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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모욕하지 않는 ‘품위 있는’ 주민자치를 위해[연구세미나89-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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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모욕하지 않는 ‘품위 있는’ 주민자치를 위해[연구세미나89-②]
  • 김윤미 기자
  • 승인 2024.02.02 1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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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회 품위 있는 사회

주민을 모욕하는 주민자치제도, ‘품위 있는 사회논의에서 중요하게 지적된 사항이다. 한국주민자치학회는 지난 1일 서울 인사동 태화빌딩에서 품위 있는 사회를 주제로 제89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를 개최했다.

김성민 건국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은 이날 세미나에서는 이스라엘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Avishai Margalit)의 저서 <품위 있는 사회>(The Decent Society)에 대한 서평 형식의 발제를 장은주 영산대 교수가 진행했으며, 박정하 성균관대 교수와 조성호 경기연구위원 선임연구원 그리고 김경호 한국주민자치중앙회 주민자치연수원장이 지정토론에 참여했다.

발제 후 지정토론에서 박정하 성균관대 교수는 발표자는 마갈릿의 [품위 있는 사회]의 핵심 주장을 잘 정리한 다음, 사회적 개념으로 품위 문제를 제기한 작업의 의의를 인정하면서도 정의로운 사회와 품위 있는 사회를 대립시키는 방식에 대해서는 비판을 가하고 있다. 나는 그 비판이 대체로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품위 있는 사회의 기획은 정의를 전제할 수밖에 없으므로 일정한 정의 이념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는 비판에 대해서 대체로 동의한다. 그리고 자기-존중을 목표로 삼으면서도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제도적 사회 장치, 구체적으로는 인권 이념의 확립과 실현에 소극적이라는 비판과, 자기-존중과 자기-평가를 별개의 차원으로 분리하여 다루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에도 대체로 동의한다고 전제했다.

 

모든 정의로운 사회는 품위 있는 사회여야 한다 그러나 모든 품위 있는 사회가 다 정의롭진 않다

이어 그는 정의에 대한 가장 고전적인 정의(definition)각자에게 각자의 몫을이라는 구절로 표현할 수 있다. 이때 각자는 한 사람의 인간이므로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돌아가야 할 존중이란 몫, 달리 말해 모욕을 느끼지 않음이라는 몫을 먼저, 그리고 반드시 배분해야 하는데 품위 있는 사회는 바로 이 단계의 사회이다. 다음으로 각자의 다른 특징이나 업적에 따라 마땅한 몫을 차등적으로 분배해야 하는데 이 단계까지 충족되면 정의로운 사회이다라며 정리해 보면 모든 정의로운 사회는 품위 있는 사회여야 한다. 정의로운 사회는 당연히 첫 단계를 충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품위 있는 사회를 다 정의로운 사회라고는 할 수 없다는, 달리 말해 품위 있지만 정의롭지 못한 사회가 있을 수 있다는 주장도 마갈릿처럼 두 사회를 부당하게 대립시키는 방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고, 정의의 한 측면, 혹은 둘째 단계가 실현되지 못한 덜 정의로운사회가 있다는 주장으로 이해해야 적절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계속해서 박정하 교수는 품위 있는 사회와 정의로운 사회의 관계도 중요한 쟁점이지만 품위 있는 사회와 품위 있는 인간의 관계도 논의할 만한 쟁점이 된다. 품위를 문제 삼고 품위 있는 사회를 이루려는 것이 결국 내가 품위 있는 인간이 되고 우리가 품위 있는 주민이 되고자 하는 것이라면 품위 있는 사회와 품위 있는 개인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라며 우리가 품위 있는 사회를 원하는 이유는 모욕당하지 않기 위해서, 달리 말하면 나의 존엄과 자기-존중을 훼손하는 상황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모욕만 없으면 개인은 품위 있는 존재로 살면서 자기-존중을 느낄 수 있는가? 품위 있는 사회가 품위 있는 개인을 보장할 수 있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품위는 모욕당하지 않음이라는 외적 조건만이 아니라 인격적 완성이나 자기 취향의 확립 같은 내적 조건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는 또 품위 있는 사회는 사회 차원에서는 혹시 최대 목표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르나 개인 차원에서는 품위 있는 인간을 위한 최소 조건, 필요조건에 불과할 수 있다. 품위 있는 사회는 품위 있는 인간의 필요조건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단지 영향을 미치는 한 요소에 불과한 것이 될 수도 있다라며 마갈릿에 따르면 품위 있는 사회는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조건과 싸우는 사회이고, 실제로 모욕감을 느끼는가 하는 심리적 차원보다는 모욕감을 느낄 정당한 이유가 있는가 하는 규범적 차원을 더 중요시한다. 그러나 자기-존중과 모욕이 정의처럼 규범적 차원에서 접근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자기-존중(자존감)은 근본적으로 심리적 차원도 매우 중요하며 본질적 요소에 해당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모욕()을 느끼는 것은 인지구조와 감수성 구조에 의해 규정되며 인지구조와 감수성 구조의 형성은 상당 정도는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영향을 받지만 개인사와 개인의 특수한 환경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자기-존중 문제에서 심리적 차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마갈릿이 모욕을 개인의 문제, 심리적 문제로만 볼 수 없음을 지적한 것은 타당했지만 거꾸로 모욕을 지나치게 제도의 문제로만 봄으로써 중요한 한 측면인 심리적 요소를 지나치게 약화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박정하 교수는 마갈릿은 자기-존중이 사람에게만 적용되며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해 두 방향에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첫째 질문은 동물은 정말 학대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모욕의 대상이 될 수는 없는가?’이다. 품위 있는 사회의 구성원이 될 자격은 인간으로 국한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질문이다. 반려동물도 인간의 반려자로 규정되는 순간 인간적 측면을 가진다고 보아 모욕의 대상이 될 수 있지는 않은지 궁금하다. 더 넓히면 자연환경 훼손을 생태계에 대한 모욕으로 규정하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궁금하다. 결국 첫째 질문은 마갈릿이 모욕에 대해 인간종족 중심주의에 빠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라며 둘째 질문은 자기-존중은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즉 모든 사람에 적용된다는 주장에 대한 의문이다. 그렇다면 마갈릿은 존중의 대상이 될 사람의 조건 혹은 기준을 무엇으로 보고 있는가? 어떤 상태를 갖추어야 존중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이 끝없이 이어지게 된다. 결국 존중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서술적, 생물학적 개념이 아니라 규범적, 평가적 개념이 될 수밖에 없으므로 기준을 설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단 이 기준을 강조하면 존중에서 배제되는 집단을 규정하게 되는 셈이며 배제의 배제를 추구하는 품위 있는 사회의 기획이 모순에 처할 수 있어 깔끔한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고 문제제기 했다.

