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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예안향립약조(禮安鄕立約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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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예안향립약조(禮安鄕立約條) (2)
  • 박경하 한국주민자치학회 부설 향약연구원장(중앙대학교 역사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3.11.2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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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약 이야기

지난 호에서 <예안향립약조>의 서문을 통하여 퇴계가 재지사족들의 향촌자치기구인 유향소(留鄕所)를 통하여 나빠져 가는 향촌 풍속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목적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향립약조(鄕立約條)’를 마련케 된 직접적인 동기는 향속이 나빠져 감을 우려하던 농암 이현보의 유지를 받들어 마련하게 되었다는 것과 덕업(德業)을 생략하고 과벌(科罰) 위주로 입조하게된 것은 덕업이나 인륜(彛倫)은 국가가 학교를 세워 가르치므로 생략하였고 과별은 예의를 침범하여 풍속을 허물어뜨리는 행위를 징계하기 위하여 부득이 입조하였다는 그 취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위와 같은 이유와 취지에서 입약된 조목을 보면 극벌조가 7조목, 중벌조가 18조목, 하벌조가 4조목(판본에 따라 5조목이 있기도 한다), 특별조가 4조목으로 모두 33개 조로 이보되어 있다. 이들 조목들을 벌칙의 등급별로 나누어 분석 검토하여 그 성격과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극벌에 해당되는 7개조의 조목을 들어 보면 아래와 같다. 지난 호에 번역을 하였으므로 이 번호에서는 원문을 직접 사용한다.

 

父母不順者不孝之罪 邦有常刑 故姑其次 兄弟相關者-兄曲弟直 均罰 兄直弟曲 正罰弟 曲直相半 兄輕弟重 家道悖亂者-夫妻歐罵 -其正妻(妻悖逆者 減等)男女無別 嫡妾倒置 以妾爲妻 以擊爲適 適不撫孽 孽反陵適 事涉官府 有關鄉風者 妄作威勢 擾官行私者 鄕長凌辱者 守身婦婦 誘豫汚奸者

 

이상 극벌 7개 조목의 특징과 성격을 검토하여 보면, 조에서 父母에 순종하지 않는 자를 징계하려는 조목은 향약에서 가장 먼저 규정하는 조목이다. 봉건시대에 있어 가정윤리에 대한 보호와 관심은 1차적인 것이었고 그 중에서도 불효에 대한 징벌은 윤리와 형전의 기본 항목이었다. 그러므로 세칙에서 불효에 대한 죄는 나라에 상형(常刑)이 있다. 그러므로 아직은 그 다음을 들겠다고 하였던 것 같다.

조에서 형제가 다툴 때나 조에서 가도폐란의 예를 들면서 부부간, 남녀간, 처첩간, 서얼간의 차례를 엄격히 규정한 것은 봉건시대의 가정 윤리 및 신분제 확립을 꾀하려는 의도이다. 조는 말할 것도 없고 조에서 형제가 서로 다투었을 때 형보다 아우를 더 무겁게 벌하도록 세칙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 더욱 그렇다.

조에서 가도패란자의 경우도 그 세칙에서 부처·난여·적첩·서얼의 경우 그 구별과 차례를 엄격히 지적하여 두었다. ··조는 이 조목들이 상천민들과는 상관이 없고 양반들을 대상으로 한 향규의 성격임을 보여 준다. 조에서 일이 관부에 간섭되고 향풍에 관계있는 자'조의 망령되이 위세를 지어 관을 흔들고 사사로움를 행하는 자, 조의 향장(鄕長)을 능욕하는 자등은 향회의 향원이나 재지사족들의 비행을 규제하려는 조목들로 상민과는 무관한 조목이다. 또한 관에 대한 도전을 하는 행위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하고 있다. 다만 조의 향장은 마을 유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 유향소 좌수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는 수절하는 상부(孀婦)를 유인하여 더럽히는 자에 대한 규제로 극벌로 엄중히 분류하였다.

 

위의 7개 조목을 어긴 자는 극벌로 다스리며 이에도 상중하의 구분이 있다. 극상벌의 경우에는 관가에 고하여 죄를 논하고 마을에서 우물과 불씨을 통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극중벌의 경우는 삭적(削籍)하고 불치향리(不齒鄕里) 즉 마을에서 나이에 따른 어른 대접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극하벌의 경우는 손도(損徒) 즉 자격정지하고 공회에 참여시키지 않는다고 규정하였다.

퇴계연보. 사진=경희대 도서관
퇴계연보. 사진=경희대 도서관

 

다음으로 중벌에 해당하는 18개 조목을 들어 보면 아래와 같다.

