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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주민자치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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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주민자치를 소개합니다
  • 전영평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4.03.05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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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학계마을, 내가 10년째 귀촌해서 사는 마을이다. 교수직을 뒤로하고 해인사 근처 매화산 앞쪽 마을에 2015년 초여름에 집 짓고 전입신고를 하여 여태 살고 있는 시골 마을이다. 마을 가옥은 촌집과 이주민 집을 합쳐서 대략 20여 호 되고 주민은 50명도 채 안 되는 곳이다. 나이 드신 할머니가 10여 분, 80대 중반 할아버지급이 3, 60대 이상이 10여 명, 50대가 대여섯 명 정도 되며 그 이하 나이의 주민은 안 계신다.

농촌 인구소멸 시대에 우리 마을은 여타 이웃 마을에 비해 형편이 나은 편이다. 원주민과 이주민의 비율은 31 정도 되며 서로 잘 조화를 이루며 사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자부한다. 이번 호에는 우리 마을 주민자치가 어찌 되어가는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지금까지 2년간 대부분 학술적이거나 논설문식 칼럼을 써왔는데 올해 들어서는 마을 자치/동네 자치에 대한 관찰과 기록을 남기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이라는 큰 깨달음이 온다.

마을 전경=필자 제공
마을 전경=필자 제공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학계마을 주민회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우리 동네의 주민자치 실황을 소개하는 것을 잊었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에 해당하는 우리 마을을 소재로 하여 주민자치회의 구성과 운영, 주민자치 재원 마련, 주민자치 사업과 회의, 주민자치의 지배구조, 주민자치와 면사무소, 이장, 새마을지도자와의 관계, 주민의 성향과 특성, 주민자치의 수준과 미래 자치 가능성에 관한 사실과 소감을 피력해 보도록 하겠다.

먼저 대부분 마을과 마찬가지로 우리 마을에도 과거부터 상부상조형 주민회 모임(학계마을 주민회)가 있었다. 주민회의 공식 규약 같은 것은 없지만 주기적인 주민 모임이 있어 왔는데 그간 다수의 세대가 도시로 진출하여 지금은 50대 청년회, 남성 노인 중심의 노인회, 여성 노인 중심 모임이 있다.

50대 이상 청년회가 모이는 곳은 산골이라 불리는 송림 숲속 정자이며 주로 여름에 회식하고 휴식하며 담소한다. 70대 이상 남성 노인은 아랫마을 공동 경로당에 모이며 주로 휴식, 담화, 보건 상담, 오락, 군의원이나 공무원 방문을 받는다. 일부 건장한 노인들은 경로당 인근 폐교 활용 공간에서 그라운드 골프 등을 하면서 상호 소식 교환, 필요 사항 공유, 회식 등을 한다. 이들은 사실상 주요 여론 세력으로서 마을사업 등에 대해 면이나 군에 요청하는데 면이나 군에서도 이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퇴직 면장, 이장, 동네 유지 등이 이 그룹의 여론주도층이 된다. 경로회는 사실상 사교나 휴식 장소 기능을 한다.

동네 청년회는 사실상 주도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구성원 숫자도 부족하지만 경로 분위기가 존속하기 때문에 마을 일에 대해 수동적 협조나 소극적 방관으로 일관한다.

동네 마을회관은 주로 70대에서 90대에 이르는 할머니들의 휴식, 사교, 소식 교류의 공간이자 식당 역할을 한다. 이들은 농사일을 시작하기 전이나 점심을 하거나 덥거나 추워서 잠시 쉴 때 이곳을 사용하는데 회관 활용도는 매우 뛰어나다.

여성 노인이라고 해서 마을의 주요 사안에 대하여 결코 소극적인 것은 아니다. 10년 관찰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여성 노인의 영향력이 의외로 크다는 것이었다. 새마을 부녀회와 새마을회가 구성돼 있고 새마을 깃발도 게양되어 있지만 새마을회 지도자의 영향은 미미하고 간헐적일 뿐이다.

