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6:55 (금)
세모에 생각하는 새해, '주민자치 eSG'의 문을 열자!
상태바
세모에 생각하는 새해, '주민자치 eSG'의 문을 열자!
  • 이관춘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 승인 2023.12.20 10: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관춘의 마을·자치·교육

한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다. 한 장 남은 탁상달력의 가벼움이 까닭모를 세모(歲暮)의 무거움으로 차갑게 다가온다. 섣달그믐이 가기 전에 뭔가 해야 할 일이라도 있는 지,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총총 발걸음이 분주하다. 나뭇잎을 남김없이 떨군 가로수들, 그 밑을 지나치는 이름 모를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듯 12월이면 그동안 잊고 지냈던 일상의 사소함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실존적사소함에 문득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된다. 생철학자 니체가 말하는 행복한 순간이다. 니체는 다행히도 인간이 행복해지는 데는 아주 적은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귀띔해준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더없이 적은 것/ 더없이 조용한 것/ 더없이 가벼운 것/ 도마뱀의 바스락거림/

숨결 하나/ 휙 하는 소리/ 한 순간/ 이처럼 작은 것이 최상의 행복을 만들어 낸다.“

 

최상의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이처럼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의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23년 세모의 문턱에서 존재하는 작은 것의 신비로움을 일깨워주는 니체의 책을 들척이다보니 최근 들어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는 자연환경문제, 그리고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우리 삶의 환경문제로 생각이 미치게 된다.

ESG 주민자치·평생학습 포럼

환경을 사수하라!(Environment),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Social),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라!(Governance).

서울특별시의회가 주최하고 한국주민자치학회가 후원한 ‘ESG 포럼이 지난달 27일 서울시의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포럼의 주제는 ESG 학습생태계 구축을 위한 주민자치 평생학습포럼. 발제를 맡은 필자는 포럼의 주제이자 메시지를 위의 세 마디 말로 표현하였다. 이 세 문장은 세계 경제 질서의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이면서 우리 곁에 있는 모든 기업들에게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기도 하다. ESG는 무엇보다 먼저 기업경영에 불어 닥친 혁명이다. 그러나 기업만의 문제로 치부할 경우 우리는 ESG의 본질을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된다.

필자는 ESG를 헤겔의 표현을 빌어 21세기의 시대정신(Zeitgeist)’이라고 규정한다. 자연환경은 물론 인간 삶의 환경의 위기가 임계점에 다다른 지구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박한 시대정신의 구현이 바로 ESG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ESG기업경영의 문제이자 기업의 이해관계자인 사회 구성원 각자 각자의 삶의 방식을 전환하는 자기경영의 문제라 할 수 있다. ESG를 시대정신으로 규정하는 것은 지난 반세기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온 자연의 경고가 이미 임계점에 달했다는 위기의식을 전 세계가 공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그동안의 인류의 역사를 끓는 물 속 개구리’(Boiling frog) 우화에 비유한다. 개구리를 끓는 물속에 집어넣으면 당연히 뛰쳐나온다. 그러나 따뜻한 물속에 개구리를 집어넣고 서서히 열을 가하면 개구리는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수 세기 전부터 경고등이 켜져 왔던 기후변화의 위기가 바로 그렇다. 기후변화는 정작 심각한데도 변화의 느림성 때문에 그 심각성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역설, 이른바 기든스의 역설(Giddens’s paradox)”이다. 기든스에 따르면 지구온난화와 그로 인한 기후변화의 위험은 직접 손으로 만져지는 것이 아니며 우리 일상생활에서 거의 감지할 수 없다. 따라서 아무리 무시무시한 위험이 다가온다 한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마하는 마음으로 그저 기다리고 있는 무기력한 상태에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든스의 역설에서 탈피하기 위한 실천전략이 바로 ESG.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더욱 더 화두가 되고 있는 ESG는 낯선 개념이 아니다. 지난 반세기 전부터 글로벌 차원에서 목소리를 높여온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지속가능경영 등의 개념에서 시작되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공유가치창출(CSV) 개념 등으로 강조되어 왔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위기감이 한층 고조되면서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구체적 실천전략으로 제시된 것이 ESG라 할 수 있다.

 

임계점에 다다른 지속가능성 위기

지속가능성 개념이 처음 제기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250년 전인 1713년 독일 산림학자인 칼로비츠(Carlowitz)미래 세대를 위해 비축해 두는 것이 산림학의 의무임을 강조한 산림학 이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많은 연구자들은 성장의 한계가 발표되었던 1972년을 지속가능성 개념의 기점으로 삼는다. 전 세계 25개국의 과학자, 경제학자, 교육자, 경영자들이 창립한 민간단체인 로마클럽1970MIT 과학자들(시스템 다이내믹스 그룹)에게 위임하여 인류 위기에 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는데 그 결과 나온 책이 바로 환경문헌의 고전이 된 성장의 한계(1972).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전 세계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면서 성서, 자본론, 종의 기원과 함께 세계를 뒤흔든 저서라는 평가를 받았다.

