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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사회 한국과 주민자치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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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사회 한국과 주민자치 경쟁
  • 전영평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4.03.29 14: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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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평 교수의 자치이야기

지난 2월 열린 2024 아시안컵 축구경기에 대한 관심이 아시아권 국가마다 매우 뜨겁게 달아올랐다. 국가 간 축구 대결은 분명히 게임(game)이고 경쟁(competition)이다. 그중에서도 중국은 축구를 통한 국민통합을 정치적으로 관리하는 나라여서 그런지 유튜브나 뉴스를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중국 우월주의에 빠져있는 축구 애호가들은 최근 딜레마에 빠져있다. 그들은 중국 축구 조별 탈락에 대한 분노 표시를 넘어 특히 한국축구에 대한 경외와 질투를 가감 없이 댓글로 표현한다. 게임과 경쟁이 불러온 열정, 감정, 분노, 시기, 질투, 보복 심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중에서 주목할 만한 비이성적 댓글을 보면 한국인 응원자의 미모는 성형 덕분이고 한국은 성형미인을 응원단으로 내보내며 한국인의 응원 현장 청소는 국가의 지령에 따른 것이다라는 내용이다. 실로 누군가의 뒷배 수준의 댓글이 아닐 수 없다.

 

경쟁사회한국선 선행까지도 경쟁? 공동체 생존번영 유지 위한 양면적 활동 나타나

이런 댓글은 우습게 무시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댓글을 반박한 댓글이 매우 예리하다. 그 내용은 무식한 소리하지 마라. 나는 한국에 2년 이상 살아봤다. 한국은 좁은 나라에 인구가 많은 경쟁사회이고 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회이다. 성형수술이 유행하는 것도 미모 경쟁을 통해 자존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심지어 한국인은 축구장 청소와 같은 선의의 일도 그것이 바르다고 생각하면 경쟁적으로 서로 하려고 든다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뜬금없이 축구 얘기를 계속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반박 댓글자가 정확히 지적하였듯이 우리의 태도, 행동 패턴은 남보다 뛰어나기 위해, 칭찬과 보상을 받기 위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불가피한 경쟁에 빠져드는 경향이 매우 심하다는 것이다.

비좁고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 자기 나름의 영토를 어떻게든 확보하기 위해서는 선의의 경쟁은 물론이고 악의의 경쟁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설이 가능하다. 실제로 저명한 동물 심리 실험사례를 보면 빈약한 환경에 많은 숫자의 쥐를 풀어 놓았을 경우 극심한 경쟁은 물론 각종 이상행동이 발생한다는 관찰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물론 인간은 쥐와는 다르게 축적된 사회생활의 지혜를 토대로 행동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인구밀도가 높은 복잡한 사회에서는 경쟁과 이상행동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또한 경쟁의 규칙과 집단지성을 통한 협동행위도 동시에 발생하게 된다. 결국 복잡한 경쟁사회에서는 각종 문제가 발생하게 되지만 그 해결책을 마련하여 공동체 생존과 번영을 유지하고자 하는 양면적인 활동이 생겨난다. 물질이 생기면 반물질이 같이 생겨나는 것과 같은 이치인 듯하다.

 

인간사회선 이기주의-타협주의 동시 발생이타적 경쟁도 생겨 근데 주민자치에선 왜?”

이런 시각에서 보면 마을 주민은 한정된 자원을 두고 서로 경쟁하는 이기적 존재이다라고 가정하는 것이 틀린 주장은 아닐 것이다. 또한 마을 주민은 경쟁의 폐해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합리적 행동 원칙과 협동 원칙을 만들어 내는 이성적 존재라는 가정도 틀린 것이 아니다. 인간사회에는 이기주의와 타협주의의 동시 발생, 심지어는 이타적인 경쟁이 생기기도 한다. 이상을 요약하면 마을 주민은 서로 이기적으로 경쟁하면서도 이성적인 협력의 규칙, 더 나아가 이타적이거나 도덕적인 행위를 추구해야 하는 모순적이며 기회주의적 행동을 해야 하는 복잡 미묘한 존재이다. 이는 마치 학교에서 성적경쟁을 하는 수험생들이 동료학생과의 사회적 관계, 즉 존재감을 부여받기 위한 상호존중과 협동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과 매우 유사한 것이다.

