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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움직이고 요구해야 사회는 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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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움직이고 요구해야 사회는 변해”
  • 김윤미 기자
  • 승인 2023.09.12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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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터뷰] 김재호 제주시 회천동 동회천마을회장
제주특별자치도는 말 그대로 ‘특별’한 ‘자치’도다. 제주 자연마을에는 주민자치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향약 촌계의 전통이 남아 있는 곳들이 많아 우리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제주시 회천동 동회천마을 또한 그러한 곳 중 하나다. 평화로운 ‘전국 5대 부농마을’에서 쓰레기매립장 설치와 이전 등으로 격동의 시절을 관통한 마을의 이야기를 김재호 회장에게 듣는다.

이 분께 연락하시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을 거예요.”

마을 공유재산이 공동체 형성과 강화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오래 연구한 제주대 한 교수님의 적극적 추천으로 김재호 마을회장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활력 넘치는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에너지를 솟게 하는 김 회장은 올 1월부터 2년간의 마을회장 임기를 시작했다. 10년 전 이미 마을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그가 10년 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10년 전엔 자의로, 이번엔 타의(?)하게 됐다고 한다.

 

봉개 쓰레기매립장 주민대책위원회 활동이 터닝포인트

김재호 회장의 마을 활동 역사에 있어 분기점이 되는 것은 단연 봉개 쓰레기매립장의 설치와 이전이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 마을은 전국 농촌지역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촌이었어요. 감귤, 수박, 배추 농사와 축산 등 복합영농마을로 상당히 윤택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죠. 봉개동 지역에서 다들 부럽게 쳐다본 마을이었고 그때 자존심 높던 마을 어른들이 아직 살아계셔요. 그러다 1992년 쓰레기매립장 설치 즈음부터 많이 혼란스러워졌어요. 많은 주민들이 반대했지만 지원이나 혜택을 보고 찬성하는 분들도 있었죠. 근데 당시엔 지금과 같은 큰 지원이나 혜택이 있는 건 아니었어요.”

당시 대학생이어서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었던 김 회장이었지만, 쓰레기매립장이 애초 10년 운영 계획과 달리 연장 또 연장, 끝내 4번 연장 운영되는 상황을 보면서 반대운동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미 청년들 중심으로 주민대책위원회가 결성되어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제가 연합청년회장을 했던 경험도 있고 힘든 상황에서 애쓰는 모습을 보고 본격적으로 나서게 됐습니다. 그 전부터 민원은 엄청 많은 상황이었죠. 1.5킬로미터 반경에 4.3평화공원과 리조트도 있었는데 아예 매립장 앞에 텐트를 치고 살면서 상황이 어떤가 체험을 해보기도 했어요. 천막시위도 하고, 초대받지 않은 행사에 가서 도지사를 만나 엄청난 항의도 했었죠. 정부에서 어마어마한 지원금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쓰레기를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다’ ‘돈 문제 아니다. 후세들에게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하냐라며 주민들을 엄청 설득했어요.”

이런 노력들이 닿아 봉개 쓰레기매립장은 광역시설인 동복매립장으로 이전되었지만 김재호 회장의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그는 봉개 매립장이 처음 10년에서 연장을 거듭해 4번까지 연장되는 걸 보면서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행정에 대해 개탄했었는데 동복매립장도 보니까 규모가 너무 작더라. 규모를 더 크게 하지 않으면 조만간 문제 생기겠다 싶어 규모를 더 키우라고 행정에 엄청 얘기를 했다. 물론 매립장 예산이 시비로만 충당되는 게 아니고 국가 지원금이 없으면 진행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10년도 못 내다보는 행정에 한숨이 나온다. 벌써 처리 규모가 초과됐다는 소리가 들린다며 안타까워했다.

2 4H 활동부터 40년 간 마을 봉사활동안하면 몸도 마음도 근질근질

중학교 2학년 때 4H 활동이 시작이었어요. 4H의 주된 목표는 민주시민 양성이고 봉사가 부수적 활동이었어요. 회의하는 법도 배우고 다양한 교육을 받고 경험을 한 게 후에 청년활동이나 대책위활동, 마을회를 이끄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3~4년 외지에 나갔을 때를 빼고는 늘 지역 봉사활동을 해왔어요. 안하면 마음도 몸도 근질근질하더라고요(웃음). 항상 마을을 위해 뭘 할 것인가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처음엔 가족들이 힘들어 했지만 이젠 많이 이해해주고 있어요.”