 

親戚不睦者 正妻疎薄者-妻有罪者減等 隣里不和者 儕輩相歐罵者 不顧廉恥 污壞士風者 悖強凌弱 侵奪起爭者 無賴結黨 多行狂悖者 公私聚會 是非官政者 造言構虛 陷人罪累者 患難力及 坐視不救者 受官差任 憑公作弊者 婚姻喪祭 無故過時者 不有執綱 不從鄉令 不伏鄕論 反懷仇怨者 執綱循私 冒入鄕參者 舊官餞亭 無故不參者 多人接戶 不服官役者 不勤租賦 圖免徭役者

 

이상의 18개 조목 중 앞의 ~까지는 인륜에 대한 조목들이고 나머지 조목들은 양반들을 상대로 한 향규의 성격이 두드러지는 조목들이다. 특히 患難力及 坐視不救者, 婚姻喪祭 無故過時者는 유교적 질서의 향촌공동체의 특징을 보여 준다. 公私聚會 是非官政者는 공사간의 모임 시에 관정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하여 논의하는 것을 금하고 있어 관과의 마찰을 적극적으로 피하고 있다. 執綱循私 冒入鄕參者는 사사로이 자격이 안 되는 자를 향안에 올려 향원에 향회에 참석케 하는 행위에 대한 규정이다.

이같이 전형적인 향규의 조목들이다. 이상의 18개 조목을 어긴 자는 중벌로 다스리는데 벌량은 향중의 공론에 쫓아 경중에 따라 시벌한다고 하였다. 많은 양민을 양반의 노비로 올려 놓아 관역에 따르지 않게 하는 자, 세금을 제때 내지 않고 요역을 피하려고 도모하는 자들을 향회에서 양반들 스스로 규제하여 관에 적극 협조하는 상황을 보여 준다. 즉 재지사족들은 관과의 대립을 피하고 협력체계를 통해 양반들 간의 자치권을 확립해 가는 성격임을 알 수 있다. 향촌민들에 대한 양반들의 침탈 행위를 규제하고 향촌의 지배자로서 즉 치향지인(治鄕之人)’으로서의 유교적 도덕적 우위를 자율적으로 만들어 나가고자 한 성격으로 판단된다.

 

다음으로 하벌(下罰)에 해당되는 5개 조목을 들어 보면 아래와 같다.

 

公會晚到者 紊座失儀者 座中喧爭者 空坐退便者

 

이상 4개 조목들은 비록 하벌이기는 하지만 이 조목들에서 보이는 특징은 유교적 적인 윤리관념에서 등한시하기 쉬운 사회의 공중도덕과 질서의식을 약조에 넣어 강조하였다.

 

끝으로 보고 들은 대로 적발하여 관에 고해 죄를 받도록 해야 한다(“隨見聞摘發 告官依律科罪”)4개 조목을 기술하였다.

 

元惡鄕吏 人吏民間作弊者 貢物使濫徵價物者 庶人凌蔑士族者

 

위에서 조는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규정한 원악향리(元惡鄕吏)’이다. 지위를 이용하여 악행을 저지르는 지방관서의 향리를 말한다. 원악향리를 <경국대전>에는 수령을 조종 농락하여 권력을 제 마음대로 부려 폐단을 일으키는 자, 사면(四面)의 촌락에 농사(農舍)를 사치(私置)하는 자, 뇌물을 받고 부역을 불공평하게 하는 자, 세를 수납할 때 과징(過徵)하여 남용하는 자, 양민을 불법으로 끌어다 남몰래 부려먹은 자 등이라고 4가지로 명확하게 규정하였다.

, 조도 향리나 향소 향임들의 패리를 징계하는 조목들이다. 조는 서민이 사족을 능멸하는 것을 규제하여 신분의 기강을 유지하려는 조목이다.

도산서원
도산서원

 

이제까지 검토한 각 조목의 성격을 정리하여 보면, 33개 조목 가운데 23개 조목이 향규의 성격이 더 큰 조목들이고, 8개 조목은 여씨 향약의 성격인 조목이다. 2/3에 가까운 조목이 향규 조목들이고 1/4 정도가 향약성격의 조목들이다. 또 여기에 향약 성격의 조목들이 꽤 들어와 있어도 그 서술이나 입조 형식면에서 실상 여씨향약은 별로 참고 되지 않았든 것으로 판단된다. 내용면에서는 전래의 것을 참고하였고,내용이나 형식 어느 면에서나 전래의 향규를 많이 참고하였다고 사료된다.

일제시기에 경성제대교수로 있으며 향약연구를 한 전화위웅(田花爲雄)1972년에 출간한 <조선향약교화사연구>라는 저서에서 퇴계의 <예안향립약조>와 율곡의 <해주일향약속>은 중국의 <여씨향약>을 참고하지 않고서도 나올 수 있는 조선적 향약임을 언급하였다. 이후 1976년 일인 전천효삼(田川孝三)1975<이조의 향규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퇴계와 율곡의 향약이 중국의 여씨향약과 다른 계통으로 조선 초기부터 재지사족들이 향촌사회를 자율적으로 운영하던 기구인 향회와 유향소에서의 제반 운영 규약인 향규라고 밝혔다. 이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김용덕 중앙대 교수가 1978<향약과 향규>라는 논문을 통해 신규 향규들을 발굴하여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에 1556년 입약된 퇴계의 <예안향립약조>와 거의 유사한 조목의 향규가 발굴되었다. 그것은 1451년에 제정된 것으로 기록된 <광주향약절목>이다. 퇴계보다 일백여 년 앞선 것이다. 따라서 퇴계향약은 퇴계의 독창이 아니고 조선 초기부터 운영해 오던 양반들의 자치조직인 유향소 규약을 퇴계가 준용한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12월 호에서 자세히 밝히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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