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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부조의 핵심 ‘연대성’과 ‘자율성’은 곧 주민자치의 원리[연구세미나87-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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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부조의 핵심 ‘연대성’과 ‘자율성’은 곧 주민자치의 원리[연구세미나87-①]
  • 월간 주민자치
  • 승인 2024.01.1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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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회 21세기 상호부조론과 주민자치의 원리

팬데믹과 경제위기, 자연재해와 전쟁이 몰아닥친 21세기에 상호부조의 의미와 역할은 무엇이며 이는 어떻게 주민자치와 연결될 수 있을까? 한국주민자치학회의 제87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가 21세기 상호부조론과 주민자치의 원리를 주제로 11일 서울 인사동 태화빌딩에서 열렸다.

박희봉 중앙대 행정대학원장이 좌장을 맡은 이날 세미나에서는 장석준 정의당 부설 정의정책연구소장과 허선 한국주민자치중앙회 대외협력회장이 각각 ‘21세기 상호부조론주민자치의 원리에 대해 발표했고, 남창우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 이관춘 연세대 객원교수, 채원호 가톨릭대 행정대학원장이 지정토론에 참여했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장석준 정의정책연구소장은 자신이 번역해 국내에 소개한, 미국의 법학자 겸 사회운동가 딘 스페이드(Dean Spade)의 저서 <21세기 상호부조론: 자선이 아닌 연대>(원제 Mutual Aid: Building Solidarity during This Crisis and the Next)의 주요 내용을 소개했다.

발표에 따르면 저자 딘 스페이드는 미국의 인권 변호사이자 사회운동가로 가난한 유대계 가정 출신의 열혈 트랜스젠더 운동가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는 컬럼비아대학에서 정치학과 여성학을 전공했으며 2001년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로스쿨을 마치고 변호사로 다양한 법률 구조 활동을 펼치는 한편 사회운동 경험에 바탕을 둔 집필연구 활동을 인정받아 현재 시애틀대학 로스쿨 교수로 재직 중이다.

 

상호부조 단체, 국가 재난 대응의 빈틈 채워줄 자발적 결사체

장석준 소장은 저자는 국가의 재난 대응에 커다란 구멍이 있을 수밖에 없는 현 상황에서 이 구멍은 시민들 스스로에 의해 메워져야 한다고 보고 입장에서 이를 위한 자발적 결사체가 바로 상호부조 단체다. 딘 스페이드는 누가 보더라도 아나키스트 사상가 표트르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의 고전 <상호부조론(Mutual Aid: a Factor of Evolution)>을 연상시키는 제목을 단 자신의 저작에서 이런 상호부조 단체들이 복합위기, 다중재난 시대의 시민사회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상호부조 단체들이 국가와 자본에 포획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일상에서 이런 포섭을 피하고 최대한 자율성을 누리기 위한 실천 방도들을 제시한다고 소개했다.

장 소장은 <21세기 상호부조론>의 주요 내용을 발췌해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재구성했다.

현 정치 국면을 규정하는 말은 비상사태. 코비드-19 팬데믹과 기후 변화에서 비롯된 산불, 홍수, 폭풍뿐만 아니라 인종주의적 경찰 폭력, 가혹한 이민 단속, 고질화한 젠더 폭력, 심각한 부의 불평등 같은 첨예한 위기들이 지구 곳곳에서 민중의 생존을 위협한다. 정부 정책은 오히려 상처를 낳고 더욱 키우는데다 위기에 부적절하게 대처함으로써 특정 집단이 공해, 빈곤, 질병, 폭력의 최대 피해자가 되도록 만든다. 이런 상황에 맞서 지역사회 안에서 대응에 나서야겠다고 느끼는 보통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으며 이들은 자원을 함께 나누고 취약한 이웃을 돕는 대담하고 혁신적인 방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혁명적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운동과 연계를 맺으며 벌어지는 이런 구조 활동을 일컫는 말이 상호부조. 상호부조는 모든 거대하고 강력한 사회운동의 일부였으며 전에 없던 위험과 대대적 참여의 기회와 마주한 바로 지금도 특별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상호부조의 안내를 받으며 사람들은 자신의 직접적인 관심사에 바탕을 둔 운동들에 연결되고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연대가 자라나는 사회적 공간들이 생긴다. 최선의 경우에 상호부조는 사람들이 인정 넘치는 돌봄시스템을 수립하게 만들어 상처를 치유하고 좋은 삶(well-being)을 촉진하기까지 한다.”