쓰레기매립장 문제로 여러 해 몸살을 앓아온 것에 비하면 최근 동회천마을엔 큰 이슈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어쩌면 가장 큰 근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긴 하다.

“10년 만에 다시 마을회장이 됐는데 안타까운 게 10년 전보다 동네에 사람이 더 없다는 거예요. 회장에 취임하면서 제가 이런 말을 했어요. 5년 후 50대가 없는 마을이 된다, 준비를 안 하면 없어지는 마을, 소멸하는 마을이 된다, 빨리 준비를 해야 한다고요. 뭔가 마을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공모사업에 다 응모하고 있어요. 마을 주민들을 움직이게 하는 계기가 필요하거든요.”

김재호 회장에 따르면 동회천마을에서 가장 젊은(?) 주민이 45, 그리고 57세라고 한다. 공식적으로 동회천 인구는 98세대라는 발표가 있었지만 그가 파악한 바로는 65세대, 나머지는 전입만 하고 실질적으로 거주하지 않는 세대라고 예상했다. 마을회 정회원수는 47명이다. 10년 전 55명 보다 줄었다. 이 중 외지인은 4명이다. 정회원이 되려면 5년 거주 후에 신청이 가능하고 운영위원회 심사를 거쳐 마을총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까다롭다면 까다로운 정관 규정인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제주도의 다른 자연마을처럼 동회천마을에도 적지 않은 공유재산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쓰레기매립장 설치 및 연장에 따라 지원 받은 저온저장고와 냉동창고 등이 있고 태양광발전소도 있다. 여기서 나오는 임대수익 등을 마을기금화해 활용하고 있는데 해마다 꾸준히 수익이 생겨 마을살림을 하기에 충분한 예산이 된다. 한해 살림살이를 하고 남으면 마을회원들에게 배당금을 분배하기도 한다. 청년회, 부녀회, 노인회 등 소속조직들을 지원하기도 하고 회원들에게 회의비도 지급한다.

자치 없는 주민자치위원회, 존재 이유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주민자치위원회로 흘러갔다. 현 위원회 체계와 운영에 대해 김재호 회장은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동 주민자치위원회를 몇 년 간 지켜보았는데 한마디로 자치 없는 주민자치위원회가 왜 필요할까 싶더라고요. 결국 일은 행정에서 다 하던데 이걸 자치회라고 할 수 있을지. 진정한 자치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산이 있어야 활동이 이뤄지는 것이고, 예산이 없다면 조성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다 막혀 있더라고요. 이러면 위원들 간의 상조회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죠. 단체장이 바뀌어도 상황은 그대로더라고요. 정말 이해가 안갑니다. 개선이 필요해요. 제도가 바뀌어야 하고 제도가 바뀌려면 조례가 개정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방의원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이게 될까요? 도의원들 입장에선 주민자치위원회가 잘 되면 위원장들이 자신들의 경쟁자가 되는 상황이어서 과연 조례 개정이 될까 싶습니다. 행정에서도 주민자치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고요. 답답한 현실입니다.”

현재의 주민자치위원회를 유명무실하게 하고 힘을 실어주지 않는 현실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주민참여예산위원회 같은 조직이 따로 있다. 이 외에도 역할이 중복되는 기구들이 또 있다. 이러면 주민자치위원회에 힘이 실릴 수 있나. 진정한 주민 대표기구라고 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움직이고 요구해야 사회가 변한다는 김 회장의 생각은 확고하다.

인구소멸이 제일 큰 걱정거리인데 솔직히 아직 뾰족한 답은 못 찾고 있어요. 바로 옆 마을은 우리와 다르게 개발이 쉬운 읍지역이다보니 인구가 넘쳐나고 있어요. 우리 마을은 농촌지역임에도 동이다보니 혜택을 못보고 있습니다. 규제가 더 크거든요. 소멸하는 마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위기가 있습니다. 반면 이런 이슈도 있어요. 2층집도 한두 개밖에 없고 다 단층집들로만 이뤄진, 빌라 하나 없는 저희 마을에 곧 공동주택 150세대가 들어온다고 합니다. 건축허가도 다 받았다고 하고요. 이럴 경우 하수관사용이나 마을진입로 교통문제, 더 크게는 마을분위기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사안이라 현명하고 슬기롭게 헤쳐 나갈 방법을 모색 중입니다. 교육청 유아체험관 조성과 관련된 이슈도 있고요. 결국 누군가 움직이고 요구해야 사회가 변하더라고요. 주민들이 잘 알고 협심해 대처해야 합니다.”

사진 김윤미 기자 citizenautonom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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