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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고 싶은 어른을 가진 공동체 ‘어른 김장하 ․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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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고 싶은 어른을 가진 공동체 ‘어른 김장하 ․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
  • 윤성은 영화평론가
  • 승인 2023.12.26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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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
Town in Movie

얼마 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오랜 수험생 꼬리표를 뗀 우리 아이들은 곧 성인의 신분으로 그 동안 허락되지 않았던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알아뒀으면 하는 게 있다. ‘성인은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지만 어른이 되는 길은 쉽지 않다고. 그러니 어른 대접을 받고 싶으면 노력해야 할 거라고.

그런데, 우리 시대에 진정한 어른으로 일컬어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각자 살아남기 급급한 현대사회에서 오랫동안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존경받아온 어른이 있다면 정말 복 받은 공동체가 아닐 수 없다.

 

나이 먹으면 누구나 성인이 되지만 어른이 되는 길은 쉽지 않다

김장하 선생이 반세기동안 한약방을 경영해온 경남 진주는 바로 그런 영광을 누리고 있는 지역이다. ‘어른 김장하’(감독 김현지, 2023)MBC경남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로, 진정한 어른으로서 추앙받아 마땅한 그의 행적들을 집약적으로 담아냈다. 지역사회에서 유명한 분이기는 해도 주민들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선행과 겸손한 성품 때문에 영상을 보는 내내 가슴이 뭉클하다.

사실 김장하 선생은 평생 자신을 드러내는 인터뷰 한 번 허락한 적이 없는 분인데, 30년 전에 김장하 선생을 취재하려다가 실패한 적이 있는 김주완 기자가 먼저 선생의 주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책을 썼다. 7년 동안 그가 인터뷰한 사람의 숫자는 100명이 넘는다. 본인의 다큐멘터리 제작도 김장하 선생은 공식적으로 허락한 적은 없다고 한다. 김주완 기자가 끈질기게 틈날 때마다 선생을 찾아뵙자 카메라를 든 사람들을 그냥 놔두었고 시간이 쌓이자 방송용 다큐멘터리와 극장용 다큐멘터리가 완성될 수 있었다.

다큐는 김주완 기자가 왜 김장하 선생을 취재하기로 결심했는지부터 들려주며 시작한다. 혈기 넘치는 기자로서 사회의 부조리와 악한 사람들의 행적을 파헤치던 그는 어느 날, 반대로 본받을 만한 인물을 조명하는 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도 느끼게 되었고 그 대상으로 김장하 선생을 생각했다. 그러나 선생은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사람이어서 접근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는 의도치 않은 긴장감을 띤다.

 

관련된 모든 이들을 적극적 인터뷰이로 만든 김 선생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선생과의 인터뷰가 녹록치 않자 김주완 기자는 먼저 선생에게 크고 작은 은혜를 입은 사람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청했는데 이처럼 모든 이들이 인터뷰에 적극적인 경우는 기자 생활 동안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 사람들은 하나 같이 김장하 선생에게 받았던 도움이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다며 또 다른 인터뷰이를 소개해 다큐멘터리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대체 선생은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경남 사천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김장하 선생은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후 삼천포의 한 한약방에 취직해 주경야독했다. 열아홉 살에 한약업사 자격을 얻어 1963년 사천시에 한약방을 개업했는데 10년 후 진주시로 이전해 50년간 운영하다가 작년 5월에 문을 닫았다. 그렇게 60년간 한약방을 하며 번 돈을 김장하 선생은 모두 지역사회를 위해 헌납했으며 본인은 늘 검소하게 생활했다.

그는 20대부터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는데 그의 장학금을 받은 사람은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0억이 넘는 사재를 들여 세운 명신고등학교를 국가에 헌납한 일도 있었다. 자신이 가난 때문에 중학교까지 밖에 나오지 못했던 설움을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학생들과 교육 사업을 후원하면서 풀어낸 것이다.

그는 진주 지역의 각종 문화예술단체, 언론사, 환경단체 등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진주신문’ ‘진주가을문예’ ‘진주문화를 찾아서등의 지속적 발간은 그의 후원에 힘입은 부분이 크다. 그의 관심사는 이렇듯 주로 지역사회와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데 있었다.

그는 형평운동기념사업회를 통해 인권운동에 앞장섰으며 여성들을 위한 시설도 만들어 운영해왔다. 보수적 성향이 강한 경남 진주에서 그는 호주제 폐지를 위해 앞장선 몇 안 되는 중년의 남성이기도 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처럼 그는 주류 이데올로기에 편승하지 않고 정의란 무엇인지 늘 고민하며 그것을 실행하려 애썼던 사람이다.