 

상호부조, 사회운동 및 연대 구축

발제에 따르면, 상호부조 프로젝트는 첫째 생존상의 필요를 충족하며 사람들이 필요한 바를 얻지 못하는 이유에 관한 공동의 인식을 구축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갖지 못하는 현실을 폭로하고, 이러한 불의를 함께 해결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둘째 사람들이 운동에 참여하게 하고 연대를 확장하며 운동들을 구축한다. 상호부조는 사회운동의 구축에 핵심이며 연대도 구축한다. 셋째 구세주를 기다리기보다는 집단행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참여적 성격을 지닌다. 사람들이 협력, 참여, 의사결정의 기술을 개발하도록 돕고, 본질적으로 반권위주의적이어서 이제껏 상상을 금지 당했던 방식으로 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강제 없이도 인간 행동을 조직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장석준 소장은 저자의 날카로운 지적도 함께 제시했다. 그는 책 내용을 빌어 위기 시에 사람들을 돕는 방법에 대한 주류의 인식은 자선과 사회적 서비스의 틀에 의존한다. 반면에 우리는 상호부조가 자선이 아님을 명확히 해야 한다. ‘자선’, ‘부조’, ‘구호’, ‘사회적 서비스는 가난한 이들에게 일정한 도움을 제공하는 것에 관해 결정하는 정부나 부자들에게 주로 적용되는 용어들이다. 자선은 점차 대규모 비영리 부문에 하청되고 사유화되는데, 이는 가난한 이들보다는 부자들에게 이득이 된다고 짚었다.

발표에 의하면 상호부조 단체의 네 가지 위험한 경향으로는 첫째 사람들을 도움 받을 자격이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나누는 것, 둘째 구세주주의에 빠지는 것, 셋째 흡수되는 것, 넷째 공공인프라를 없애고 사기업과 자원활동 만능주의로 대체하려는 시도와 협력하는 것이다.

장 소장은 상호부조 단체들에게 일상 활동의 매뉴얼을 제시하는 이 책 후반부에서는 특히 조직 내부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많은 단체들이 공동체를 표방하면서 기성사회와는 다른 대안적인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공동체를 꿈꿀수록 회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소속 단체에서 가족을 대신할 또 다른 가족을 찾으려 한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기대이고 반응이지만 동료들에게 정서적 만족감을 찾으려는 욕구가 강해질수록 이 욕구가 충족되지 못할 경우에 생기는 충격이나 상처도 커진다. 때로는 이런 감정적 긴장이나 충돌이 단체 활동을 둘러싼 의견 차이와 엇물려 걷잡을 수 없는 분규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러다 결국 분열하거나 해산하는 단체들까지 있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왕도는 없다. 하지만 정도(正道)는 있다. 바로 철저한 내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로 모든 문제가 다 시원하게 해결되지는 않지만 민주주의 말고 해결을 시도해볼 다른 방법은 없다고 밝혔다.

 