마을회관 모습. 사진=필자 제공
마을회관 모습. 사진=필자 제공

 

연령별 주민모임이장의 역할과 구도

여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학계마을 주민회에는 주민이 선출한 주민회장과 총무가 있다. 주민회장과 총무는 최근까지만 해도 80대 노인이었다. 주민회장과 총무를 맡아서 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 여성 노인들의 경우에는 무학이 대부분이고 회의 진행, 회계 사업 보고를 할 수준의 사람이 없어서인지 계속 남성이 회장, 총무를 하게 된다.

동네 이장은 주민회의 구성원 중 하나이지만 주민회 회의를 주도하지는 못한다. 이장은 주민회의 추천으로 또는 투표로 선출된다. 그가 하는 일은 주로 면사무소 회의에 참여하고 면사무소 사업이나 행사를 전달하는 일을 한다. 이장이 면사무소 회의에 가기 전에 주민회에 의견수렴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최근 이장수당이 많이 인상되어 우리 마을의 경우에는 70만 원(관공서 수당과 농협의 지원 수당)을 받는다. 대부분 마을에서 이장수당은 50만 원에서 70만 원 정도 된다고 한다. 이장수당이 인상되다 보니 최근 이장직을 두고 치열한 득표 경쟁을 하는 현상이 생겼으며 선거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심지어 상대를 고소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선거법이 적용되지 못한다는 에피소드도 발견된다.

주민회의 재원 조달은 어떻게 하는가. 우리 마을의 경우에는 주민회 가입금(50만 원), 주민회 적립금(토지 재산 처분 금액, 농지임대료, 마을 이주 발전기부금, 경로잔치 기부금, 주민 자녀의 기탁금으로 구성) 등을 현금재산으로 확보하고 있다. 적립금 총액은 수천만 원에 이르고 있으며 이 돈은 주로 주민회의 친교 행사-야유회, 회식, 경조사비 등-에 쓰인다. 마을 개량 사업 등에 쓰이는 돈은 아니다. 마을 개량 사업이나 생활 불편 개선 사업은 대부분 민원을 통해 정부 사업으로 시행된다.

 

주민의견 수렴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행정에 반영되는가

주목할 점은 마을주민회, 이장, 새마을지도자, 새마을부녀회장 등이 적극적으로 주민의견 수렴을 하려 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주민도 집단적 의견 표출보다는 소극적이고 개별적인 불만 사항을 토로하는 수준의 소극적 관여 태도를 보인다. 적극적인 주민민원은 마을에 주소지를 둔 전직 공무원 출신 주민이나 마을 유지 등이 면사무소나 군청에 개별 접촉하는 수준에서 해결하고 가끔 주민동의서명을 받기도 한다. 관청에서는 주민의 집단서명 민원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이런 일을 주도할 사람은 시골 마을에서는 사실상 찾아보기 어렵다.