성장의 한계는 인구 급증과 급속한 공업화, 식량부족, 환경오염, 자원고갈 등 다섯 가지 문제로 인해 당시의 추세가 계속될 경우 전 세계의 경제성장은 100년 이내에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암울한 미래전망을 내놓았다. 50년이 지난 2022, 성장의 한계가 예측했던 그 불행한시나리오가 정확히 일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 예로 1970년대 초 330ppm인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2000년 무렵에는 380ppm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는데 실제로 370ppm으로 증가하였으며 2021년에는 414ppm으로 늘어났다. 세계인구와 경제, 환경오염 문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게 된 것이다.

반세기 전의 경고는 자연환경만이 아닌 인간 삶의 비인간적 환경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성장의 한계발간과 같은 해인 1972, 유네스코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더욱 비인간화되어가는 인간 삶의 환경문제를 지적하고 이를 교육차원에서 극복하기 위한 보고서, 존재하기 위한 학습을 발간하였다. 에드가 포르(Faure)가 의장을 맡은 유네스코 국제교육발전위원회가 발간한 이 보고서는 산업화의 가속화, 과학기술의 발전과는 반비례로 치닫고 있는 사회 불평등의 심화, 인간존재의 소외현상에 대한 교육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근대교육 성립 이후 지속적으로 양적 팽창만을 지향해 온 전 세계 학교교육의 존재와 의미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교육의 미래 방향성을 제시하고 개혁을 촉구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1987, UN환경계획(UNEP)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라는 브룬틀란(Brundtland) 보고서를 통해 지속가능발전개념을 공식적으로 제안하였다. 이 보고서는 지속가능발전미래 세대가 스스로의 필요를 충당할 수 있는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이라 정의하고, 이를 경제-사회-환경의 측면에서 모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바탕으로 ESG 용어가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1994UN글로벌 컴팩트(UNGC)에서 발표한 후 케어즈 윈(Who cares win)보고서에서다. 이 보고서는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와 관련된 문제들을 관리해야 한다는 트리플 보톰 라인(Triple Bottom Line)’을 제시하였다.

이후 20064UN책임투자원칙(UNPRI)이 제정되었고 ESG를 투자 결정과 자산운용에 고려한다는 원칙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2019년 코로나 펜데믹을 겪으면서 세계경제포럼(WEF)을 중심으로 기후변화, 공중보건, 환경보호 등 삶의 근본적인 혁신(Great Reset)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ESG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실천 원칙으로 부상하였다.

발등의 불기업의 ESG 경영

ESG 경영이란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의 요소들을 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경영전략이다. 물론 기업들이 갑자기 윤리적으로 바뀐 것이 아니다. ESG 글로벌 규제강화와 기업 투자자 및 소비자의 ESG 압력, 기업평가에 ESG 반영 등으로 인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투자자의 압력이다.

예를 들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Rock)CEO 래리 핑크는 20201월 투자자들과 기업 CEO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기후위기는 투자위기다. 앞으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투자 결정의 기준으로 삼겠다.” ESG 정보를 공시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투자 중단과 그 경영진에 대한 반대투표 의사를 천명한 것이다.

이 말 한마디에 전 세계 기업들이 화들짝 놀랐다. 하긴 운용 자산이 86800억 달러(96백조 원)에 달하는데다 우리나라 유수 대기업들의 대주주로서 막강한 힘을 가진 인물이다 보니 글로벌 기업들에게는 ESG를 실천하라는 으름장으로 들렸을 만도 하다.

핑크의 선언을 신호탄으로 ESG경영에 미적거리던 전 세계 기업들이 바짝 허리띠를 졸라맨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최근 몇 년 우리나라 주요 기업의 신년사와 주주총회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용어가 ESG였다고 한다. 이미 한국ESG기준원은 국내 1000곳 이상의 기업을 대상으로 ESG 성적을 주기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지면 상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환경(E)에 대한 책임은 기업경영 활동에서 발생하는 환경 영향 전반을 포괄하는 요소들로서 기후변화와 관련된 온실가스 배출, 탄소중립, 재생에너지 사용, 오염물질 배출 및 쓰레기 문제 해결 등이 중요 요소가 된다. 또한 기업이 소유 및 관리하는 사업장 외 가치사슬에서 발생하는 간접적인 온실가스인 Scope3 온실가스도 포함된다.

둘째 사회(S)적 책임은 임직원, 소비자, 협력사,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대한 기업의 권리와 책임의 요소가 포함된다. 즉 단순한 기업이익의 사회 환원을 넘어 산업안전 및 산업재해, 차별 금지와 근로조건의 인권정책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상생 공존을 위한 사회적 책임경영을 평가하는 것이다.