자기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기적 경쟁과 동료 착취를 일삼는다면 종국에는 자기의 성공도 무위로 돌아갈 것임을 아는 것이 인간이다. 이를 위해 인간은 인위적으로 이타적 활동을 하기도 한다. 기부, 헌금, 솔선수범, 자원봉사, 사회공헌 등이 바로 이타적 활동을 통한 자기 생존, 집단 안정 추구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 자본(공동체 내의 신뢰, 질서 창출, 협동, 참여 정신, 네트워크 등) 이라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생성된 것이 아닐까 한다.

여기서 필자는 주민자치와 관련하여 몇 가지 질문을 하고자 한다. 첫 질문은 자신의 이미지와 이득, 가치 실현에 도움이 된다면 무한 경쟁이라도 할 듯한 우리 사회에서 왜 주민자치에 대한 경쟁은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선뜻 떠오르는 대답은 아마도 주민자치회에 참가하는 것이 개인의 이미지, 이득, 가치 실현에 거의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주민자치위원으로 행세하는 그 많은 사람은 왜 주민자치 위원회에 참가하려는 것일까. 그들은 주민자치위원으로서 무슨 이득을 기대하는가. 주민자치위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주민자치위원의 신분을 획득하여 자기 위신, 권력감, 경제적 이득, 정치적 진출 등을 모색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며 대부분 주민은 그러한 이득을 추구하기보다는 자기의 참가비용을 줄이는 것을 선호한다고 봐야 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주민 개인에게 주민자치회에 가입을 강제하는 제도가 존재하지 않으며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런 제도 자체를 강압적으로 만들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나라의 주민자치는 주민자치위원의 지대를 추구하는 일부 지망생과 그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다수 주민 간의 욕구 불일치(mismatch) 현상으로 인하여 형식적인 주민자치제도는 존재하나 실질적 주민자치 현상은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주민자치, 자유민주주의 풀뿌리부터 구축하는 인간사회의 놀라운 발명품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주민자치가 활성화될 가능성은 있는가?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마을, , 리 단위에 이르기까지 주민자치가 꼭 필요한 것인가? 만일 주민자치가 필요하다면 어떤 방법이 있는가? 만일 필요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며, 주민자치를 대신할 수 있는 대안은 있는가?’ 등이 꼬리를 물고 기다리고 있다.

필자는 이에 대한 가장 직설적 대답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은 거의 대부분 꼭 존재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예를 들어 축구라는 스포츠, 민주주의, 인공지능, 대학 등이 꼭 존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우리 자신도 이 세상에 꼭 존재해야 할 필요도 이유도 찾기 어렵다. 하지만 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의 한계 속에서 우리의 자유, 자존, 안전, 행복을 위한 제도를 만들고 협동하는 노력을 (비록 그것이 불완전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겠지만) 해보고 그것이 인간의 안전과 행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짧은 인생에서 보람이 있을 것이고 미래 세대의 행복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사회에서 중요한 일의 결정을 신, 제왕, 독재자, 사회지도자에게 위임하고 의존하며 인내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잔인한 결과를 가져왔는가를 되돌아보자. 인간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사실과 이성에 기초한 합리적 제도와 체제를 만들고 서로 권리와 의무를 준수하고 자조, 자립, 협동을 통하여 세상을 만들어 가는 길만이 대중이 존재감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길임에 틀림없다. 그 길의 이름은 자유민주주의이다.