주민 중 일부가 가끔 관공서에 가서 개별 민원 사안에 대하여 항의하는 경우는 있지만 마을 공동 사업을 위해 집단 결의를 하는 경우는 없었다. 마을 불편사항이나 피해복구를 위한 집단 우려는 있었어도 마을의 편의사항(예컨대 분리수거대 설치, 수돗물 개량)을 위한 주민회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주민회와 주민회 재원은 존재하고 있으나 능동적인 주민자치 활동은 거의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 마을 실정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행정학을 전공하였고 시민참여를 주창해 온) 필자도 마을 공동사업이나 개선사업을 위한 주민회 개최를 요청하는 것이 매우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누구 하나 같이 나서주는 동지를 만나기 쉽지 않은 것이 우리 마을의 현실이다. 간략히 말하면 마을자치를 적극적으로 주도할 마을 지도자가 없으며 주민회장도 새로운 자치이슈를 개발하거나 적극적인 대관 접촉을 통해 마을사업을 추진하기보다는 마을의 관행적 행사, 회식, 회계보고 같은 현상유지적 활동에 치중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건은 여성 노인 한 분이 500년 정도 된 느티나무에 마을 제사 행사를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고 일부 여성 노인들이 제사에 참여하여 절을 하고 나무에 막걸리를 부어주는 모습을 보았다. 이들의 행사는 동네 유지에게 알려지고 주민 일부는 체면치레로 돈을 추렴하여 전달하였고 할머니들은 그 돈으로 회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필자는 이 사건을 보면서 당산 제사의 초기 형성과 그 원인, 유지 과정에 대한 사회인류학적 직관(?)을 할 수 있었다. 범신 사상, 제사, 주민 동조 원인, 재원 마련, 행사 구성과 관례 형성, 그리고 주민모임 형성 및 제반 토론 결정 과정을 거치면서 마을 주민자치의 한 축이 형성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내 유추의 내용이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 소멸 현상과 더불어 이러한 제사 관례의 생성이 더 이상 대부분 주민의 관심사항이 되지는 못한 채 그냥 한두 명의 손에 그 명운이 달려있을 뿐이다. 시대는 현대에 살고 있으나 공간은 아직 씨족, 부족적 관행이 유지되는 현상은 우리 마을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이웃 마을은 물론 상당수의 농산어촌 마을이 아마도 서로 비슷한 관행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도시로의 인구 유출과 시골로의 인구 유입이 안 되는 상황에서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그 나이 연배에 맞는 전통적 관행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일 테니 말이다.

평화로운 마을 전경. 사진=필자 제공
평화로운 마을 전경. 사진=필자 제공

 

주민자치의 불꽃, 어떻게 피워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나라 곳곳에 널려있는 시골마을에서는 어떻게 주민자치의 불꽃을 피워낼 수 있을까. 과거 새마을운동에서 보여준 주민자치 열정도 대부분 사그라지고 마을주민 자치 이슈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이를 실천할 마을 지도자도 찾아보기 힘든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주민/주민회 주도의 주민자치를 일궈낼 수 있을 것인가하는 고민이 늘 머릿속을 맴돌았다.

한국주민자치중앙회/한국주민자치학회가 주도하는 주민자치운동, 주민자치의 제도화 노력, 주민자치이론, 논리, 자료 개발 활동이 왕성한 것은 사실이나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주민자치의 현장인 마을/동네에서 자발적으로 주민자치를 실행할 수 있는 동력과 자원이 부족할 경우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궁리를 하다 보면 가슴이 허탈할 때가 많다. 동네마다 주민자치센터, 주민행복센터, 주민복지센터 등이 이미 다 들어서 있고 선량들은 저마다 서로 주민자치의 선봉이 되겠다고 설쳐대는 허울뿐인 주민자치 과잉시대에서 원래의 뜻에 맞는 명실상부한 주민자치는 초라한 모습으로 실종되어 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퍼트남이 나홀로 볼링(Bowling Alone)’에서 지적한 것처럼 개인주의, 자유주의, 인터넷 접속 시대 도래로 인하여 전통적 마을 사회자본이 쇠퇴하는 시대가 우리에게도 온 것이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이웃 일본에서 그런대로 잘 되어가고 있는 주민자치의 관행을 보면 아직 우리에게도 기회는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일본의 경우 주민자치회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비교적 명백한 사업리스트가 잘 개발되어 있고 각성된 주민들이 그런 일에 대해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잘 참여하고 있는바(사업/이슈 목록과 그것을 이끌어 줄 주민회 지도자가 사안의 핵심) 우리에게도 그런 식의 열정과 노력이 잘 전파되고 실행되는 계기를 만드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에 전문적, 통괄적,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유일한 민간 주민자치운동 단체는 한국주민자치중앙회/한국주민자치학회임이 틀림없다. 올해에도 큰 기대를 하며 응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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