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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에도 평화가 올까요 '나의 올드 오크' '지미스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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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에도 평화가 올까요 '나의 올드 오크' '지미스 홀'
  • 윤성은 영화평론가
  • 승인 2024.02.22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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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
Town in Movie

영화에 문외한이더라도 켄 로치(Ken Loach)’라는 이름이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1936년생인 켄 로치 감독은 칸영화제에 14회나 초청된 바 있는 거장이자 영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분야를 막론하고 예술가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가 그의 작업들이 가진 일관성이라고 할 때 켄 로치는 영화계에서 가장 앞단에 거론되어야 할 이름일 것이다. 그만큼 그는 공동체 문제, 그 중에서도 노동자들의 인권 및 지역사회의 갈등을 고찰하는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왔다.

 

노동자인권 및 지역사회갈등 고찰켄 로치 감독의 신작 나의 올드 오크

작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인 나의 올드 오크’(The Old Oak, 2023)는 후자에 가깝다. 힘겹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폐광촌에 시리아 난민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주민들이 외적, 내적 갈등을 겪게 된다는 내용으로 구순을 앞둔 노감독은 난민 이슈야말로 동시대 영국에 가장 필요한 이야기라고 판단한 것이다.

한 때 석탄과 철강을 캐면서 2차 산업의 요충지로 자리 잡았던 영국 북동부의 더램은 새로운 에너지산업이 급부상하면서 황폐해져 갔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올드 오크라는 펍을 운영해온 TJ는 우연히 사진작가를 꿈꾸는 시리아 청년, ‘야라와 가까워진다.

그러나 궁핍한 생활로 인해 마음의 여유가 없는 마을 주민들은 TJ의 가게에 자주 모여 난민들에 대한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이국땅에서 배척당하는 난민들의 마음도, 오랜 단골이자 친구들의 피해의식과 분노, 가치관도 이해하는 TJ는 난감한 입장에 놓인다.

그는 중립을 유지하려 해보지만 반려견 마라의 죽음 때문에 힘들어하는 그를 야라의 가족들이 따뜻하게 위로해준 후로 난민들과 보다 가까워지고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오랫동안 방치해두었던 펍의 안쪽 방을 개방한다. 이 방에서 시작한 무료 급식 덕분에 올드 오크는 가난한 주민들과 난민들이 함께 식사하는 공간으로 변모되고 이들의 거리감도 좁혀진다. ‘함께 먹을수록 단단해진다는 마을의 오랜 모토가 실현된 것이다.

이후 올드 오크는 한 차례 더 위기를 맞지만 결말부에서는 많은 주민들이 야라 가족의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 화합과 평화의 불씨가 살아난다.

 

함께 먹을수록 단단해진다밥상공동체의 힘

지역 토박이들과 이주민들의 가치관이나 입장차에 비해 결말이 지나치게 당위적이고 이상적으로 느껴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밥상공동체라는 말이 있는 만큼 함께 식사를 하며 갈등의 골을 메우게 되는 과정이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 영화에서 이방인인 야라가 무작위로 포착한 마을의 다양한 풍경들, 곧 주민들의 여러 표정이 담긴 사진들은 문화적, 언어적 차이를 편견 없이 받아들일 때 열리는 소통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는 켄 로치 감독 스스로가 그의 영화들, 즉 활동사진을 통해 전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나의 올드 오크는 켄 로치 감독의 단골 소재인 법의 사각지대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비극적인 삶과 조금은 다른 궤도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약 10년 전 지역 주민들 사이의 분쟁을 다룬 지미스 홀’(Jimmy's Hall, 2014)을 연출한 적이 있다. 역시 칸영화제 초청작으로, 켄 로치 감독의 영화 중 드물게 낭만적인 음악과 댄스가 삽입된 작품이다. 갈등의 핵심이나 전개 양상은 달라도 나의 올드 오크와 함께 보면 좋을 지점들이 발견된다.

 

또 다른 영화 지미스 홀과 비극적 집안싸움(내전)’

지미스 홀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1919년부터 1921년까지 있었던 아일랜드 독립전쟁과 뒤이어 발생한 아일랜드 내전에 대한 알아둘 필요가 있다. 아일랜드 의회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구() IRA(아일랜드 공화국군)1919121일에 왕립 아일랜드 보안대 소속 경찰 두 명을 살해하면서 아일랜드 독립전쟁이 시작되었다.

아일랜드 공화주의자들과 영국의 게릴라전은 3년간 지속되었고 14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다. 이 전쟁은 202112, 아일랜드를 대영제국 지배하의 자치국가로 인정하는 협정이 맺어지면서 종료된다. 문제는 이 조약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이 아일랜드 내전을 야기시켰다는 것이다.

