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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말이 전도된 ‘주민자치센터 평생학습센터화’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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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말이 전도된 ‘주민자치센터 평생학습센터화’를 보며
  • 이관춘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 승인 2024.03.20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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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춘의 마을·자치·교육

3월의 대학가는 활력이 넘친다. 봄의 문턱을 넘어선 캠퍼스는 연한 초록색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여기저기 인생의 봄을 만끽하는 젊음의 웃음소리들이 산골 계곡 물소리처럼 청아하다. 싱그러운 봄의 아름다움은 겨울 그림자가 드리운 가을이 되어야 제대로 체감할 수 있는 것인지 올 봄 강의실 문을 들어서는 마음가짐이 마치 신입생처럼 설렌다. 복도를 지나가며 강의실 문틈으로 서로 다른 수많은 전공분야에 대한 강의와 토론의 열기가 새어나옴을 느낀다.

문득 이 모든 학문의 전공들이 지향하는 것은 무엇일까란 물음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대학의 교훈은 답을 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Veritas vos liberabit).”

 

수레를 말 앞에 놓는다면?

전 세계적으로 많은 대학들이 모토로 채택하고 있는 라틴어 단어 두개가 진리(veritas)’란 명사, ‘자유롭게 하다(libero)’란 동사이다. 진리, 참되고 옳은 것을 알고 행할 때 인간은 비로소 자유롭게 된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을 원한다면 진리에 천착하고 옳음을 실천하라는 뜻일 게다.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 정의는 다양하고 끊이지 않는 논쟁거리다. 하지만 개인적 일상이나 공적인 일에서 충족시켜야 되는 진리의 조건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논리적 오류(fallacy)’를 범하지 않는 것이다.

말이 좀 딱딱하지만 논리적 오류는 부실하거나 부당한 논리를 의미한다. 의도적인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모르기 때문에 범하는 오류다. 물론 가족이나 친구들끼리의 대화에서의 논리적 오류는 어느 정도 유머로 넘어가 줄 수 있다. 하지만 공적인 의사결정이나 정책 결정에서의 논리적 오류는 다르다. 예상치 못한 부정적 결과나 외부효과혹은 공적인 피해를 가져올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자주 경험하는 논리적 오류(비형식적 오류) 중 하나가 본말전도의 오류. 선후 관계가 바뀌거나 혼동되는 경우 반드시 나타나게 되는 오류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처럼 침대를 몸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몸을 침대에 맞추려는 고약한 짓이다. 누군가 나갈 때 문 닫고 나가라고 말한다면 이 역시 본말이 전도된 논리적 오류다. 물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며 누구도 문제 삼지 않는다.

허나 누군가 마차의 기능을 쇄신하겠다고 수레를 말() 앞에놓게끔 법을 개정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법을 따라야 할 사람들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충실하게 수레를 말 앞에 내 세운다. 마차를 타야 할 주민들 역시 무언가의 변화를 감지하지만 법이 잘 알아서 하겠지 하는 믿음에 새롭게 단장한 수레에 올라탄다. 시간이 흐르면서 말이 밀려나고 수레란 언어에 익숙해진 주민들은 마차는 곧 수레라는 생각에 젖게 된다. 그 결과 말과 수레가 있지만 마차는 없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되어간다. 본말전도의 오류가 그렇다는 얘기다.

 

법 개정이 부른 주민자치센터 명칭 변경

과문한 탓인지 일부 읍면동 주민자치센터의 명칭이 평생학습센터로 바뀌고 있다는 소식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그에 따라 읍면동 평생학습 거점화’(주민자치 20242월호)란 말이 나온다. 읍면동이 평생학습의 거점이 된다는 것은 당연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주민자치센터란 명칭을 평생학습센터로 변경함으로써 나온 현상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철학적, 평생교육학적 논리로 볼 때 수레를 말 앞에 놓는, 본말이 전도되는 현상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몇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읍면동 평생학습 거점화는 이전까지 시도(평생교육진흥원), 시군구(평생학습관)에 지정설치됐던 평생학습거점기관을 더 낮은 단위인 읍면동으로까지 확산하려는 제도로 보인다. 한 예로, 김포시의 경우 읍면동 주민자치센터가 ‘OO면 가까이배움터’, ‘OO동 가까이배움터등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한다. 아산시는 주민자치센터의 명칭을 일사분란하게 읍면동 평생학습센터로 변경하였다. 특히 주민자치센터를 주민자치학습센터로 바꾼 이천시의 경우는 많은 사려 깊은 고민과 논의를 거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명칭변경의 이유는 간단하다. 개정된 평생교육법(2023.4.18.)에 따르기 위해서다. 21조는 올 4월부터 읍면동 평생학습센터 설치·지정 운영 의무화를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에 운영할 수 있다의 권고조항으로 신설된 후 읍면동에서 서서히 진행되던 주민자치센터 명칭의 변경이, 지난해 운영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으로 바뀌면서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명칭 변경의 주체는 읍면동이겠지만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잘못은 더더구나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개정안의 의무조항을 신속하게, 충실하게 이행한 것이 아닌가? 다만 변경에 앞서 주민자치와 평생학습의 교육학적, 철학적 의미에 대한 사려 깊은 이해와 논의가 부족했다는 지적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명칭변경과 관련한 비판적 논의의 대상은 개정된 평생교육법의 내용과 그 개정에 관련된 의사결정권자가 될 것이다. 물론 읍면동 평생학습센터 설치 의무화가 읍면동 주민자치센터의 명칭변경을 의미하거나 강제한 것은 아니다. 주민자치센터를 평생학습센터로 대체하라는 규정도 아니다.

