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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설정 역사에 가려졌던 ‘자치’, 그 안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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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설정 역사에 가려졌던 ‘자치’, 그 안의 보물
  • 이관춘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 승인 2023.11.2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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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이관춘의 마을·자치·교육

지금은 당연시 되는 것이 그 출발은 투쟁과 혁명이었던 것들이 있다. ‘자치란 단어도 그렇다. 너무 흔하게 쓰여 그 뜻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시도가 무색해지는 용어가 있다. ‘자치도 그 중 하나다. 당연시 되고 너무 흔하게 쓰이면서도 그 소중한 뜻을 제대로 이해도 못하고 실질적인 실천도 못하는 것이 있다면 자치가 바로 그럴 것이다.

자기 일을 스스로 다스리는 것이란 자치(自治, self-government)의 자의(字意)가 드러내듯 자치는 곧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세상에 내 던져진[被投的]’ 존재지만 그 이후의 삶만큼은 각자가 자신의 삶의 준칙을 만들어 스스로를 다스리고 창조해나가야 하는 특출한존재다. 따라서 자치는 단지 먹고사는 존재의 차원을 넘어선, 인간 모두의 실존적 요청이자 당위적 욕망인 것이다. 이러한 실존적 요청, 욕망이 실현되고 충족될 때 인간은 비로소 자기효능감과 행복을 느끼게 된다. “자치, 그 안의 보물인 것이다.

 

문제설정으로 인한 인식론적 단절

하지만 자치에 대한 개개인의 인식은 과연 인간 실존의 보물이란 그 가치와 비례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정치사회적 관점에서 자치에 대한 인식 또한 마찬가지다. 자치란 단어는 넘치지만 제대로 된 지방자치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그렇다. 단체자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주창된 주민자치가 정치·행정의 인습적인 틀 속에 갇혀 실질화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지난 글(주민자치 20239월호)에서 철학자 알튀세르가 제기한 문제설정(problematique)’의 관점에서 그 이유를 제시하였다.

동서고금의 역사는 결국 문제설정의 역사이며 지금의 주민자치도 예외는 아니다. 알튀세르가 제시한 문제설정 개념의 철학적 의미는 차치하고서라도 그 말의 현실적 의미는 어렵지 않다. 상상을 해 보자. 만일 대통령이 그 식상한 자유’, ‘이념대신 주민자치를 틈틈이 역설하고 행정안전부가 적극 홍보한다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 문제설정에 따라 주민자치에 대한 인식이 고양되기도 하고 반대로 인식론적 단절(break)을 가져오기도 한다. 주민자치의 실질화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면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주민자치에 대한 문제설정에 무지했고 게을렀던 탓이다. 그 결과 주민자치란 보물은 가리어져 온 것이다.

문제설정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늘 곁에 있으면서 결정과 선택을 요구한다. 문제설정은 문제문제점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문제와 문제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김영국, 2011 HRD 11). 흔히 문제가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문제점에 대해 말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를 문제점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문제점이란 어떤 현상을 초래한 한 요인을 의미한다. 따라서 문제는 결과로 일어난 것을 의미하며 문제점은 결과를 초래한 원인이 된다. ‘~의 배경에 있는 문제점이란 표현이 한 예다. 필자의 대학원 인적자원개발 강의에서 종종 인용하는 사례를 들어보자. 어느 겨울 아침, 눈이 쌓인 자동차 때문에 고생한 출근자의 사례를 통해 문제문제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 회사원이 아침에 바삐 출근하기 위해 현관문을 연 순간 자기 자동차 위에 눈이 소복하게 쌓인 것을 발견한다. ‘! 시간 없는데 큰일 났네.’ 곧바로 부리나케 눈을 치운다. 꽁꽁 언 눈을 치우느라 많은 시간이 걸렸다. 눈을 치우고 시동을 걸기 위해 오토 키를 작동하니 바로 옆 차에서 뿅뿅하고 반응이 오는 게 아닌가. 아뿔사! 남의 차의 눈을 열심히 치웠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주목해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 또 다시 눈을 치우는데 소요되는 시간일까? 아니다. 문제는 눈도 아니고 차도 아니다. 차에 눈이 쌓인 것은 일차 문제점이고, 눈을 치운 차가 내 차가 아니라는 것은 이차 문제점이다. 문제는 회사에 지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점은 실수로 남의 차의 눈을 치우느라 시간을 허비한 것이 된다.

