수 인민에 의한 자치는 아니었고 군주적 제후나 귀족 또는 부유한 상인 등의 특권적 지배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자치는 반드시 민주적이지는 않다는 이야기인데 민주주의가 아닌 자치는 어떤 것일까? 둘은 서로 별개의 개념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그리고 국민국가 수준의 민주주의도 넓게 보면 자치의 한 형식이라고 볼 수 있지는 않을까? 단지 지역이나 지방 수준에서만 자치를 의미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엄밀하게 보면 분권도 자치와는 다른 개념인데 이 둘은 또 어떻게 연결되고 다른가? 많은 질문이 솟았다고 피력했다.

이어 장 교수는 오늘 토론을 준비하며 새삼 확인했던 또 한 가지는 유럽의 다양성이었다. 그리 넓지 않은 대륙에서 잦은 전쟁 속에서 서로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았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겉보기의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꽤 다른 역사적 경로를 거쳐 발전했다는 사실이 자치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니 새삼 훨씬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았다. 가령 제법 중앙집권화된 프랑스와 지역적 고유성이 강한 독일의 현재에도 확인되는 차이는 이 근세 시기 이래의 근대화과정에서 보인 두 나라의 서로 다른 경로와 깊이 관련이 있겠다라며 이와 관련하여 만약 우리가 이런 사실을 좀 강하게 자치의 역사적 경로의존성 같은 걸로 이해한다면, 분권 전통이 약하고 중앙집중적 전통이 강하며 유럽보다는 훨씬 더 오래 전부터 유사-국민국가적 형식을 갖고 있었던 우리나라의 경우 자치의 역사적 전통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런 의문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장은주 교수는 또 서구 근세의 자치 전통이 유지되고 후대로 영향을 끼칠 때 그 바탕에 깔려 있을지도 모를 자치 철학의 핵심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발제자가 초점을 둔 근세 시민의 자치정신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토크빌은 프랑스 혁명 이전부터 프랑스 국민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 중의 하나로 자유의 정신을 이야기했다는데 그때의 자유 개념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이탈리아 자치 도시들, 특히 피렌체에서 꽃핀 공화주의적 자유 개념과는 다른 자유 개념일까? 또 독일 제국도시들이 민주주의와는 다르게’ ‘공화국처럼인식했다고 하는데 거기에도 서양 고대 이래의 자유 전통이 작용하고 있었을까? 아직 자유주의가 충분히 발전하지 않았을 근세 시기까지 그 자유의 개념은 공화주의 전통과 관련이 있지 싶고, 자치의 철학적 토대로서의 자유 개념은 이런 공화주의적 자유 개념이어야 마땅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고 짚었다.

이와 관련해 그는 공화주의는 애초 노예제에 기초하고 있던 도리스인들의 크레타나 스파르타 같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 및 고대 로마에 기원을 둔다. 그 때문에 이 정치철학 전통에서는 노예와는 다른 자유 상태의 시민을 공화국의 중심 주체로 보면서 노예처럼 예속 상태에 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비-지배 자유(freedom as non-domination)라는 규범적 지향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했다. 노예는 주인이 행사하는 자의적 지배에 언제든 종속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자유인인 시민들은 바로 그런 노예 상태를 혐오했고, 그러한 비-노예 상태로서의 자유에 대한 지향을 자신들이 주도하는 공화국의 가장 중요한 규범적 토대 또는 도덕적 목적으로 삼고자 했다. 그러한 비-지배 자유 상태는 모두가 법에 종속되는 온전한 법치 또는 법의 지배(rule of law)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이해되었다. 지배는 권력을 가진 사람의 자의에서 비롯하기에, 모두가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법의 지배 아래 놓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법치는 우리가 흔히 이해하듯이 법을 수단으로 한 지배(rule by law)’가 아니라 자의적 지배가 가능한 인치(人治)’에 대비되는 개념이라고 제시했다.

