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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 지금은 ‘정답’ 보다 지역 맞춤 ‘명답’ 낼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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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 지금은 ‘정답’ 보다 지역 맞춤 ‘명답’ 낼 시기”
  • 김윤미 기자
  • 승인 2023.10.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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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터뷰] 김영규 부천시 주민자치협의회장
부드러운 카리스마. 김영규 부천시 주민자치협의회장(대산동 주민자치회장)을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다. 젠틀하면서도 열정이 넘치는 김 회장은 말 그대로 부천 주민자치에서 잔뼈가 굵었다. 주민자치위원회 시절부터 10년 전 시작된 전국 최초 시범실시 주민자치회를 거쳐 광역동 주민자치회와 협의회까지 그는 주민자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다. 직업학교를 운영하며 지역사회 교육과 취업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김영규 회장과 만났다.

사반세기 동안 부천 구도심에서 직업전문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김영규 회장. 대학에서 자동차 관련 전공을 공부하고 산업현장에서 경력을 쌓은 후 최연소 기능장에 오른 그는 일찍이 직업전문학교를 세워 기능인을 양성해 취업을 지원해왔다. 그렇게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을 일과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부천은 굉장히 특이한 도시예요(웃음). 시민들 성향이 뭐랄까, 굉장히 셉니다. 지역 색도 강한 편이고요. 그런 속에서 주민자치위원장, 주민자치회장과 협의회장,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대표위원장, 참여예산시민위원회 위원장, 소사복숭아축제 추진위원장(21회 축제 중 위원장만 10차례) 등 어찌 보면 안 해 본 게 없지요. 그 중에서도 주민자치에 관해서는 산증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주민자치위원회부터 시작해 10년 전 전국 31개동에서 첫 시범사업을 할 때도 동 주민자치회장으로서 그 과정을 죽 겪어왔으니까요.”

 

부천시 36개동에서 10개 광역동으로 합쳐졌다가 다시 37개 일반동으로 쪼개져

한때 부천은 인구 100만명을 바라보던 대도시이다. 행정구역 조정에 대한 부침도 있었다. 2016년 기존 3개 구(원미구, 소사구, 오정구)를 없애고 10개의 행정복지센터를 두는 책임동제를 실시하며 10개 광역동 체제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또 다시 내년부터는 37개 일반동 체제로 복귀한다.

시범실시를 지나 광역동 체제가 제대로 실시된 지는 실질적으로 불과 5년 남짓인 것 같은데 내년에 또 일반동으로 전화된다니 시민의 한사람으로서는 좀 당황스럽습니다. 실상 주민 대부분은 광역동이든 일반동이든 크게 관심이 없는 게 현실이긴 합니다. 이런 논의들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각자의 유익(?)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아 아쉬운 면은 있습니다. 어떤 제도가 실시되면 최소 10년 정도는 유지하고 변화가 필요하다면 장단점을 분석해 신중히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전국에서 모델이 될 만한 광역동이 만들어졌는데 다시 일반동으로 환원된다니 아쉽습니다.”

행정체제 변화로 인해 김영규 회장은 주민자치위원장, 일반동과 일반동의 주민자치회장, 그리고 시 협의회장까지 주민자치에 관한 한 다양한 경험을 해올 수 있었다. 그가 말한 부천 주민자치의 산증인이라는 표현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현 주민자치회, 인적-물적 인프라 균형 안 맞아

주민자치에 대한 경험치가 남다른 만큼 그에 대한 고민도 깊다.

주민자치회의 존재가치요? 그 지역 실정에 맞는 행복한 마을을 만들고 가까운 이웃끼리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드는 거 아닐까요? 그러려면 2가지 받쳐줘야 합니다. 물적 인프라와 인적 인프라. 여기엔 물론 행정의 예산 지원도 포함되어 있고요. 근데 지금은 이 물적, 인적 인프라의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주민자치회라는 그림은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물적 자원도 그렇고 주민자치 발전을 위해 이 인프라들이 집중적으로 투입되어 아웃풋을 낼만한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인적 인프라 차원에서 봐도 당장 주민자치회장, 위원들이 다 생업이 있고요. 처음 주민자치회 시범실시 논의가 있었을 땐 주민자치회장에게 특정한 직위와 권한, 급여 등도 지급한다는 얘기도 오간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3500여개 읍면동을 그렇게 한다면 또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세수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싶기도 하고요. 그러나 분명한 건 좀 더 전문화된 인력들이 주민자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면 활성화가 될 텐데 그 전문인력을 끌어들일 수 있는 동력이 문제인 것이죠. 그 지역 특성에 맞게 살릴 건 살리고 개선해 주민들 힘으로 스스로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든다? ‘말로만 주민자치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죠. 이웃끼리 근린자치를 통해 생활자치의 뿌리가 내려지려면 바탕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너무 약합니다. 이전 위원회 때와 달리 지금 주민자치회는 생각 자체를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죠.”

