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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자원 기반 주민자치 연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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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자원 기반 주민자치 연구 필요
  • 박서현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 승인 2023.11.09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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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마을서 이뤄지는 주민자치적 활동의 시사점

제주 마을의 실질적 주민자치 전통

제주의 마을에는 주민이 마을의 공동자원(commons, 커먼즈)을 관리하며 마을을 공동으로 운영해온 관습이 존재한다. 이러한 관습은 사회의 변화 속에서도 일정하게 유지되어온 제주 마을의 전통이 됐다. 이 전통은 공동목장과 공동어장, 지하수 등의 공동자원을 공동관리 하면서 주민들이 마을을 직접 운영하는, 실질적 주민자치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한다면 이러한 전통에서 주민자치의 일종의 원형을 찾을 수 있다.

물론 행정의 관점에서는 제주 마을에서 여전히 이뤄지고 있는 주민자치적 성격의 활동은 주민자치로 이해되지 않는다. 우선적으로 그것은 이러한 활동이 행정동 보다 더 하위의 단위인 리 단위 마을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의 관점에서 주민자치는 행정동을 중심으로 주민자치회를 구성하거나 주민자치센터를 설립하는 것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 리 단위 마을에서 이뤄지는 주민자치적 성격의 활동은 주민자치로 인정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 주민자치라는 의미에서 제주 마을 사례가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 중요성은 우선적으로 주거의 공동성을 가지는 주민들이 공동자원을 관리하면서 축적한 자치 경험, 역량이 마을을 지속가능하게 유지하는 동시에 공동체로 만들었다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공동자원의 공동관리를 중심으로 하는 주민자치 성격의 활동이 마을의 지속가능성과 공동체성의 기반이 된 것이다.

 

공동자원 활용으로 주민 복리 증진하는 자생조직 필요

제주 마을에서 이뤄지는 주민자치적 성격의 활동이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주민이 자원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것, 이러한 관리를 위한 의사결정 구조가 있는 것, 그리고 의사결정, 관리 활동을 통해 공동체가 구성되는 것이 성공적인 주민자치의 필요조건이라는 점일 것이다. 그런데 이는 공동자원의 공동관리자(commoner, 커머너)와 주민자치의 주체인 주민 사이의 관계를 검토해야 할 논점으로서 제기한다.

 

목장조합이나 어촌계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공동자원의 공동관리자와 비공동관리자 사이에는 일정한 경계가 존재한다. 예컨대 주민 전체가 목장조합원이 되는 드문 사례를 제외하면 목장조합 구성원은 주민 전체가 아닌 일부다. 그렇다면, 주민의 일부가 공동의 자원을 활용하여 주민 전체의 복리를 증진하는 활동을 하며 마을을 공동체로 만드는 데 기여하는, 마을의 자생조직과 같은 것이 있어야 성공적인 주민자치도 가능한 것은 아닐까?

사실, 하나의 자생조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여 주민의 여러 필요를 충족하는 다수의 자생조직들이 있을 필요가 있다. 나아가 자생조직들의 활동이 주민의 여러 필요를 실제로 충족시킬 수 있도록 주민총회 같은 제도를 통해 조정될 수 있다면 이는 성공적인 주민자치에 기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이러한 조정의 과정이 곧 주민자치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민자치의 주체에 대한 물음

이러한 자생조직들의 필요는 마을민주주의론이나 동네민주주의론에서 강조하는 주민자치의 주체와는 또 다른 주체로서의 공동자원관리자에 대한 고민이 성공적 주민자치를 위해 필요하다는 함의를 가진다. 동네민주주의를 마을민주주의와 구분하는 논의와 비교하여 이 함의를 확인하기로 하자.