김장하 선생의 이타적인 삶은 감히 범인들이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기에 어떤 관객들은 그를 동화나 판타지 속 인물처럼 받아들일지 모른다. 모든 사람이 선생처럼 사재를 모두 털어 사회에 헌납하며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그처럼 살 수 없다는 열등감으로 김장하 선생을 시샘하고 방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른 김장하는 그의 선행을 두고 언젠가 한 자리 차지하려는 수작으로 치부하며 헐뜯거나 대놓고 인신공격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음을 알려준다. 그들은 선생을 꾸짖고 협박하기까지 하는 등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악의 반응을 보여준다. 그러나 선생은 그런 이들에게 책잡히지 않을 만큼 깨끗한 삶을 살아왔기에 두려움 없이 그런 비난과 위협에 맞서 이길 수 있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는 실로 성인(聖人)과 같은 존재다.

 

프란치스코 교황, 청빈한 삶 살며 새로운 인류애 보여준 혁명가이자 성인

그래서일까. ‘어른 김장하를 보며 떠오르는 영화가 하나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Pope Francis: A Man of His Word. 감독 빔 벤더스 2019)는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관한 다큐멘터리로 다양한 주제에 대한 그의 가르침을 명확하게 들려준다. 뉴 저먼 시네마의 거장으로 베를린 천사의 시’(1987)와 같은 극영화를 비롯해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1999), ‘피나’(2011), ‘제네시스’(2014) 등 예술가들에 대한 다큐도 만들어왔던 빔 벤더스가 연출을 맡아 담백하면서 감동적인 작품을 만들어냈다.

최초의 비유럽권 교황, 예수회 출신의 첫 교황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그는 이전까지의 교황들과 다른 면모를 보여주어 왔다. ‘성 프란치스코는 위대한 성인이자 청빈한 삶을 살며 혁명가로서 새로운 인류애의 본을 보여준 인물인데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택한 교황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자원이 넘치는 현시대에 지구 어느 한 편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가진 사람들이 나누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많이 가진 사람들은 조금 가난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시대에 걸맞게 환경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가장 긴급한 과제이며 현대의 인간은 자연이라는 조화를 역행하고 있음도 지적한다.

무엇보다 그는 성인으로 선포된 최초의 사람이 죄수였던 예수라고 말하면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에 대해 강조한다. 이러한 설교는 그의 삶 속에서 실천되고 있다. 그는 화려한 바티칸궁이 아니라 소박한 방에서 생활하고 고급 리무진이 아니라 소형 승용차를 이용하며 고통 받는 이들에게 직접 찾아가고 이웃의 작은 고민을 들어준다.

 

지역사회 바꾸는 힘, 단 한 명의 진정한 어른에게서도 나올 수 있는 것

김장하 선생과 다른 점이 있다면 교황의 삶은 세상 모든 이들에게 공개되고 끊임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올바른 삶을 살도록 설득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일 것이다. 또한 그의 활동 범위는 지역사회가 아니라 전 세계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가톨릭 성도들의 커뮤니티가 있다. 어떤 종교든 성도들은 영적 지도자의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받기 마련인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스스로 모범을 보이면서 성도들이 보다 이타적이고 정의로운 삶을 살기를 권고하고 있다.

극장판 어른 김장하가 완성되었을 때 김장하 선생은 연출을 맡은 김현지 감독에게 수고했다는 말은 전했지만 시사회에는 오지 않았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저 선생답다고 생각했단다.

자본을 우상시하는 시대에 김장하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습니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핍니다.”

김장하 선생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이러한 그의 신념을 이어받아 매사 나눔을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지역사회를 바꾸는 힘은 이처럼 단 한 명의 진정한 어른에게서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다큐를 통해 선생의 삶을 알게 된 관객들이 그와 같은 어른이 되고자 해야 할 때다.

 

사진=()시네마달/백두대간영화사풀

 

많은 영화의 배경이 마을이다. 영화 주인공들의 삶의 터전 역시 그들이 사는 마을이고 동네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배경이 되는 마을, 그리고 이웃들과 때로 갈등하고 협력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간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되기도 하고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앞으로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에서는 마을과 사람들의 케미스트리, 그들 사이의 교감과 성장, 변화를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 속에서 주민자치의 바람직한 방향, 때로 반면교사의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 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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