주민자치는 자유민주주의를 풀뿌리부터 구축하는 인간사회의 놀라운 발명품이며 민주적 협의 과정 그 자체이다. 20세기 후반 사회자본(social capital) 개념을 만들어 한 시절 담론을 주도했던 퍼트남이나 후쿠야마 같은 저명 학자들이 그 중요성을 시대정신으로 강조한 공적은 있으나 사실은 기원전 고대 그리스 시대의 폴리스 정치, 중국 요순시대 공동체 사회의 토론과 합의과정 그 자체가 공동체 사회자본 축적과 같은 것이다. 토크빌의 미국 민주주의 뿌리 담론도 결국은 주민공동체 스스로가 자치를 통해 사회자본을 축적하고 이를 토대로 민주주의와 개인 및 사회의 성장을 이루어 간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즉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며 사회가 번영하기 위해서는 사회자본 축적이 필수요소 중의 하나라는 것을 이미 알고 행동했었기에 사회자본은 결코 20세기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없다.

 

주민자치 활동, 사회자본 생성의 주형이자 용광로공동체 활동 경쟁 어떻게 불붙일까

그렇다면 21세기 우리가 사는 현대에서 주민자치는 어떤 위상을 가지는 것일까. 필자는 우리 시대의 주민자치 활동이야말로 사회자본 생성의 주형이며 용광로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 용광로가 거의 열을 뿜지 못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자문한다. 왜 한국과 같은 극심한 경쟁사회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회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공동체 활동 참여에 대한 경쟁이 이루어지지 못하는가. 우리가 이 질문에 대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면 그 대책을 마련하는 방안도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른다.

먼저 경쟁의 유형에 대해 생각해 보자. 왜냐하면 인간의 경쟁 활동은 매우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4가지 경쟁유형을 제시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는 본능적 경쟁이다. 이는 생존과 생리적 욕구를 취하기 위한 경쟁이며 눈앞에 닥친 위험과 위기를 당장에 극복하기 위한 단기적이며 치열한 경쟁이다. 이 경우에는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구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주민자치를 통한 우회적, 협의적 활동을 할 여유가 없게 된다.

두 번째는 이기적 경쟁이다. 이는 일단 생존의 안위가 보장된 상황에서, 각종 사회적 이득과 가치획득을 위해 자신의 지분을 확실히 획득하기 위한 경쟁으로서 동서고금, 시대와 이념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몫은 추구하는 가장 보편적인 밥그릇 챙기기경쟁이다. 이런 상황을 제로섬-누가 이기면 다른 사람은 지는 게임-상황이라고 한다. 자원이 희소하고 유용하며 이득이 확실한 경우에 이기적 경쟁이 발생한다. 이를 주민자치에 적용하면 개인은 주민자치가 생성하는 가치가 별로 희소하지도 않고 이득과 매력이 크지도 않으며 자기 비용만 소모할 것으로 생각하기에 자치 경쟁 게임이 생겨나지 않는다.

세 번째 경쟁유형은 이타적 경쟁이다. 남의 이득이나 가치를 위해 자신의 이득과 가치를 포기하는 경쟁이다.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특징이기도 한 이타적 경쟁은 남을 위해 얼마나 자신을 희생하였는가?’의 경쟁이다. 이런 이타적 경쟁에 대한 보상은 주로 정신적 보상이다. 기독교의 경우 천국행 보상을 위해 재산의 기부, 타인에 대한 사랑, 포교 활동 경쟁이 나타나고 있고 불교의 경우 보시와 해탈, 극락과의 연결을 통한 이타적 경쟁을 유도하는 경우가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후원 같은 분야에서 이타적 경쟁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주민자치에서는 이타적 경쟁이 발생할 수 있을까? 이는 주민자치가 생성하는 공동체 가치 창출의 함의에 깊게 공감하고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자발적으로 헌신하고자 하는 선의와 각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것일 것이다. 분명히 우리 사회에는 이기적이고 불량한 사람들도 많지만 선의와 착한 마음으로 함께 잘사는 세상을 희구하고 이를 위해 후의를 베푸는 사람들도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선의의 경쟁은 사회발전의 선순환을 이룰 것이다. 지구상에는 이타적 노력과 상호희생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와 복지사회를 이룩한 성숙한 사회도 분명히 존재(예컨대 북유럽 사회 등)하는 바 선의의 이타적 경쟁을 통한 주민자치의 희망도 역시 존재한다고 본다.