여기서 문제설정을 문제에 두느냐 혹은 문제점에 두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고 그에 따른 결과 역시 달라진다. 문제점에 문제설정을 하면 또 다시 내 차의 눈을 치워야 할 테고, ‘회사 지각이란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내 차의 눈을 치우는 대신 택시나 지하철 이용 등으로 생각의 전환이 일어날 것이다.

기업을 포함한 모든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매출이 하락했다고 하자. 여기에는 다양한 문제점이 뒤엉켜 있기 마련이다.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 저하, 직원의 사기나 헌신도 저하, 직원의 이직률 상승, 경쟁회사의 신제품 출시 등 다양한 원인[문제점]이 제기된다. 이 경우 경영진의 철학과 전략에 따라 매출하락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문제설정은 달라진다. 종업원의 업무능력, 사기 혹은 헌신도 저하에 문제설정을 할 경우 사내 교육훈련으로 눈을 돌릴 것이고, 경쟁회사의 신제품이나 직원 이직률 등에 문제설정을 한다면 보다 근본적으로 경영전략에 대한 인식론적 전환을 모색할 것이다.

 

자치 역사의 네 가지 관점

다시 주민자치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역사속의 인간으로서의 삶이 그러하듯 주민자치 또한 역사의 선로(線路)를 거슬러 올라가 볼 때 그 보물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재확인하게 된다. 문제는 주민자치라는 역사의 선로를 거슬러 찾아가면서 어디에 문제설정을 하느냐에 따라 정작 중요한 그 보물을 발굴해 낼 수도 있고 그냥 모르고 스쳐 지나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주민자치 역사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를 접근하는 다양한 관점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역사에 대한 관점은 다양하지만 다음의 네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레오폴드 랑케(Ranke)의 실증주의다. 랑케는 1824년 저서 라틴 및 게르만 제 민족의 역사1494~1514의 서문에서 역사란 객관적 사실의 집적(集積)이란 점을 강조한다. “지금까지 역사에는 과거를 판단하거나 윤택한 미래를 위해 교훈을 제공해 주는 기능이 있었다. 이 책은 고상한 과업을 달성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단지 그것이 진실로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려고 할 뿐이다.” 그는 무릇 역사가란 수많은 과거의 자료를 찾아 과거를 존재했던 그대로 밝히기만 하면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사실이 스스로 말하게 하라는 명제 하에 과거 사실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니 우선 사실을 확인하고 그 사실에서 결론을 추출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둘째 랑케의 실증주의 역사관을 비판하며 등장한 것이 베네데토 크로체(Croce)나 로빈 콜링우드(Collingwood)와 같은 현재주의 혹은 주관주의 역사관이다. 이들은 과거를 본래 있었던 그대로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역사란 살아있는 역사가의 머리속에서 재구성되는 현재의 역사일 뿐이며 주관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는 역사란 무엇인가란 책을 통해 위의 두 가지 역사관의 절충을 시도한 에드워드 카(Carr). 카는 랑케의 실증주의 사관을 비판하면서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단언한다. 또한 역사란 과거의 사실만도 아니며 현재의 해석만 중시되는 역사가의 역사도 아니고 역사적 사실과 해석 간의 끊임없는 상호 작용이자 대화가 역사라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과거에 관한 사료를 통하여 먼저 사실을 객관적으로 밝히고 이에 대한 주관적 해석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카의 역사관과 맥을 같이 하면서도 문화적 관점에서의 역사해석을 주장하는 신문화사(cultural history)’이다. 역사 연구의 경우 과거에는 주체와 연구자료 등이 왕을 비롯한 권력을 가진 지배층과 그들에 의해 기록되어진 관찬본(官撰本)이나 개인 문집 등이 주를 이루었으며 그 소수 지식인층이나 지배 엘리트들이 한 사회에서 통용될 기본 관념들을 제조, 전파, 관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절대다수인 민중들의 목소리는 물론 그들이 무엇을 먹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등에 대한 관심은 희박했다. 이에 반해 문화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역사관은 그동안 주로 사회사(社會史)라는 이름 아래 진행된 역사연구들이 구조나 구조적 변화의 과정에만 관심을 집중하였을 뿐 정작 역사의 주역인 민중은 소홀히 여겼다는 점을 지적한다. 따라서 과거 특정시기에 사회적 현실이 어떠하였는가보다는 사람들이 그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하였으며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였는가 하는 점이 관심사가 된다.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_ 한국어판 표지. 사진=까치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_ 한국어판 표지. 사진=까치