마을민주주의에서는 주민자치의 주체를 마을주민으로 이해한다면, 동네민주주의를 마을민주주의와 구분하는 논의에서는 마을에 거주지와 법적 주소지가 같은 주소주민’, 거주지와 법적 주소지가 다른 거주주민이외에도 거주지도 법적 주소지도 아닌 지역에서 직업이나 학업 등을 이유로 생활하는 생활주민이 있음을 주목한다. 물론 이는 생활주민까지 주민자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주민자치의 주체로 생활주민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논의는 주민 구성을 세분화하여 주민자치의 주체가 누구여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다시 던지게 만든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주민들로 이뤄진 다양한 자생조직의 활동이 성공적인 주민자치에 기여한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공동자원을 공동관리 하는, 주소주민과 거주주민 그리고 생활주민의 일부를 포함하는 자생조직이 어떻게 구성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자원 기반 주민자치의 대상·범위·성격에 대한 고민 필요

주민자치의 주체에 대한 고민 이외에도 주민자치의 대상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제주 마을에서 이뤄지는 주민자치적 성격의 활동에서는 마을 자생조직이 공동으로 관리·활용하는 대상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다. 어촌계의 경우에는 공동어장이, 목장조합의 경우에는 공동목장이 공동관리의 대상이 되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주민자치의 주체가 공동으로 관리하고 활용하는 대상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공동자원의 공동관리·활용이 기본적으로 공동체의 필요에 의한 것으로서 이러한 필요가 공동관리의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주민자치의 대상 역시 주민이 그 대상을 자율적으로 다스리려는 동기부여, 열정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대상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아울러 주민자치의 대상과 관련하여 다시금 주민자치의 범위를 설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때로는 예컨대 위의 목장조합, 어촌계 사례와 같은 리 단위의 마을 주민들로 이뤄진 소규모 공동체에 의한 자치적 활동도 있을 수 있고, 때로는 리 단위의 마을이 아닌 동 단위 혹은 그 이상의 대규모 주민들에 의한 자치적 활동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자치 활동의 규모가 그 대상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주민자치의 범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주민자치의 성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전술했듯 제주 마을에서 이뤄지는 주민자치적 활동은 우선적·일차적으로 주민의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이는 이러한 필요에 따른 활동이 공공성을 실현하는지의 여부는 열려 있는 문제임을 함축한다. 물론 공동체 돌봄과 같은 식으로 지역에서 공공성을 실현하는 활동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활동으로 제주시 동부 일도2동에 소재한 인화로사회적협동조합의 여성공동체 사업을 들 수 있다.

 

특정 지역에 초점을 맞춘 주민자치의 주체·대상·범위·성격에 대한 구체적 연구의 과제

인화로사회적협동조합은 제주시와 협력하여 여성공동체 사업을 진행했다. 이러한 여성공동체 중에는 발달장애아동에 대한 공동돌봄을 실천하는 공동체가 있었다. 이 공동체는 국가나 지자체가 제공하기 힘든 지역돌봄을 실천했다.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지방정부와 지역 협동조합이 협력하면서 공공성을 실현하는 활동을 전개할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화로사회적협동조합의 여성공동체 사업을 주민자치 자체라고 하기는 힘들겠으나 이러한 활동들이 주민자치를 키워가기 위한 가능성의 씨앗 중 하나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활동들을 발굴하고 확대하며 이러한 활동들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식으로 행정의 역할이 변화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때 비로소 공공성을 실현하는 주민자치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지원의 필요는 제주 마을에서 주민자치적 활동이 이뤄질 수 있었던 이유를 떠올린다면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제주 마을에서 주민자치의 이념에 가까운 자치가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마을에 공동자원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제주 마을과는 다른 도시에서는 도대체 어떠한 공동자원을 통해서 그것의 공동관리에 입각한 주민자치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일까?

실질적 주민자치의 실현을 위한 행정의 역할 변화와 함께 행정의 지원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아마도 몇몇 지역들에 초점을 맞춘 주민자치의 주체·대상·범위·성격에 대한 구체적 연구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에 입각하여 이러한 지역들에서 실질적 주민자치를 실현하며 이것이 확산될 때 비로소 주민자치를 통한 사회의 변화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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