상호부조의 핵심연대성과 자율성, 합의형 의사결정 구조 등 내부 민주주의 중요

그는 또 우리에게는 20세기 복지국가보다 더 적극적인 형태의 사회국가(Social State)로서 돌봄국가가 필요하며, 동시에 국가기구와 대등하게 협력하면서 개인, 가족, 공동체의 수준에서까지 촘촘하게 위기와 재난에 대처하는 시민사회 주체들이 필요하다. 이런 적극적인 국가기구와 능동적인 시민사회 결사체들은 고도로 유기적인 소통과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하며, 바로 이러한 국가-시민사회 결합체야말로 민주주의의 유산을 후퇴시키지 않고 오히려 더욱 발전시키는 방향에서 복합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계속해서 장석준 소장은 저자 딘 스페이드가 강조하는 원칙은 결국 상호부조 단체, 더 나아가 시민사회 결사체 일반의 자율성(autonomy)과 연대성(solidarity)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상호부조 단체의 핵심원리를 시민 간 수평적 연대로 보며, 이러한 연대성을 배양하고 확산시키며 위기, 재난 현장을 오히려 연대성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사회 질서 구축의 기회로 만드는 데 상호부조 단체의 의의가 있다고 주장한다라며 하지만 연대성은 국가 관료기구와 거대 자본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받으며 침식당한다. 이에 맞서 저자가 내놓는 처방이 바로 자율성이다. 국가 관료기구와 거대 자본에 흡수당할 위험은 오직 끊임없는 일상적 실천을 통해서만 막을 수 있는데 이러한 일상 실천의 핵심가치가 자율성이다. 이 책 후반부에서 저자가 시시콜콜히 풀어내는 조직 운영, 조직 내 의사결정 과정, 재정 등등의 매뉴얼은 각 영역에서 상호부조 단체의 자율성을 지키고 극대화하는 방안들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그는 조직 내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다수결이 아닌 합의를 중심에 둠으로써 조직 내부에 승자와 패자를 만들지 않고 되도록 모두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의사결정 과정을 제안한다. 이 합의형 의사결정 구조가 곧 상호부조 단체의 핵심인 연대성과 자율성을 지탱하기 위한 중요한 과제인 셈이라고 발제를 마무리했다.

이에 대해 첫 지정토론자인 남창우 경북대 교수는 발표를 들으면서 자선, 부조, 구호, 사회적 서비스 등에 대한 인식, 상호부조 프로젝트 등 여러 측면에서 기존 사회의 방향과 차이가 있구나 하는 것들을 느꼈다. 가령, 정부는 정부(중앙, 지방)에게 주어진 재정(예산)으로 여러 역할을 하고 있는데 예산의 자원배분 기능, 소득 재분배 기능, 경제성장 및 안정 기능이 그것이다라며 특히 조직 내부의 민주주의를 강조한 것은 최근의 사회 전반에 그리고 사람들에게 깊숙이 자리 잡힌 민주 개념의 재인식 측면에서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상호부조는 곧 주민자치 원리좋은 삶위해 협력연대해야

다음으로 이관춘 교수는 딘 스페이드의 저서와 장석준 소장님의 발제는 주민자치의 관점에서 논의해 볼 때 그 의미와 가치가 더욱 살아날 것이라 생각한다. 주민자치에 문제설정을 할 경우, 이번 발제는 주민자치의 실질화에 매우 중요한 통찰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라며 역서를 곰곰이 읽으면서 주민자치의 원리와 실제에 대한 사유의 지평이 확대·심화되는 의미 있는 경험을 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저서의 제목인 ‘21세기 상호부조론‘21세기 주민자치론으로 치환해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주민자치의 실제적이며 이론적인, 두 측면에서 그렇다라며 양 측면을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상호부조 프로젝트를 그대로 주민자치 프로젝트로 바꾸어 놓고 그 실천방안을 논의해도 될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주민자치의 원리는 상호부조이며 그 목적은 좋은 삶(well-being)’이고 그 핵심 방법은 주민의 존엄성에 기반한 돌봄정의로운 시스템을 수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자치를 하지 못하는 주민들이 문제가 아니라 실질적인 자치를 하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 자체가 문제다. 주민 참여적 행동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또 저다 딘 스페이드가 말하는 상호부조 단체의 원칙, 즉 자율성과 연대성은 곧 주민자치의 원칙이다. ‘자선이 아니라 연대를 통한 자치, 그리고 상호부조를 통한 공동선, 좋은 삶(well-being)의 추구 역시 주민자치의 원리이자 목적이다. 따라서 따로 언급은 없지만 저자의 메시지에는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1902)이 관통하고 있다. 크로포트킨에 의하면 동물세계의 원리는 상호부조이며 인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에 따르면 인류 역사는 살아남으려 사력을 다해 경쟁하는 것보다, 서로 같이 살아남는 것을 선택한 진화의 결과이다. 이렇게 볼 때, 주민자치의 이론적 바탕으로 주목해야 할 진화의 원리는 바로 상호부조라며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과 스페이드의 현대판 상호부조론은 진화의 중요한 요소였으면서 인간본성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협력과 연대의 DNA를 새롭게 일깨워 주고 있다. 진화론에 입각한 상호부조론은 지역 주민들이 최소한의 에너지를 소비하면서도 최대한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게 해 주는 시스템이 바로 협력과 연대에 기초한 주민자치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고 짚었다.

사진=문효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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