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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품위 있는 사회’를 만드는가?[연구세미나89-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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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품위 있는 사회’를 만드는가?[연구세미나89-①]
  • 김윤미 기자
  • 승인 2024.02.02 1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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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회 품위 있는 사회

무엇이 사회를 품위 있게만들고 혹은 품위 없게만드는가? 이 도발적 화두에 대한 논의가 지난 1일 서울 인사동 태화빌딩에서 열린 한국주민자치학회 제89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 품위 있는 사회에서 진행됐다.

김성민 건국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은 이날 세미나에서는 이스라엘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Avishai Margalit)의 저서 <품위 있는 사회>(The Decent Society)에 대한 서평 형식의 발제를 장은주 영산대 교수가 진행했으며, 박정하 성균관대 교수와 조성호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원 그리고 김경호 한국주민자치중앙회 주민자치연수원장이 지정토론에 참여했다.

 

품위 있는 사회는 제도가 구성원들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

장은주 교수는 발제에서 아비샤이 마갈릿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에 초점을 둔 품위 있는 사회라는 새로운 규범적 사회 이념을 기획했다. 이는 성원들의 노동과 기여에 대한 대가의 공정한 분배에 초점을 두는 평등 지향적인 정의로운 사회의 이념보다 더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있으며 규범적으로도 우선적으로 실현되어야 할 바람직한 사회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품위 있는 사회는 한 사회의 제도들이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모욕(humiliate)’하지 않는 사회라고 보았다. 반면 사람들이 서로 서로를 모욕하지 않는 사회는 계명(啓明)된 사회”(the civilized society). 저자에 따르면 모든 정의로운 사회는 또한 품위 있는 사회여야만 한다. 그러나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가 바람직한 것으로 설정하고 추구해야 할 사회는 규범적으로 뿐 아니라 현실주의적인 이유에서라도, 꼭 정의롭지는 않더라도 반드시 품위는 있어야 한다. 정의로운 사회가 더 이상적일지는 몰라도 우리가 실현 순서상으로나 규범적으로 더 급하게 실현해야 할 것은 품위 있는 사회라고 저자는 보았다고 설명했다.

모욕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발제에 따르면 모욕어떤 사람이 정당한(sound) 이유로 자신의 자기-존중(self-respect)”이 상처를 입게 된다고 볼 수 있게 하는 모든 종류의 행위나 조건으로 단순히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규범적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모욕을 느끼는 이유다. 삶의 조건도 모욕의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사람의 행위나 불찰의 결과일 때에만 모욕적이다. 예컨대 자연은 사람들을 모욕하지 않는다. 오직 사람들의 행위들만이, 그리고 그들이 만든 제도들만이 사람들을 모욕한다. 품위 있는 사회는 성원들이 정당한 이유로 모욕감을 느낄 그런 조건들과 싸우는 사회이며, 적극적으로 규정하자면, 사회가 제도들을 통해 성원들을 존중하는 사회이다.

그렇다면 사회와 제도는 사람들의 무엇을 모욕하고 존중하는가? 발표에 의하면 이는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통칭할 수 있는 인간의 영예(또는 명예)(honor)”와 관련이 있다. 두 차원이 문제인데 하나는 인간의 자기-존중’(자존감)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평가(self-esteem)’(자부심)와 관련된 것이다. 자존감은 사람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근거와 관련되고, 자부심은 사람을 서로 다르게 대우하는 기초다. ‘자기-평가는 어떤 실제적이거나 잠재적인 성취와 연관된 서열적 개념이며, ‘자기-존중은 성취가 아니라 단순한 귀속’(belonging)의 자질하고만 관련되고 따라서 함께 귀속된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적용된다. 모든 사람은 그들이 단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본적인 존중의 대상이지만 어떤 훌륭한 사람으로 존중 받기 위해서는 일정한 서열적 평가의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품위 있는 사회에서 문제는 바로 그렇게 모든 사람이 마땅히 누려야 할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자기-존중이다.

 