영국군에 대항했던 IRA의 약 70%는 조약을 무효화하고 완전한 독립을 이뤄내야 한다고 주장했고 노동자계급과 농민들을 위시한 조약 지지파는 이 조약을 발판 삼아 천천히 완전 독립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과격한 급진주의자들이었던 새로운 IRA는 여러 차례 폭탄 테러를 일으키며 아일랜드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켄 로치 감독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에서 아일랜드 내전을 다룬 바 있으며 최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벨파스트’(감독 케네스 브래너, 2022), ‘이니셰린의 밴시’(감독 마틴 맥도나, 2023) 등도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다. 감독들이 아일랜드 내전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집안싸움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전쟁이 어떤 면에서 독립전쟁보다 더 잔혹했으며 100년이 지금까지도 아일랜드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폭력의 시대가 남긴 흉터

지미스 홀은 아일랜드 내전 당시 뉴욕으로 쫓겨 갔던 지미 그랄튼이 대공황으로 인해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훌쩍 커버린 아이들 말고는 변한 게 없는 마을에서 그는 옛 친구들의 환대를 받지만 마을의 노신부는 그를 반기지 않는다. 개방적이고 리더십이 강한 지미가 마을 주민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거라는 이유에서다.

한편 십대 아이들이 지미에게 예전처럼 마을회관을 다시 열어달라고 조르면서 지미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사건들이 현재와 교차된다. 내전 당시 지미는 자기 땅에 마을회관을 만들어 주민들이 자유롭게 모이도록 한다. 선출된 위원회가 운영을 맡아 자원봉사로 주민들을 교육하고 취미 활동을 함께 하면서 마을은 활기를 띤다. 그러나 가톨릭 사제는 교육이 교구의 고유권한이라며 지미를 못마땅해하고 조약 반대파와 마을 회관을 뺏으려 한다.

조약 반대파와 지지파 사이에 잇따라 갈등이 빚어지고 IRA가 지미를 무력으로 체포하려 하자 지미는 뉴욕으로 도피한다. IRA 급진파들이 지미를 잡겠다고 수업 중인 회관에 총을 쏘며 등장하는 장면은 당시의 공포 분위기를 생생하게 재현한다. 한 때는 영국에 대항해 함께 싸웠던 이들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비극은 우리네 역사와도 닮은 데가 있어 더욱 안타깝다.

그런 사건이 있은 후 내버려져 있던 마을회관은 지미와 친구들의 노력으로 다시 주민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변모된다. 자신들의 즐거웠던 한 때를 되살리고 다음 세대들도 맛보게 해주려는 주민들의 의지와 열정이 훈훈하게 묘사된다. 지미가 마을에 처음 선보이는 축음기를 틀어놓고 춤을 가르쳐 주는 장면은 켄 로치 감독이 꿈꾸는 이상적인 커뮤니티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십대 소녀가 지미 주최의 댄스파티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채찍을 맞는 일이 벌어지면서 지미와 주민들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골몰한다. 딸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아버지, 소녀의 등에 선연한 붉은 흉터들은 내전 후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폭력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러한 폭력이 무기가 아닌 세 치 혀끝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지역사회 갈등 기저에 놓인 이념과 가치관의 문제

켄 로치 감독은 지미스 홀에서 작정하고 보수적인 가톨릭 사제를 비판한다. 노신부는 공산주의자들의 구호가 가난한 사람들과 실업자들에게 매력적이기 때문에 종교 수준으로 번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지미가 주민들을 현혹시켜 가톨릭 교리 보다 공산주의사상을 더 믿게 되고 교구의 권력이 약화되는 것이다. 젊은 사제는 거듭 지미가 위험한 인물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노신부는 완고하다. 그는 설교 중에 댄스파티에 참석한 교인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타락한 사람들로 규정하는데 이 장면은 춤을 추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교차 편집되어 그 폭력성이 더욱 부각된다.

나의 올드 오크와 달리 지미 그랄튼의 실화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그러나 지역사회의 갈등 기저에 놓인 이념과 가치관의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유사하다. 마을을 갈라놓고 폭력을 조장하는 전통문화, 혹은 토착종교가 있다면 그 의미와 가치에 대해 재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진=영화사진진/그린나래미디어

 

 

많은 영화의 배경이 마을이다. 영화 주인공들의 삶의 터전 역시 그들이 사는 마을이고 동네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배경이 되는 마을, 그리고 이웃들과 때로 갈등하고 협력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간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되기도 하고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앞으로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에서는 마을과 사람들의 케미스트리, 그들 사이의 교감과 성장, 변화를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 속에서 주민자치의 바람직한 방향, 때로 반면교사의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 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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