네 번째는 동조화 즉 따라 하기 경쟁이다. 이는 이기적, 이타적 경쟁의 영역이 아니라 주변 사람 상당수의 행동을 따라 하려는 경쟁이다. 그렇기에 특별한 이득이나 가치를 추구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모방하고 거기서 안위감, 소속감, 존재감을 느끼기 위한 경쟁이다. 이는 주로 사회 각 영역의 슈퍼스타급 인물의 외관, 행동, 발언을 따라 하는 데서 그 사례를 잘 찾아볼 수 있다. 패션경쟁, 의식(ritual)경쟁, 게임경쟁, 응원경쟁, 옹호경쟁, 거부권경쟁 등이 그 사례이다. 특정 정치지도자의 심리 지배 및 공작정치 등에 의한 정치 소용돌이 만들기, 특정 종교 지도자의 가스라이팅과 종교의식 수행에 의한 신도들의 무한 충성 경쟁 등은 인간 곁에 항상 따라다니는 이상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주민자치 경쟁 유도하려면 어떻게?

여기서 우리는 이 네 가지 경쟁이 주민자치의 영역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국의 주민자치에는 본능적 경쟁, 이기적 경쟁, 이타적 경쟁, 동조적 경쟁이 발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첫째 주민자치의 부재가 주민의 본능적 욕구를 억압할 만한 위험을 초래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 둘째 주민자치의 가치가 주민들의 이기적 경쟁을 유발할 정도의 매력이 없다는 현실, 셋째 주민자치는 주민의 이타적 경쟁을 유발할 만한 가치가 못 되고 있다는 현실, 넷째 주민자치 활동에 동조하도록 할 수 있는 주민자치운동의 슈퍼스타가 없다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확실히 현재 한국 사회는 주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존적 위험이나 재난(지진, 쓰나미, 가뭄, 홍수, 전쟁, 기근, 치안 부재, 사회폭력) 발생 가능성이 급격히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이는 주민들의 위험 재난 대처를 위한 자구적 협동 활동-주민자치-경쟁 노력을 심각하게 떨어뜨리고 있다. 한편 정부-중앙정부/지방정부-의 적극적인 서비스 행정은 동네 환경개선, 동네 치안, 동네 복지, 주민민원 해소, 심지어 관 주도 주민자치 활동 지원 등에 능동적,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기에 주민자치 활동의 이득과 가치획득을 위한 주민 간 이기적 경쟁도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

주민자치의 영역에서 이타적 경쟁의 모범사례예컨대 서울 정릉동과 국민대학교의 주민자치 협력사례-가 선구적 지도자에 의해 기획 실행되고 있으나 이러한 혁신이 다른 곳으로 확산하기 위해서는 상록수형 지도자가 수없이 등장해야 하며 그런 지도자들이 사심 없이 장기적으로 동네에 헌신과 애정을 보여야 주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마지막으로 주민자치가 우리 사회의 혁신적 주제가 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은 주민자치 슈퍼스타의 탄생과 주도혹은 사회적 슈퍼스타의 주민자치 몰입과 홍보이다. 이는 교착상태에 있는 주민자치의 필요성과 가치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키고 주민들의 동조적 경쟁을 유발하기 위한 특단의 가설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적 스타를 설득하고 그 사람을 주민자치 전도사, 홍보대사로 위촉하여 주민자치의 참뜻과 필요성을 역설하게 하고 주민자치 사업 분야, 모범사례 만들기에 전념하도록 한다면 이는 나름대로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이 또한 상당히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한국주민자치중앙회/한국주민자치학회는 지난 십여 년간 주민자치제도 정착과 확산을 위한 주민자치운동을 전방위적으로 수행해 왔다. 한국 유일 아니 전 세계 유일의 주민자치운동 NGO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정신으로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활용한 주민자치 경쟁을 유도해 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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