 

자유-평등-인간존엄성 그리고 정의제도주의 vs 행동주의

두 번째 지정토론자 조성호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마갈릿의 품위 있는 사회는 존 롤스와 마이클 센델의 정의론과 삼각구도를 이루는 것 같다. 이 세 명의 석학들은 민주주의의 3대 요소인 자유, 평등, 인간존엄성을 가지고 각자 나름의 논리,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다. 존 롤스는 자유와 평등으로 정의로움의 패러다임을, 마갈릿은 인간 존엄성을 가지고, 그리고 센델은 자유주의와 공리주의를 비판하면서 공동체주의를 가지로 정의론을 만들었다. 이런 점들을 이해해야 품위 있는 사회의 정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서두를 꺼냈다.

이어 조성호 연구위원은 제도주의 vs 행동주의 차원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마갈릿은 제도주의자인 것 같다. 제도가 곧 정의라는 인식, 그 대척점에는 행동주의가 있다. 제도주의의 경우 선 제도구축, 후 행위자의 개인적 행동, 이게 시사점일 것 같다라며 마갈릿의 품위있는 사회는 모욕없는 사회 제도 구축을 통한 사회의 인간화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모욕 없는 사회 제도 구축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Human Diginity)을 추구하는 것이며 그 결과 인간의 사회화를 경시하는 우()를 범할 소지가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인간화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사회화도 중요하다. 좋은 제도+좋은 사람, 둘 다를 얘기해도 되는데 제도만 강조한 것 같아 아쉬운 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계속해서 조 위원은 “‘품위 있는 사회는 동양에도 조선에도 있었다. 조선시대는 민본사상백성이 국가의 근본이라는 것이 사상적 통치철학이었다. 그렇다면 조선도 품위 있는 사회? 그건 아니었다. 자유의 심각한 축소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 ‘품위 있는 사회를 능가하는 동학사상도 있었다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다음으로 조성호 위원은 주민자치에도 모욕적인 제도가 깔려 있다. 매우 매우 심각하다.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으며 주민들을 이등시민화하는 멸시, 차별이 이뤄지고 있다.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 사례는 행안부 표준조례의 폐해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는 주민자치회 설치 권한이 주민에게 없고 시장군수구청장에게 부여되어 있다. 주민의 자유를 심각히 축소시킨 사례다. 또 주민자치회의 사업을 시군구 위탁사업 위주로 재편하고 규약제정권, 인사권, 재정권을 부여하지 않는 등 주민자치회의 자유를 심각히 훼손시킨다. 이등시민화 사례도 많다. 주민이 주민자치회의 회원이 되지 못하고 위원만 존재하는 것은 시민을 우롱하고 차별하는 것이다. 주민자치위원들은 역량이 안 되기 때문에 주민자치지원관, 중간지원조직을 통해 주민자치회를 운영해야 한다는 것은 주민들을 이등시민, 열등시민으로 보는 것이고 제도 자체가 주민들을 모욕하는 것이다. 또한 주민자치위원이 되기 위해서는 6시간의 사전교육을 받아야 했던 점들도 모욕적인 제도라고 짚었다.