 

신문화사, 주민자치역사의 문제설정

위의 네 가지 관점들, 특히 카의 역사관과 신문화사적 관점은 주민자치의 역사를 들여다 볼 때 어떻게 문제설정을 해야 할 것인지 대한 의미 있는 준거를 제공해 준다.

카에 따르면, 주민자치에 관한 역사적 사실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과거에 있었던 자치현상 그 자체인 과거의 사실(fact of the past)’이며 둘째 사료 상에 기록되어 있는 자치에 관한 사실인 과거에 대한 사실(fact about the past)’, 셋째 역사가가 자치에 관한 역사를 씀으로써 성립하는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이다. 카의 말대로 과거의 자치 혹은 주민자치에 관한 이론과 실제가 모두 사료에 기록되어 있는 것도 아니며 설사 기록된 사료라 해서 모두 역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역사가는 현재적 관심에 따라, 특히 그람시가 강조하는 헤게모니에 의한 역사가의 주관적 해석에 따라 과거에 대한 사실들가운데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것들만을 역사적 사실로 선별해 역사 이야기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결국 카의 말대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항대립의 한 항인 과거는 현재의 역사가 혹은 지금의 우리와 관련해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말이 없는 과거의 사실을 대화의 장에 불러들이는 것은 지금의 우리다. 우리가 문제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전술한 대로, 한국이든 서양이든 시기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역사는 기본적으로 통치의 역사였다. 그에 따라 사료 상에 기록된 과거에 대한 사실에서 신민 혹은 민중[시민]의 자유·자치에 대한 내용은 별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자치 이론이나 사상 역시 마찬가지다. 상층계급이 주축이 된 추상적 수준에서의 체계적인 통치이론은 형성되었지만 그들에 대항하는 체계적인 자치 사상의 형성은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민중의 자치 및 자율이 과거의 사실(fact)’이었다 해도 사가(史家)의 기록에 명시적이며 구체적으로 등장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자치의 역사에서 주목할 점은 사가의 기록은 없지만 그 기록이 없기에 과거의 사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역설이 성립한다는 점이다. 한 예로 서양의 중세시대에 시민자치의 유무는 특허장의 존재 여부나 문서기록의 유무를 기준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러한 특허장의 존재는 달리 보면 영주를 포함한 지배계급으로부터의 억압이나 권리 침해가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그러한 억압이나 권리침해가 없이 평온하게 지역의 자치가 이루어졌던 지역에서는 굳이 그런 헌장을 요구할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사학자인 수잔 레이놀즈가 인가장 형식과 지역공동체의 자치 및 자율의 정도 사이에는 거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같은 맥락에서 자치의 역사는 민중들의 도시 공동체적 삶의 역사라는 점에서 문화사적 관점이 요구된다. 카의 현재와 과거의 대화현재의 문화와 과거의 문화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신문화사적 접근이 강조하는대로 과거 인들이 당시의 삶 속에서 자유와 자치를 얼마나 중요시 했으며 또 어떤 방식으로 자치·자유를 쟁취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그들의 가치체계 혹은 문화로의 문제설정의 전환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자치 및 자율정신과 같이 민중의 삶과 직결된 과거와의 대화는 문화의 코드를 통해서 여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인물들의 생각 및 행동 등 다양한 정황적 증거를 토대로 맥락을 구성하고 사료 이면에 잠재되어 있는 다양한 층위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주민자치라는 역사적 사실과 대화하기 위해 그리고 과거의 주민자치 사상을 제대로 포착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문제설정이다. 문제설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묻혀있던 주민자치의 사실이 드러날 수도 있고 자치란 개념 감옥에 갇혀 묻혀있던 자치 시민들의 자치정신이 빛을 볼 수도 있다. 주민자치는 주민자치철학의 실현이다. 문제설정의 역사 속에 가려졌던, 자치 및 자치철학이란 보물을 밝혀내는 학문적 관심과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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