인간에 대한 모욕은 곧 자기존중 침해-자유의 상실품위문화의 문제

장은주 교수는 사람을 모욕한다는 것은 곧 사람의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자기-존중을 부정하고 침해한다는 것이며 사람을 사람이 아닌 존재로 다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을 어떤 사물이나 기계로 또는 동물이나 어떤 열등한 인간으로 다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욕 없는 사회로서의 품위 있는 사회에서 문제는 사람을 일시적이거나 특정한 관점에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인간적 측면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동물을 학대할 수는 있지만 동물을 모욕할 수는 없다. 인간만이 모욕당한다. 인간의 인간성에 대한 무시, 사람을 마치 사물이나 동물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고 사람을 심각하게 결함이 있는 열등한 인간으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을 인간의 공동체(human commonwealth)”로부터 배제시키거나 거부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계속해서 장 교수는 모욕은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간-맹인 사람은 사람을 그들의 심리적 측면을 고려함이 없이 육체적인 차원에서만 보는 것이다. 문제는 그와 같은 모욕과 무시가 단순히 주관적이거나 어떤 우연적이고 순간적인 실수 같은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에서는 매우 구조적이고 체계적이며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깊이 뿌리를 내려 사람들의 삶의 양식의 어떤 근원적 차원과 연결된다. 자기-존중은 반드시 자신에 대한 타인의 태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회적 확인을 필요로 한다. 이 사회적 차원의 모욕에서 사람들이 관계 맺는 특정한 사회적 행위자들의 주관적 의도만이 아니라 체계적 모욕이 생겨난다. 사람들은 사람들이 만든 삶의 조건에 의해서도 모욕당할 수 있으며, 모욕이 반드시 모욕자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누가 모욕자인가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모욕을 느끼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며 이는 곧 모욕의 본성이고 제도적 차원에서의 모욕이 성립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발제에 따르면 모욕은 곧 자유의 상실이다. 자기-존중은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자신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모욕은 자유의 상실이라는 것이다. 모욕은 때로 희생자를 실존적으로 위협하고 그가 자신의 결정적인 이해관계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보통 사람들이 어떤 능력 따위가 아니라 삶의 자연적 과정에서 자기가 원하지 않았을 지라도 그냥 귀속하게 되는 집단들, 그러니까 종교, 민족, 사회계급, 성적 차이와 취향 등에 따라 귀속하게 되는 포괄집단들(encompassing groups)”을 한 사회의 주류가 거부하거나 주류에 속할 정당한 권리가 있는 사람을 주류집단이 거부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특정한 포괄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을 이등 시민으로 취급하면서 한 국가 공동체의 완전한 일원으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회는 품위 없는 사회라고 저자 마갈릿은 설명한다.

발표에 의하면 품위의 문제는 또한 문화의 문제이다. 한 사회의 문화가 특정한 사회 집단들에 대해 그 집단의 부정적 속성들에 부당하게 많은 무게를 두어 정형화하는 스테레오타입들을 생산하고 재생산해내는 일은 품위 있는 사회에서는 없어야 한다. 주류 문화가 사회 제도들에 의해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이용되는 모욕적인 집합적 표현들을 포함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장애인의 경우처럼 어떤 집단의 삶의 수준이 사회의 다른 성원들의 좋은 의지에만 의존하게 될 때, 예를 들어 사회가 교통 등에서 여러 가지 기술적 수단들을 이용할 능력이 있으면서도 그런 기술들을 장애인들이 충분히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지 않는 것은 장애인들을 체계적으로 모욕하는 것이다. 품위 있는 사회의 문화는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해 관용적이어야 한다.

사회를 품위 없게 만드는 것들

저자 마갈릿은 사회를 품위 없게 만드는 것들로 연고주의나 학벌주의, 사생활의 침해, 관료주의 등을 꼽았다. 장은주 교수는 가난은 그것이 단순한 수입의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의 부재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모욕적이라고 저자는 모았다. 그런 의미에서 복지 제도는 꼭 필요하다. 그러나 제도가 복지의 대상자들을 어떤 동정이나 자비의 대상으로 만들면서 부끄럽고 열등한 존재로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한 그 또한 모욕적인 것이다. 품위 있는 사회는 또한 복지 사회이어야만 하겠지만 모든 복지 제도들이 그 자체로 한 사회를 품위 있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품위 있는 사회에서 복지는 인간성에 대한 모욕의 회피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설계되어야 한다고 짚었다.

정의로운 사회와 품위 있는 사회 간의 연관성, 관계성도 짚어볼 문제다. 발표에 의하면 정의로운 사회는 인간으로서의 영예나 존엄성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 영예의 공정한 분배와 관련된 사회적 이상으로서 한 사회가 예컨대 어떤 사람에게 그의 노동과 성취나 기여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분배해 주지 않음으로써 그 사람의 자기-평가에 손상을 주는 훼손(insult)” 행위가 없는 사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능력이나 성취, 기여 또는 노력 같은 것이고 이런 의미에서 정의를 성취하지 못한 사회라고해서 반드시 품위 있는 사회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정의로운 사회와 품위 있는 사회의 관계-필요충분조건

정의로운 사회가 각자가 기여한 바에 따라 서로 급이 다를 수밖에 없는 그런 사회적 영예의 분배와 관련이 있다면, 품위 있는 사회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그런 영예의 훼손이 없는 사회다. 어떤 사람이 그가 행한 바가 아니라 단지 그가 존재한다는 바로 그 이유가 중요한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한 사회의 가치평가의 잣대에 따라 성원들에게 그들의 서로 다른 기여나 공헌에 따라 차등적으로 사회적 영예가 배분되지만, 품위 있는 사회에서는 모든 성원에게 그가 단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똑 같은 정도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보장된다.