계속해서 장 교수는 이러한 비-지배 자유의 이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자치(self-government; self-rule)의 이념이다. 이 전통에서 자유는 곧 자치고, 자기-지배다. 공화주의는 자유를 위해서는 자의를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특정 사람()의 인치가 아니라 법치가 중요하다고 보았지만, 그런 법치도 나에게 강제로 외적으로 부과된 법에 따른 것이라면 나는 결코 자유롭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내가 그 법을 만드는 데 다른 모든 사람과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바로 법이나 규율을 만든 이가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자율(autonomy)이념으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인민주권의 이념으로 발전한다. 이런 사유 전개는 특히 민주적인 지향을 가진 공화주의에서 두드러진다라며 물론 이런 큰 줄기의 이야기가 유럽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실제의 정치 질서와 자치 전통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번 토론을 통해 막연했던 서양사의 많은 부분을 새삼스럽게 좀 더 자세하게 확인했다. 물론 아직 안개 속에 있는 게 훨씬 더 많다. 뜻밖에 얻은 배움에 깊이 감사한다고 말하며 토론을 마쳤다.

발제를 맡은 이관춘 교수는 오타키 교수 저서의 방대한 내용에 놀라면서 한편으로 생존자 편향의 오류를 떠올렸다.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의 해군분석센터 연구원들이 전투기 연구를 하면서 총탄자국 부분을 연구하면 더 튼튼하게 만들겠다 생각했는데 살아 돌아온 전투기 총탄자국 연구가 중요한 것인가, 살아 돌아오지 못한 전투기가 더 중요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총탄자국이 아닌 다른 곳을 맞았으니 격투된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게 바로 생존자 편향의 오류. 오타키 교수가 역사를 볼 때 그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구나를 느꼈다. 역사를 사료 중심으로만 보는 것은 살아 돌아온 전투기의 총탄자국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작 중요한 격추당한 전투기의 다른 부분을 못 보는 그 점을 강화시키는 정책을 채택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대, 한 사회가 어떤 역사를 다루고 혹은 다루지 않는 것처럼 그 사회의 성격을 보여주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라며 자치는 교육철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나 그간 다른 용어로 썼기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수 있다. 알튀세르의 문제설정 개념의 관점에서 이 저서는 학문적으로도 흥미가 컸고 공부할 것도 너무 많아 그 재미로 지난한 작업을 하게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치의 관점에서 문제 설정을 하고 보니 오타키 교수는 총탄자국이 없었던 곳, 총탄을 안 맞은 곳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구나를 느꼈다. 후대 연구자들은 총탄자국에만 관심이 있었던 셈이다. 학문적으로도 또 주민자치라는 실제 삶의 문제와 관련지어서 볼 때도 중요한 의미라고 본다. 아울러 발제를 준비 하면서 근세를 중세와 현대 사이의 징검다리, 300여년 기간으로만 생각하다가 정말 보석 같은 내용이 다 박혀 있구나 하면서 혼자서 흥분했다. 다음 회차 내용이 매우 중요하다. 오늘은 도시시스템, 정치체와의 관계에서 자치가 어떻게 꿈틀하고 투쟁하며 이뤄졌는가를 봤다면 다음 주는 근세 사상가들이 자치를 어떻게 이해하고 절대군주체제 하에서 왜 그런 얘길 했을까라는 관점으로 다뤄본다면 오늘 토론에서 두 분이 지적한 문제점들이 더 잘 이해될 것이라고 답했다.

전상직 한국주민자치학회장은 자치는 다양, 다층적, 다원적이라 정의가 어렵다. 논의를 하면 할수록 복잡하다. 보통은 개인차원의 자치에 집중하는데 저자는 국가 내 사회현상, 집단차원으로 봤을 때 그 안에 자치성이 얼마나 구현 됐는가 그 현상에 집중했다는 게 매우 탁월하고 대단하다고 평했다.

