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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만 바뀐’ 주민자치회, 형식적 역할 아닌 실질적 권한·대표성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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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만 바뀐’ 주민자치회, 형식적 역할 아닌 실질적 권한·대표성 필요
  • 김윤미 기자
  • 승인 2024.02.13 1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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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터뷰] 민경록 수원특례시 팔달구 주민자치협의회장

주민자치위원회 시절부터 최근 시범실시 주민자치회까지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주민자치 활동을 해온 민경록 수원특례시 팔달구 주민자치협의회장(화서2동 주민자치회장)에게 주민자치는 넘어서고 해결해야 할 묵직한 과제다. 현실은 고구마 열 개 먹은 것처럼 답답하지만 그래도 희망이 보이기도 하는 꼭 풀어야 할 숙제다.

주민자치위원회와 주민자치회요? 피부로 체감되는 큰 차이는 없어요. 마치 이름만 바뀌어 간판갈이만 한 것 같달까요. 제도는 바뀌었는데 인식은 그대로예요. 주민자치회가 주민을 대표한다고 되어 있는데 그 역할에 맞는 권한이 없어요. 심지어 예산도 지원이 되는데 결정적으로 주민 대표성이 없는 거죠. 주민자치위원들은 각자 신청을 해서 추첨으로 뽑힌 분들이잖아요. 주민 대표성은 주민들이 직접 뽑은 지방의원들에게 있는 셈이고요. 주민 대표성 부재, 권한 부재 속에서 주민자치회는 관변단체도 아니고 봉사, 친목단체도 아니고 그 정체성이 굉장히 어정쩡합니다. 지금은 혼란스러운 과도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민경록 회장의 지적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뼈아프다. 요즘 표현대로라면 반박불가지적이다. 그렇다면 단도직입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선거를 통해 구성된 지방의회가 법 제정, 예산 배정의 권한이 있는 거니까 지방의회와 유기적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현실은 서로 경쟁의 관계, 경계하는 느낌이 강하거든요. 그렇게 되면 주민자치회의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구체적 방법은 더 모색을 해봐야겠지만 지방의회와 협력 관계가 되어서 함께 아젠다를 발굴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주민자치회는 매월 회의를 하지만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수렴해 의회와 행정에 전달하는 공식 통로, 기구가 없습니다. 지방의회에서 주민자치회 의견을 제대로 청취하지 않습니다. 주민자치회가 공식채널이 아니라 그냥 민원인1에 불과합니다. 예컨대 주민자치회 상임위가 따로 있어서 주민자치회 의견을 공식적으로 반영하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그런 채널이 전혀 없거든요.”

역할은 부여돼 있는데 실질적 권한은 없다?

 

대구가 고향인 민경록 회장은 학교 졸업 후부터 수원 화서에 자리를 잡아 이곳이 제2의 고향이라고 한다. 생활터전인 이곳에서 생업과 거주를 하며 아이를 키우다보니 자연스럽게 학교 운영위원회, 학부모회 활동을 하게 됐고 이는 주민자치위원회로까지 이어졌다.

학교 운영위원회와 주민자치위원회의 처지가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학교 운영위도 지역주민, 교원, 학부모 등이 함께 학교 운영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실질적으로 학부모, 지역주민에겐 아무 권한이 없거든요. 의사결정 단계에 가지 못하니 학부모, 지역민의 역할은 그저 요식행위에 불과하고 운영위 자체가 형식적이더라고요. 주민자치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치를 하라고 하면서 권한이 없으니 앙꼬 빠진 찐빵 같다고 할까요. 의회-주민자치회-행정이 유기적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하는 허브, 제도가 만들어져야 하고 그렇게 주민, 주민자치회의 의사가 공식적으로 반영될 수 있어야만 주민자치위원들의 역량도 발휘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차원에서 민경록 회장은 현재 종로구에서 진행 중인 주민조례 발안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다만 그는 통리 주민자치회 설치가 가능해질 수 있게 되면 정말 반가운 일이지만 제도화 과정이 쉽지 않고, 지역에 통 숫자가 많기 때문에 혹여라도 구성하느라 힘이 소진되는 게 아닐까라는 염려도 솔직히 있다. 한꺼번에 시행하거나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고 세분화에 시간이 많이 소요될 수도 있다라며 현실적으로 우선 분과위원회 활동으로 가능할 수 있는 것들, 즉 동 주민자치회가 커버해야할 지역, 인구가 많다면 분과위 차원에서 지역을 나눠 주민들 의견을 수렴해 조례 초안을 만들어 지방의회 정기회의 때 입법화 할 수 있도록 하는 식으로 실질적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회장단 위주분과위 중심 체계로 자치회 활동 방향 변화

 

주민자치회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해 고민이 많은 민경록 회장이다보니 화서2동 주민자치회, 그리고 팔달구 주민자치협의회 활동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이 깊다.

구의 10개 동 주민자치회를 보니 회장님들과 위원님들 의식이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동네 유지들의 모임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예전 위원회 스타일로 행정에서 원하는 대로 민원커버용으로 돌아가는 곳들도 있고 열성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곳들도 있고요. 협의회에서는 주로 잘 운영되는 동의 사례를 공유하면서 전반적인 주민자치 활성화에 역점을 두고 있어요. 혹시 잘 안 되는 동이 있다면 그런 지역에 대해서는 협의회 차원에서 자극, 동기부여가 될 수 있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민경록 회장의 지역인 화서2동은 특히 분과위원회 활동 활성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전 주민자치회가 회장이 전면에 나서서 이끌어가는 측면이 많았다면 지금은 특정 개인이 아닌 모든 위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활성화 되게 하는데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회장이나 임원들 위주가 아니라 철저히 분과위원회 위주로 돌아갈 수 있게 사업도, 예산도 분과에서 아이디어와 계획을 내고 예산을 받아 직접 실행할 수 있는 구조로 가고 있다. 점점 분과 중심으로 사업이 될 수 있게 분과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분과에서 투표로 뽑힌 2~3년차 신임 분과장님들이 매우 의욕적으로 열심히 잘 하고 계신다고 밝혔다.

물론 주민자치회에서 개선이 어려운 부분들도 여전히 있다. 특히 직장인들의 참여는 여전히 쉽지 않고 주민자치회임에도 위원이 아닌 지역 주민들 의견 반영이 어려운 점 등은 어떻게든 바꿔나가야 한다. 또 이전과 달리 각 주민자치회에 예산이 지원되는 상황에서 주민자치회의 일처리가 다분히 행정위주로 가게 되는 것을 거부하기는 점점 더 힘들어졌다.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집행에 있어서 행정의 간섭이나 개입을 차단하기가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난 125일 처음으로 한국주민자치학회가 주최하는 주민자치 연구세미나에 참석한 후로 희망이 생겼습니다. 한국주민자치중앙회나 학회의 존재를 잘 몰랐고 이렇게 연구세미나가 매주 열리는 것도 몰랐는데 이번에 참석하면서 주민자치에 이런 싱크탱크가 있구나. 학회에서 주민자치 아젠다를 낼 수 있겠구나싶어 상당히 고무적이 되었습니다. 뭐든 한꺼번에 변하긴 어려워도 본질적 문제 해결에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아서요.”

20년째 학원업에 종사하고 있는 민경록 회장은 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지만 올해는 대학원생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주민자치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김윤미 기자 citizenautonomy@gmail.com

사진 문효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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