셋째는 지배구조(G)의 투명성이다. 기업의 경영진과 이사회, 주주 및 기업의 이해관계자의 권리와 책임에 대한 영역으로 이사회의 다양성, 주주권 보호, 임원급여, 공시 투명성, 윤리경영 및 감사기구의 효과성 등이 강조된다.

기업들은 앞으로 자사의 ESG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기업 내 ESG 정보는 더 이상 비재무정보가 아니라 재무정보가 된 것이다. 이를 위해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ESG 공시기준이 속속 마련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국제 ESG 정보공개 기준인 국제회계기준(IFRS) 산하 ISSB의 최종안이 마침내 확정됨으로써 글로벌 Big 3공시 기준이 모두 확정되었다. 이제 국가별 법제화 및 기업의 준비만 남아있어 기업은 물론 사회전반에 걸쳐 대책 마련에 더욱 분주해졌다. 전문가들은 ESG공시 의무화(2024-2025)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ESG 2.0’ 시대가 열린다고 강조한다.

 

새해, ‘주민자치 ESG’를 꿈꾼다

ESG는 기업의 비재무적 투자지표지만, 그 내용을 곰곰 살펴보면 불공정한 제도를 개선하여 우리사회를 보다 공정하고 민주적이며 사람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로 변화시키는 공존공생의 전략임을 알게 된다.

ESG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전 세계적 차원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머리를 맞대고 탄생시킨 혁명적인 패러다임 전환이다. 이제 기업은 돈을 얼마나 벌었는가?’에서 어떻게 벌었는가?’의 물음으로 전환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사회는 부 중심의 경제’(wealth economy)에서 진정한 웰빙 경제(well-being economy)’로 나아갈 것이고 또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전략이 ESG인 것이다. 이 실천전략이 기업교육은 물론 주민자치교육을 포함한 다양한 평생교육의 목적과 내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ESG 생태계 구축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기업은 내부적으로 ESG 목표이행을 위해 새로운 생태계의 구축이나 기존 생태계의 진화 방식을 통해 고유한 제품과 서비스 제공 및 파트너와의 협업 환경 구축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기업과 기업의 이해관계자인 정부, 투자자, 평가기관, 소비자들과의 역동적인 생태계가 구축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주목할 것은 기업의 구성원이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은 모두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각 지역의 주민이란 점이다.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 생산 및 소비의 주체는 곧 주민인 것이다. 따라서 ESG 생태계 구축에 유권자이자 소비자로서의 주민의 적극적인 이니시어티브가 필요하고 또 요구될 수밖에 없다.

앞서 본 대로 ESG 패러다임은 기업의 투자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투자자와 기업의 영역을 넘어 ESG는 이제 사회 전역으로 확대돼 일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투자자와 기업이 중심이 되었던 ESG에서 소비자로서의 주민이 주도하는 ESG로의 전환은 당위적 시대정신으로 요구될 수밖에 없다.

소비자 없이는 기업이 없다는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Drucker)의 말대로 ESG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는 소비자인 주민의 평가와 감시, ‘가치소비와 같은 적극적 참여로 기업과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미 사회적 기업에 대한 소비를 장려하는 운동인 영국의 바이 소셜(Buy Social)’ 캠페인에서 드러나듯, ‘가치소비를 통한 주민 주도의 ESG가 영국을 포함한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주민들은 사회에 건강한 영향을 끼치는 기업의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일자리 창출, 환경 보호, 인권 보호 등에 기여한다는 주인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시대정신으로서의 ESG 관점에서 볼 때 앞으로 세계는 ‘ESG ‘ESG 로 구분될 것이다. 기업은 물론 소비자인 주민을 비롯한 기업 이해관계자, 지자체, 기관과 단체 등 사회 전반에 걸쳐 ESG 패러다임으로의 인식전환이 요구되는 이유다. 이미 부분적으로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한 ESG 국가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ESG 도시를 표방하는 도시들도 등장하고 있다.

ESG는 조직이나 기관의 설립 목적 및 구성, 사업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정의될 수 있다. 주민자치에서의 ESG 정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떻게 개념이 정의되건 ESG는 주민 각자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자치개념과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 해가 무심하게 저물어가는 쓸쓸한 세모(歲暮), ‘주민자치 eSG’를 통해 주민이 진정한 주인으로 사는 행복한 새해를 꿈꾸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공공성(公共性)’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연구세미나95]
  • 문산면 주민자치회, 주민 지혜와 협의로 마을 발전 이끈다
  • 제주 금악마을 향약 개정을 통해 보는 주민자치와 성평등의 가치
  • 격동기 지식인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연구세미나94]
  • 사동 주민자치회, '행복한 끼'로 복지사각지대 해소 나서
  • 남해군 주민자치협의회, 여수 세계 섬 박람회 홍보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