문제는 그 의무화조항은 필연적으로 주민자치센터의 평생학습센터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읍면동사무소의 물리적, 공간적 제약 때문이다. 주민자치센터가 읍면동사무소의 유휴공간을 활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평생학습센터 설치 의무조항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주민자치센터의 평생학습센터로의 명칭변경이나 부서의 재배치 등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주민자치센터의 평생학습센터화의 행위주체는 읍면동사무소지만, 명칭변경의 현실적이며 실질적인 원인(遠因)은 평생학습센터 설치 의무조항인 것이다. 평생교육법 개정 관련자들이 명칭변경이란 부정적 외부효과를 예측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예측하고도 명칭변경의 의미와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어찌됐건 졸속개정이다.

 

자치와 학습, 무엇이 목적인가?

주민자치센터를 평생학습센터로 바꾸는 게 뭐 그리 대단한 문제가 되는 것인가? 혹자는 필자의 비판적 논조에 대해 이렇게 묻거나 힐난(詰難)할지도 모른다.

먼저 언급해 두자. 필자는 평생교육의 학문적 정체성과 실존적 당위성을 필생의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학자(學者)로서 읍면동의 평생학습 활성화 및 저변확대를 위한 평생교육법 개정안 취지에 적극 공감하고 지지한다. 인간의 삶은 학습을 통해 빚어지고 변화되는 과정이며 사회경제적인 성취는 물론이고 각자 내면에서 샘솟는 참된 행복은 학습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생교육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주민자치센터의 평생학습센터화혹은 읍면동 평생학습 거점화는 반기지는 못할망정 비판할 일은 아니다. 그럼 왜 비판하는 것인가? 평생교육의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다음 질문에 대답해보자.

자치를 위한 평생학습인가? 평생학습을 위한 자치인가?

이 질문은 말이 수레 앞에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수레를 말 앞에 놓아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이다.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자치를 위한 평생학습이지, 평생학습을 위한 주민자치가 아니다. 평생학습이 추구하는 가치와 목적이 주민자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민자치센터를 평생학습센터로 명칭을 바꾸는 것은 본말이 전도되는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다. 왜 그런가? 먼저 주민자치와 평생학습 개념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주민자치의 개념 정의는 다양하지만 그 모든 정의는 자치라는 철학적이며 평생교육학적인 개념에서 비롯된다. 자치는 자의(字意) 그대로 자기 일을 스스로 다스리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각자 각자가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사는 것이다. 학교교육을 포함한 모든 평생교육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가치이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소망하는 실존적 욕구이자 행복의 조건이다. 니체에 따르면 인간이 일상의 크고 작은 일을 스스로 결정하려는 자치에의 의지는 모든 인간의 힘에의 의지(Will to power)’로서 인간본성 그 자체다. 주민자치는 주민들의 유전적 욕구이자 인간본성인 자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인간본성으로서 유전적 욕구이기에 주민자치는 주민의 복지, 주민 행복의 핵심요소인 것이다.

평생학습이란 개념은 학습이라는 단어에 평생이라는 접두어가 붙은 단어다. 20세기 중반 유네스코가 굳이 평생교육, 평생학습이란 말을 사용하게 된 것은 학교중심교육이 왜곡시켜 놓은 교육과 학습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미를 표방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평생학습은 평생교육 개념과 연계시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지면상 차치하기로 한다. 단순화시켜 말하면 평생학습에서 평생이란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시간적, 공간적 차원의 통합을 의미한다. 따라서 평생학습은 삶의 모든 장면과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형식적, 비형식적, 무형식적 학습 모두를 포함한다. 읍면동 주민자치센터에서 시행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평생교육프로그램이 곧 평생학습 활동인 것이다.

모든 평생학습은 나름의 목적을 갖는다. 그 목적은 평생학습프로그램 수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전술한대로 모든 평생학습이 지향하는 궁극적 목적은 학습자 각자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것, 즉 자치다.