이창균 한국지방자치연구원장은 근세의 자치 발제를 들으면서 민주라는 입장에서의 자치는 아닐 수 있지만 과정은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주민자치의 앞으로의 나아갈 방향은 주민주권에 의한 주민자치로 잡아야 할 것 같다. 중앙집권적 주민자치, 지방자치를 배제하고 이걸 타파하고 지역, 복지, 권한을 지방스스로, 주민에 의해 정하는 지방분권적 주민자치로 나가야 한다. 그러나 중앙집권적 논리, 사상이 이어지고 있다. 이걸 어떻게 지방분권적 주민자치로 나아가게 할 것인가가 과제인 것 같다. 미군정시대 일본처럼 책임명확’ ‘효율성제고’ ‘기초자치단체우선의 원칙(보충성-보완성 원리)’ 같은 지방분권 원칙을 우리도 명확히 하면 좋을 것이라고 제시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저자가 철학도이지만 현상학적, 역사적 방법론을 통해 개념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가를 보는 것 같다. 보통은 개념을 알면 다 될 거 같은데 자치의 개념은 뿌리 깊기에 역사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저자에게 있었던 것 같다라며 근세는 특히 상공인-부르조아-귀족-엘리트 중심으로 자유권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자치가 되기 위해서는 열린 공간, 경쟁하는 공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군주, 영주, 교황, 주교, 부르주아 등 다섯 행위자들이 권력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도시의 자치공간이 생긴 것 같다. 행위자들 간의 권력관계를 보지 않고는 자치 개념에 대한 이해가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유럽이라고 다 같은 유럽이 아니다. 가톨릭이 강한 프랑스 주변, 종교개혁에 성공한 독일, 영국, 네덜란드, 미국 등은 각각 국민국가를 만들어가는 방식도 달랐다. 후자는 왕이 영주들과 타협해 패리시 공간이 살아났고 중앙집권이 아니어도 의회를 통해 국민국가가 가능했다. 그런데 전자인 프랑스는 중앙집권적 왕권과 종교가 폭력적 방법으로 국민국가를 만들었다. 국가연합 방식이 아닌 중앙집권 방식이기에 지방자치, 주민자치가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라며 자치라는 개념을 추상적, 보편적으로 쓰게 되면 자치의 본질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다. 역사적으로 봐야 한다. , 교황, 영주, 부르주아 둥 행위자들 간 권력관계와 투쟁 속 자유권 보장 과정, 도시자치부터 출발한 것 아닐까? 상공업에 기반한 엘리트, 부르주아 중심의 자율적 공간이 있었는데 국민국가 편입과정에서 근대국가를 어떻게 만들거냐 즉 보텀업 방식, 연방제를 통할 것인가 아니면 중앙집권적 방식으로 만들 것인가에 따라 다른 형태를 띠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고 덧붙였다.

최수연 건국대 교수는 동시대를 살지만 동일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주민자치 역사를 바탕으로 주민자치학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모습에서 많은 공부가 됐다. 리좀형 사유방식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됐다. 다양, 다층, 다원성을 설명하는 하나의 개념이 리좀형 사유방식이라고 본다. 수목형이 아닌 리좀형 사유방식으로 필요하다면 자치학이 이 시대에 필요한 학문이 되지 않을까. 자치학과 제가 공부하는 평생교육이 많은 점에서 닮아 있다. 학문적으로 고민을 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발제자인 이관춘 교수는 “‘근세의 자치를 사상이 아니라 근세시민의 자치정신으로 보자는 것의 포착을 엄격한 사료 해석이 아닌 맥락과 현상을 통해 살펴보자는 것이다. 근세의 자치를 지금 잣대로 보려고 하면 안 보인다. 근세에는 당연히 자치라는 말은 없었다. 현대적 개념으로 근세 유럽을 해석하려면 논쟁이 끊임 없을 것 같다고 짚었다.

전상직 교수는 민주와 자치를 거의 동치화 시켜도 되는 것 아닐까? 이 부분에 고민이 많았다. 민주와 자치는 교집합이 큰 것은 사실이나 여집합, 차집합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그걸 찾아서 보태는 게 제 임무인 것 같다. 민주는 권리, 절차가 주어지면 성과가 저절로 나올까? 실제 조직에선 역량이라는 게 따로 있다. 민주화에 잘 포함이 안 된다. 자치를 공부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있는 사람들의 역량으로 할 수 있는가 하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민주에서 민이 주가 될 자격을 갖추는 문제, 이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자칫 역량으로 환원시키면 무궁무진, 전지전능하다는 것으로 연결되는가? 능력이 출중하면 자치가 된다고 했을 때 그렇다면 능력자에게 덕성이 따라가는가? 이런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매우 어렵고 복잡해진다고 덧붙였다.

사진=문효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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