지역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사무국을 설치하고 유급 사무국장(간사) 체제로 운영하는 읍면동 주민자치회는 흔치 않다. 주민자치회가 주민 대상으로 회비를 걷거나 별도의 수익사업을 할 수 방법이 막혀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주민자치회가 사무국을 운영하려면 정부의 예산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 예산은 고정적이지 않고 들쭉날쭉하다. 안정적인 유급 사무국장 체제 유지가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자치회에 어떻게 전문인력이 투입될 수 있겠습니까? 순전히 주민들의 재능기부나 무료봉사에 의존한다? 이건 현실적으로 힘들죠. 주민자치회 실무 간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이들의 역할을 통해 주민자치회와 시군구 사이에 견고하게 네트워크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간사가 회의 한두 시간 앞두고 와서 시간제 오전근무만 하면서 이 역할을 수행한다? 어떻게 행정과 또 주민들과 깊게 소통할 수 있을까요? 지금과 같은 시스템으론 주민자치 활성화, 매우매우 요원합니다. 간사 즉 사무국장의 기본적 최저임금만이라도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전문인력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됩니다. 근데 또 투입되어야 할 막대한 예산을 생각하면. 고민이 쳇바퀴 돌 듯 계속 꼬리의 꼬리를 무네요. 뫼비우스의 띠 같습니다.”

행정이 하는 일 중 주민이 맡아 하면 예산 줄이고 더 잘 할 수 있는 일 많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자치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김영규 회장은 관에서 하는 일 중 주민들이 맡아서 하면 더 잘 할 일들이 참 많다. 참여예산 사업 심사도 해보고 숱한 관급 사업을 해보면서 아쉬운 점이 무척 많다. 예산 낭비도 많고 단발성 사업도 많고 사후 관리도 미진하고. 주민자치가 관여해서 예산도 덜 쓰고 더 잘 할 수 있다면 주민자치회가 이런 사업을 해서 수익을 내는 게 맞다. 물론 그걸 수행하려면 전문가가 필요하고 전문가를 확보하려면 또 앞서 말했던 보상의 문제가 또 제기될 수밖에 없다. 솔직히 아직까지 답을 못 내고 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그는 힘주어 말했다.

현재 상황에서 풀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우리가 정답 보다는 명답을 내야할 시기라고 봅니다. 서울 강남의 상황을 부천에 가져올 수 없는 것처럼 그 지역에 맞는 명답을 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주민과 깊게 호흡할 수 있는 사업 만들어야 전문가가 투입되어야 한다

김영규 회장이 주민자치회장을 맡고 있는 대산동은 인구 9만 명 가까운 광역동이다. 신도시가 아닌 구도심으로 아직도 정감 넘치고 애향심도 살아있는 곳이라고.

많은 관심에 비해 주민자치회에서 주민들에게 다가가는 것에 한계가 있습니다. 시스템이 약하고 단발성 행사 위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주민과 깊게 호흡할 수 있는 중장기적 사업이 만들어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주민들과 꾸준히 호흡할 수 있는 전문가가 투입되어야 합니다. 개별 아파트 단지 반상회까지도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인구가 많은 광역동이지만 주민자치의 기틀을 잡고 밑거름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김영규 회장은 2020년 주민자치박람회 주민자치 분야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그는 주민총회에서 안건에 대해 더 깊이 있게 토론할 수 있도록 했고 당시 관심이 높았던 자원재순환 사업을 직접 실행에 옮기고 참여도 높았기에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고 평가하며 환하게 웃었다.

취재사진 김윤미 기자 citizenautonom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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