이에 대해 장은주 교수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가 품위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 정의로운 사회는 반드시 또한 품위 있는 사회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또 그렇다면 정의로운 사회와는 다른 품위 있는 사회의 이상에 대한 기획은 왜 필요한가? 이런 물음들에 대한 마갈릿의 답은 약간은 혼란스러워 보인다. 한 사회가 그 성원들을 모욕하지 않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의 필요조건임을 부정하지는 않으나 두 사회의 관계는 그 역이 성립하지 않는 순차적-누적적(cumulative)” 관계이다. 우리가 정의로운 사회를 성취하면 품위 있는 사회는 자동적으로 실현될 것이다. 다만 정의로운 사회는 그 실현이 힘든 만큼, 품위 있는 사회를 먼저 추구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라고 제안하는 것이 마갈릿의 기획의 초점인 것 같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또 어떤 사회는 그 성원들에 대해 정의로울 수 있지만 그 사회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모욕을 행사하는 사회일 수도 있다. 사회 정의의 계약에 참여한 자국민들에게는 정의롭지만 이방인들에게는 배타적인 사회라면? 정의롭게 종교의 자유는 허용되지만 특정 종교 안에서의 신자들에 대한 자유의 침해는? 정의로운 분배 제도는 갖추었지만 그 분배의 인간적 방식 같은 것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면? 많은 질문들이 나올 수 있다. 품위 있는 사회의 이상은 정의로운 사회의 이상과는 규범적 초점 자체가 다른 것처럼 보인다. 좀 더 정치한 논리,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밝혔다.

장은주 교수는 아비샤이 마갈릿의 품위 있는 사회기획에 대해 근대 민주주의의 규범적 이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 일반 사회정의 이론들에서 포착하기 힘든 이른바 인정의 정치정체성의 정치같은 문제에 대한 새로운 규범적 이해를 그 의의로 꼽았다. 그는 사회적으로 생산된 물질적 재화의 평등하고 공정한 분배 문제에 초점을 둔 사회정의의 이상에 대한 중요한 문제 제기이다. 바람직한 사회 질서의 이상에 포함된 규범적 촉수의 핵심과 관련해 물질적 재화의 평등한 분배가 아니라 인간 존엄성의 실현이 정말 중요한 사회도덕적 가치라는 것을 강조한다라며 그러나 이 기획은 어떤 정의로운 사회의 이념을 차선의 차원에서라도 대체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내적으로 가장 기본적인 정의의 이상에 의해서만 규범적으로 작동하고 유지될 수 있는 기획이라고 평가했다.

평등주의적 사회정의의 이상, ‘인간 존엄성 보장가치 지향 중심으로 재정립될 필요

끝으로 장은주 교수는 마갈릿의 품위 있는 사회의 기획은 올바른 출발점 위에 서 있다. 단순히 물질적 재화의 평등한 분배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 사회정의의 이념은 모든 인간에 대한 존중의 요구와 같은 더 본래적으로 가치 있고 일상적이면서도 직관적으로 설득력 있는 규범적 요구를 충분히 담아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무턱대고 모든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똑같이 어떤 것을 나누어 갖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인간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존중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정의의 이념이 단순히 물질적인 수준에서 성원들 사이의 외적으로 평등한 상태의 확보에만 초점을 두는 것은 잘못이다. 또 그래서 우리의 일반적인 평등주의적 사회정의의 이상은 정말 중요하고 본래적으로 가치 있는 인간 존엄성의 보장이라는 가치 지향을 중심으로 재정립되거나 교정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마갈릿의 품위 있는 사회의 기획은 일정한 정의의 이념 없이 실현될 수 없다. 평등과 정의에 대한 규범적 요구는 또한 사회적 확인을 필요로 하는 존중에 대한 규범적 요구의 내적-개념적 파생물이자 존중의 사회적 실현을 위한 필연적 전제다. 존중이 평등보다 더 근원적인 규범적 가치라는 데 대한 문제 제기가 존중을 우선하는 품위 있는 사회의 기획과 평등을 지향하는 정의로운 사회의 기획을 부당하게 대립시키는 방식으로 이론화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품위 있는 사회의 기획은 모든 사람에 대한 평등한 존중의 요구에서 출발하는 정의로운 사회의 기획을 내적으로 필요로 한다고 덧붙이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사진=문효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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