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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기피시설로 촉발된 주민운동과 새로운 공동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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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기피시설로 촉발된 주민운동과 새로운 공동자원
  • 이재섭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 승인 2024.01.04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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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자원과 주민자치_ 공동자원을 활용한 주민자치와 균형발전 방안

자연마을에서 활발한 주민자치가 이루어지는 제주에서는 여러 가지의 이유로 잔치가 열린다. 마을에 잔치가 열린다는 것은 여전히 마을이 살아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고 마을 주민들의 자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자치는 동 지역보다는 읍면 지역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봉개동의 자연마을과 주민자치

최근 동 지역인 봉개동에서도 마을 잔치가 열렸다. 봉개동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동부 중산간에 펼쳐져 있다. 동 지역 동쪽 끝에 위치한 봉개동에는 2444세대 5385(20231031일 기준, 봉개동주민센터)이 살고 있다. 일반적으로 마을 잔치는 마을회가 주관이다. 하지만 이번 행사는 봉개동 쓰레기매립장 주민대책위원회의 주관으로 열렸다.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열린 행사에는 많은 봉개동의 주민들이 참석하였으며 주최 측이 준비한 식사와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고 기념품을 받아 갔다.

마을에는 다양한 자치 조직이 있다. 제주의 마을에는 마을회, 노인회, 청년회, 부녀회, 개발위원회, 어촌계 등의 자치 조직과 자연마을 단위의 자치 조직이 존재한다. 봉개동은 1개 행정동에 3개의 법정동(봉개동, 회천동, 용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5개의 자연마을(봉개오름명도암동회천서회천용강마을), 11개의 통으로 구성된다.

봉개동역사문화지(2021)’를 보면 1987년 봉개동의 인구는 약 3000명이었다. 당시 봉개동은 5개의 자연마을이 7개의 통으로 이루어진 농촌마을로 자연마을 단위의 주민자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봉개동 문화체육센터 앞에서 열린 마을행사 모습. 사진=필자 제공
봉개동 문화체육센터 앞에서 열린 마을행사 모습. 사진=필자 제공

 

지역 기피시설이 촉발한 주민운동의 성과와 한계

199010, 평온했던 제주도 중산간 마을인 봉개동은 발칵 뒤집혔다. 봉개동에 쓰레기매립장이 설치된다는 소식은 신문기사를 통해 지역 주민들에게 알려졌다. 당시 쓰레기매립장이 운용되던 노형동의 사용기한이 끝나고 새로운 매립지를 모색하던 제주시는 지역 주민들과의 사전 조율 없이 봉개동을 새로운 매립장으로 결정한 것이다.

주민들은 봉개동에 쓰레기매립장을 설치하겠다는 기사가 나오자 논의를 거쳐 쓰레기매립장 설치 결사반대 투쟁위원회를 구성한다. 이때 중심축은 자연마을이 운영해 오던 주민자치 조직이었다.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던 중산간 마을에 느닷없이 매립장이 들어서면서부터 마을 주민들은 입지선정 절차상의 문제와 환경 악화, 관광 발전 저해 및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기사가 보도된 이후 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마을총회를 개최하여 마을 차원에서 매립장 설치 반대를 재결의 하였다.

이후 제주시청에서 반대 시위를 벌였고 매립장 설치 철회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였다. 당시에는 주민들의 의견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기에 주민들은 운동의 목표를 부지 변경으로 전환하였다. 제주시의회의 중재로 지역 내 매립장을 받아들이면서 사용기한은 10년으로 연장이 없으며 악취 및 공해 방생 억제, 혐오 시설 추가 설치 억제, 마을 숙원사업 지원 등을 행정과 합의했다.

19927, 우여곡절 끝에 봉개동 쓰레기매립장이 준공되었다. 당초 매립장은 10년 사용 후 다른 지역으로 이설하기로 약속했었다. 하지만 2001년 무렵에 봉개동 외 매립장 입지선정이 마땅치 않았던 제주시는 연장 사용을 요구했다. 공식적인 협약은 아니었으며 당시 행정은 자연마을을 찾아다니며 개별 면담을 통해 마을의 필요를 충족시켜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다 2005~6년 무렵 봉개동 지역에 환경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은 이 문제에 대한 공동대응을 논의하기 시작했으며 2007년부터 무분별한 쓰레기매립으로 봉개동 지역의 피해가 심각해지자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다. 봉개동 주민들이 직접 지역 내 환경문제를 감시하고 언론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본격적인 주민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무렵부터 새롭게 봉개동 쓰레기매립장 주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행정과의 지난한 싸움을 시작하였다. 당시 구성된 쓰레기매립장 주민대책위원회는 봉개동을 구성하던 7개 자연마을에서 대표 3명씩을 선출하여 총 21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이중 1명을 위원장으로 선출하여 투쟁에 나섰다.

20113, 제주도와 제주시, 봉개동 삼자간의 운영 협약서가 체결됐다. 협약을 통해 제주시는 2016년까지 매립장을 사용하고 오랜 기간 지역 내 기피시설로 고통 받았던 봉개동 주민들의 환경개선, 소득향상, 복지증진 등 주민을 위한 사업비를 지원하기로 하였다. 지원금은 지역 내 도로 건설, 자연마을 단위의 요구사항 이행, 복지회관 건설 등을 위해 사용되었다.