 

주민을 모욕하는 주민자치제도인간 모욕하는 제도에 대항해 싸워 품위 있는 사회만들어야

끝으로 조 위원은 우리 주민자치 제도에는 주민들의 자유, 권리를 차별하는 모욕적인 제도가 많다. 마갈릿은 인간을 모욕하는 제도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나라에는 싸우는 사람이 없다. 우리사회와 시민들은 주민자치에 있어서 품위 있는 사회, 품위 있는 인간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품위 있는 사회가 아니다. 반성할 대목이 많다고 비판했다.

세 번째 지정토론에 나선 김경호 한국주민자치중앙회 연수원장은 토론자로서 이 책을 비판하기 위한 측면에서 바라본 게 아니라 주민자치 활동을 전개하면서 품위 있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이 책의 내용을 연결 짓고 실행에 옮길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했다라며 먼저 품위와 품격을 생각해봤을 때 품위란 사회생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사회적 관념이기에 주민자치에서도 구성원들 각자의 지위나 위치에 따라 갖추어야만 하는 기본적인 품성과 교양의 정도를 의미한다. 품격은 사람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 즉 사람 됨됨이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주민자치 위원장과 위원들이 품위와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선 각고의 노력과 자기관리가 요구된다. 각 지역의 주민자치위원들과 주민자치회장님들께서 과연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를 수행하면서 주민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고 떳떳하게 활동하고 있는지를 이 시점에 한번쯤은 스스로에게 묻고 신중히 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잘 알다시피 주민자치 위원장과 위원의 품위 있는 지위는 쉽게 만들어낼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서번트리더십을 통해 주민들을 섬기는 겸손한 자에게 주민자치위원장의 기회가 주어져야만 한다. 그러니까 정치인들처럼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주민자치를 해서는 안 된다. 나이를 먹었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우선 품위나 품격을 가진 주민자치 위원장과 위원들은 첫 번째로 다른 주민들을 존중하는 마음과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품위나 품격을 갖추고 싶다면 가장 중요한 원칙이 바로 역지사지 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먼저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두 번째 특징은 바로 도덕적으로 정직해야 한다. 자신의 태도와 행동이 주변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항상 올바르고 정직하게 행동을 해야만 한다. 세 번째 특징은 바로 좋은 친구와 좋은 지인들을 선택하는 것이다. 자신과 시간을 보내게 될 사람에 대해 정말 심사숙고해서 좋은 사람들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품위-품격 있는 주민자치위원의 조건

끝으로 김경호 원장은 우리 모두는 품위와 품격이라는 것이 우선 남들을 먼저 존중할 줄 알아야 하고 남들이 자기를 보던지 상관없이 언제나 부끄럽지 않도록 올바르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좋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에 모여들게 될 것이며 그래서 그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자신도 계속해서 품위와 품격을 갖춰나가게 되는 것이라며 품위와 품격을 지닌 주민자치위원으로 인정받고 싶다면 먼저 자신이 주민들을 존중할 줄 아는 그런 태도와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가 부끄럽지 않도록 언제나 올바르고 정직하게 살고는 있는지 그리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려고 하고 자신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이 시점에 곰곰이 생각해보는 그런 세미나의 장으로 기억되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전상직 한국주민자치학회장은 법이나 제도가 주는 모욕이 가장 크다는 데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곳곳에 켜켜이 쌓여 있다. 흔한 예로 우리 사회에 민주화가 됐다 해도 주민들이 읍면동장 선거를 하지 못한다. 법이 허용하지 않고 있다. 주민들을 모욕하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이 이것을 모욕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도 큰 숙제다. 권리와 의무가 켜켜이 쌓여 있는 사이에서 잘 식별이 안 되는데 제게는 자치라는 고민으로 왔다. 헌법 제10조에 행복추구권이 있는데 이런 품위 있는 조항을 더 찾기 어렵고 발전도 안 되고 있다고 짚었다.

박경하 중앙대 명예교수는 공정, 정의 등은 공동체 속에서 실체성이 보여지는데 품위는 추상적, 상징적 개념이라 어렵고 관점에 따라 바뀔 것 같다. 품위가 전통용어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덕망이 아닐까 싶다. 조선 향약, 촌계에서 대표를 뽑는 기준이 이었다. 인의예지신을 갖춘 사람이 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주민자치의 가장 큰 문제는 주민들의 자기결정권을 읍면동장에게 뺏긴 것이고 문제는 그 자체를 모르는 것이다. 조선시대 촌계, 향약에서도 주민들이 직선해 대표를 선출했는데 지금은 조선시대 보다 못한 주민자치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주민, 지식인들이 모욕당하는 지도 모르고 있다. 한국사회가 품위 없는 사회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진=문효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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