읍면동 주민들의 평생학습은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자기주도학습의 중요성이다. 즉 학습에서의 자치를 강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민들의 모든 평생학습활동은 기본적으로 특정 분야의 앎 혹은 지식과 정보, 기술을 자기 스스로 익혀 이해하고 통제하는 자치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읍면동 주민들의 평생학습활동의 궁극적 지향은 자치의 삶이며 평생학습 그 자체가 자기주도적이며 자치적인 활동이다. 따라서 주민자치는 평생학습을 포괄하는 대()개념이며 평생학습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가치가 주민자치이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법에서 자치의 주체로서 주민의 다양한 권리가 더욱 강조되는 지방자치시대가 아닌가. 읍면동의 주민자치센터를 평생학습센터로 명칭을 바꾸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주민자치센터 중심의 평생학습 거점화 되어야

다시 말하지만 읍면동의 평생학습 거점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본말전도의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주민자치센터가 사라진읍면동의 평생학습 거점화가 아니라 주민자치센터가 중심이 되는읍면동의 평생학습 거점화가 되어야 한다.

개정된 평생교육법(2023.4.18.) 21조의 3시장 군수 자치구의 구청장은 읍면동별로 주민을 대상으로 하여 평생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상담을 제공하는 평생학습센터를 설치하거나 지정하여 운영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운영하여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읍면동 주민자치센터의 명칭을 평생학습센터로 바꾸게 만든 장본인인 셈이다. 얼핏 보기에 평생학습 활성화를 위한 개정안처럼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두 가지 면에서 이 의무조항의 타당성이 희박하다.

첫째 개정의 논거가 없으며 기존의 주민자치센터설치 준칙과의 차이가 없다. 평생교육법 일부개정에 관한 교육부 보도자료(23.3.30)를 보면, 읍면동 평생학습센터 운영이 강제적 시행으로 개정됨에도 불구하고 그 강제성에 대한 아무런 논거가 없다. 개정안의 주요내용에서도 평생학습센터 운영에 관한 내용은 아예 없다. ‘갑툭튀라고 하던가, ·구조문 대비표 제213에 와서 운영하여야 한다는 의무조항으로 개정되었음을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만일 의무조항이 읍면동의 평생학습 활성화를 위해서라면 이미 주민자치센터의 주요 기능으로 평생교육이 명시되어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행정자치부 주민자치센터설치및운영조례 개정준칙(2005.12) 5조는 주민자치센터의 주요 기능이 평생교육임을 명시하고 있다. 주민자치센터는 주민자치기능과 아울러 주민을 위한 평생교육, 교양강좌 등의 시민교육을 포함해 문화, 복지, 편익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과거의 개정준칙이 주민자치센터와 평생학습과의 관계를 정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평생교육법 개정안의 취지대로 읍면동의 평생학습 활성화를 위한다면 기존의 주민자치센터의 평생교육 기능을 활성화하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주민자치센터의 교양강좌, 취미교실, 생활정보제공 등의 다양한 기능들을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통합 및 재배치하고 평생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면 될 것이다. 읍면동 주민자치센터의 관점에서 평생학습센터 의무화는 개선이 아닌 개악이다.

둘째, 같은 맥락에서 평생학습센터 설치목적의 타당성이 결여되어 있다. 개정된 평생교육법 제21조의 3에 의하면 평생학습센터 설치·운영의 목적은 단 하나, ‘주민을 대상으로 한 평생교육프로그램 운영과 상담이다. 그렇다면 평생교육프로그램이란 무엇인가? 주민자치센터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실시해 온 강좌들은 평생교육프로그램이 아닌가? 기존의 주민자치센터에서 운영해온 강좌나 프로그램개발 역시 기획과 설계, 실행 및 운영, 평가, 피드백의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평생교육프로그램이다. 따라서 독립적인 평생학습센터를 설치·운영해야 할 근거가 없다.

평생교육법의 개정 취지대로 평생학습의 활성화를 위해 프로그램의 확장 및 전문성 제고를 위한다면 각 읍면동별로 평생교육사를 적극적으로 채용·배치하면 될 일이다. 그것이 훨씬 효율적이며 효과적이다. 보여주기 식 정치나 전시행정의 의도가 아니라면 평생학습센터를 독립적으로 설치·운영해야 할 근거나 당위성을 찾기 어렵다.

서양 속담에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는 말이 있다. 주민자치센터가 평생학습센터로 바뀐다고 주민자치가 실종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주민자치라는 말이 멀어지면 주민들의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왜 멀어지는 것일까?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언어란 세계를 그려내는 것이다. 주민자치센터란 언어를 듣고 보면서 주민자치의 세계가 그려지고 그 의미와 중요성이 마음에 새겨지게 된다는 것이다. 불세출의 언어학자인 소쉬르는 어떤 관념이 먼저 존재하고 거기에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라 이름이 붙으면서 어떤 관념이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게 된다고 말한다. 주민자치란 생각은 주민자치라는 말에서 탄생한다는 것이다.

주민자치센터를 평생학습센터로 바꾸는 것은 단순한 명칭의 변경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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