봉개동 쓰레기매립장 이용에 관한 협약은 체결되었지만 행정은 지속적으로 협약서 내용을 불이행하였으며 주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당초 새로운 매립지를 선정하겠다고 봉개동 주민들과 약속하였으나 새로운 매립장 후보지로 봉개동 내 자연마을이 다시 선정되었다.

이에 주민들은 자신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행정에 대해 협약을 이행하고 입지 후보지에서 제외하라며 제주도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2014년에는 제주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실시하여 봉개동 주민들의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이후 제주시에서는 쓰레기대란이 발생하였으며 2016년을 기점으로 인구 및 관광객의 증가로 쓰레기문제는 제주 지역의 커다란 현안이 되었다.

쓰레기매립장 사용이 연장되면서 지역 주민들의 피해는 늘어났다. 이에 주민들은 매립장 관련 주민운동을 벌였고 쓰레기매립장 사용 연장을 위한 협약도 진행되었다. 그에 따라 지속적으로 행정과의 갈등이 도출되고 주민운동이 벌어졌으며 이후 협약이 체결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2016, 2018, 2021년 총 3회에 걸쳐 추가 협약이 진행되었다. 이후 봉개동은 상당한 규모의 공적 지원을 받았다. 또한 신재생에너지인 태양열 발전을 통해 봉개동은 일정 금액을 지원받고 있다. 현재 사용이 종료된 쓰레기매립장은 복토가 진행되고 있으며 향후 매립장 부지 이용에 대한 용역이 진행 중이다.

봉개동은 새로운 환경 이슈를 통해 자연마을 단위의 주민자치 조직의 연대체인 봉개동 쓰레기매립장 주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투쟁을 통해 봉개동 주민들의 권익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봉개동 지역의 숙원 사업들을 실현시켰으며 새로운 형태의 공동자원을 조성하였다.

봉개동에는 봉개동문화체육센터 외에도 봉개사우나라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있다. 이 또한 봉개동에 소각장이 들어서면서 주민 편의시설로 행정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이 시설의 경우 산북지역 주민지원협의체에서 운영관리하고 있다. 협의체의 구성 또한 자연마을 단위의 주민자치를 기반으로 연대체의 형태를 보인다.

결국 봉개동에서 새롭게 조성된 공동자원은 모두 자연마을의 주민자치 조직을 기반으로 하여 인적 구성을 하고 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봉개동 전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형태의 수익금은 자연마을에 배당되어 자연마을의 주민자치 활성화를 위해 사용되기도 하고 봉개동 관내 다양한 행사와 사업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봉개동 쓰레기매립장 연장 협약에 관한 보도자료 일부 캡처
봉개동 쓰레기매립장 연장 협약에 관한 보도자료 일부 캡처

 

새로운 공동자원과 지속가능한 주민자치의 지향점

봉개동의 새로운 공동자원을 운영하는 주체는 결국 자연마을 단위의 주민자치 조직의 연대체 형태의 모습을 띤다. 봉개동에 새롭게 조성된 공동자원인 봉개동문화체육센터와 봉개사우나는 현재 봉개동 쓰레기매립장 주민대책위원회와 산북 소각장 주민지원협의체에서 운영관리하고 있다.

이들 위원회와 협의체는 자연마을에서 추천한 주민들이 참여하여 다양한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수익금은 주민들의 편익과 복지를 위해 사용된다. 이는 자연마을의 주민자치를 활용한 연대체 형태의 동 단위의 의사결정 기구로 볼 수 있다.

봉개동에도 주민자치위원회가 구성되어 운영 중이다. 행정을 지원하는 주민센터와 긴밀하게 협업하며 운영되는 주민자치위원회는 별도의 예산이 없다. 주로 봉개동 지역의 봉사활동과 문화교육, 그 외 다양한 행정 지원 업무를 심의의결하고 있지만 권한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다만 주민자치위원회의 인적 구성이 봉개동 쓰레기매립장 주민대책위원회나 산북 소각장 주민지원협의체와 중복되어 있다. 사실상 주민자치위원회의 구성도 자연마을의 주민자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요 의사결정이나 핵심적인 의제는 서로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봉개동 관내 다양한 공동자원이 존재하지만 관리나 운영은 중층적으로 구성된 주민자치 조직에 의해 별도로 관리되고 있다.

문제는 향후 행정의 지원이 종료된 이후에도 자연마을 단위의 주민자치 조직의 연대체 형태인 현 위원회와 협의체가 효율적으로 공동자원을 운영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연마을과 봉개동 주민을 위한 지원이 가능한가에 있다. 인구가 적은 자연마을의 경우 주민운동을 통해 실현된 마을 공동자원으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음을 주민 개개인이 피부로 느끼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인구가 많은 지역의 주민들은 그 혜택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결국 새로운 공동자원들이 봉개동 주민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그 주민이 속한 자연마을에 따라, 그리고 주민운동에 직접 참여한 경험이 있는가에 따라 다르게 체감할 수 있다.

새로운 공동자원이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운영되어야 할까? 새로운 공동자원은 단순히 봉개동 혹은 자연마을 공동의 자산은 아니다. 봉개동의 공동자원은 이 마을에서 살아왔던 이들이 주민운동을 통해 마을사람들을 엮어냈던 연결고리였으며 그들의 오랜 고통의 시간에 대한 보상이었다. 새롭게 조성된 공동자원은 지역의 개발과 발전과정에서 끊어졌던 마을과 사람들을 다시 연결하고 지역에서의 삶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봉개동에 새롭게 조성된 공동자원이 지속가능한 주민자치를 위한 물적 토대가 되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살맛나는 봉개동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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