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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향약, 조선의 지방통치에 악용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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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향약, 조선의 지방통치에 악용된 것
  • 문효근 기자
  • 승인 2022.02.17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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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한국지방자치학회 동계학술대회 주민자치 기획세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향약 지원과 활용 고찰'

한국지방자치학회 동계학술대회 주민자치 기획세션 첫 번째 시간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향약 지원과 활용 고찰'을 주제로 정창원 제주대 사학과 교수가 좌장을, 박경하 중앙대 역사학과 명예교수(한국자치학회 부설 향촌사회연구소장)가 발제를 맡아 진행되었다. 토론자로는 이대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한미라 중앙대 다빈치교양대학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번넌스연구소 교수가 참석했다.

 

1930년대, 일제의 향약 이용한 통제 정책 구체화돼

박경하 중앙대 역사학과 명예교수는 발제문에서 우리 역사에서 향약 연구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인 관학자와 식민지 관리를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일인학자와 식민지 관료들의 향약 연구시각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향약의 체제나 내용을 일본의 오인조제도나 영국의 치안판사제도 등 다른 나라의 유사제도와 비교한 시각이다. 두 번째는 향약이 조선의 사회교화에 영향력이 크다는 관점이고, 세 번째는 향약을 지방자치의 성격으로 파악했다는 점인데, 이러한 시각은 1930년대 향약을 이용한 일제의 지방통제 정책으로 구체화 되었다고 서두를 열었다.

박 교수는 이에 따라 1980년대 학계의 향약 연구 주요 관점은 생활사적 측면에서 조선후기 향약의 성격을 구분하는 것과 향촌사회 조직과 제새력의 추이를 통해 중세적 질서가 해체되어 가는 과정을 파악하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이런 가운데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및 관학자들의 향약연구는 원활한 식민통치를 위해 전통시대 향촌 제조직 조사 및 연구가 대다수였다. 1906년 토지조사사업 구관사업조사, 사회실태 현황 조사 등이 이를 증명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구관사업조사는 통감부 시대, 조선총독부 시대, 중추원 시대 등을 거치며 꾸준히 이어져 왔고 1910년에는 <관습조사보고서>가 발행되어 촌락 제도의 내용을 상세히 기술했다. 그러다 중추원 시대인 1915년부터 1937년까지는 기존까지 시행되던 사법적 관습 또는 식민통치에 필요한 자료 조사에서 탈피해 풍속적 관습을 비롯해 구래의 제도로까지 조사 범위를 확대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조선총독부 관료들과 관학자들의 향약 연구는 어떤 방향성을 보였을까?

박경하 교수에 따르면 일제는 전통적인 향약의 자치 기능을 강조하고 지방자치제와 연관시켜 홍보했는데, 이는 조선인들의 불만을 축소시키고자 하는데 궁극적 목적이 있었다. 향약의 자치적인 기능을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향약 시행에서 전통적인 향약의 자치기능을 약화시키고, 향약을 관제화하려는 이중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이어 조선총독부는 향약 장려 보조금 지원을 통해서도 향약을 관제화시키려 했는데, 이는 갑을병으로 향약을 나눠 그중 갑인 왕고(往古)의 향약을 그대로 실현하고 있거나 명칭에 상관없이 향약 정신에 입각한 시설이 2,229개에 달했다라고 전하며 일제는 산업도 장려했는데 하검리 향약의 경우 농사의 개량, 양잠의 장려, 부업의 장려, 퇴비의 증산 등의 결과로 이어졌다. 일제의 이러한 향약 장려 및 지원금 지원은 1932년 세계 공황기에 산업장려 및 농촌진흥을 통한 사상통제 목적을 가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경하 교수에 의하면 향약정신관련 단체에 대한 일제의 관심은 1937년 중일전쟁을 전후로 급격히 증대되었다. 이는 향약정신관련 단체를 전쟁에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전 일제에 유리하게 편제하기 위한 관심으로 판단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제는 농촌진흥실행조합, 근농공제조합, 청년단, 부인회 등의 향약정신관련 단체를 촌락까지 이식시키고 이 단체들에 대한 통제를 위한 정책을 시행하였다.

박 교수는 일제는 이렇듯 향약정신보급 상황조사를 기반으로 향약 관련 단체에 국고 보조금을 지급하려고 하였으며, 따라서 향약정신보급 상황 조사 때 향후 필요한 사업과 예산에 대한 조사가 함께 이루어졌다고 말하며 정리하면 1937년도 보조금 지급은 1933년의 향약 장려 보조금 지급 대상보다 확대되었으며, 대체적으로 촌락을 중심으로 조직된 단체에 보조금이 지급되었다. 이러한 향약은 전시 수탈도구로서 활용 이용되었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박경하 교수는 향약은 조선시대부터 전통적으로 향촌사회에서 운영되었으며, 향약족의 향촌민 통제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지만 상호부조 같은 공공적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로 오면서 향약의 공공적 성격은 약화되었고 사회교화, 농촌민의 일상통제, 국가에 대한 충성 등의 성격으로 변용되었다. 이를 통해 일제가 조선의 지방통치에 향약을 악용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전하며 발제를 마쳤다.

 

조선총독부 식민지 정책에 향약이 전방위적으로 악용

본격적인 토론이 이어졌다.

이대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일제가 향약에 본격적으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총독부 중추원이 구관제도조사사업에 착수한 1915년 이후였다는 점, 1920년대부터 관변학자들이 보다 구체적으로 관심을 가졌으며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농촌진흥운동과 관련지어 향약에 관한 상세한 실태조사와 선별 지원이 이루어졌다는 점 등을 발제문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라며 그 가운데 보조금 지원을 위해 실시했던 1932년의 향약실태 조사는 사실 현재까지 연구자들이 자세히 주목하지 않았던 자료로서, 세밀한 분석과 토의가 추가적으로 필요한 내용이라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이 교수는 덧붙여 “21세기 이후 근대사 연구의 성과를 반영해 보다 세밀한 분석을 병행한다면, 일제강점기 향약의 변화상에 내재된 의도와 결과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따라서 첫째, 조선총독부 관료제에 내재되어 있었던 분파주의와 관료주의적 성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둘째, 조선총독부 지배정책이 향약과 같은 개별적인 사안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총독부의 지배정책과 함께 일본 본토 정부의 상황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한미라 중앙대학교 다빈치교양대학 교수는 발제문에서 1933년의 향약 장려 보조금 지원과 관련해 신청 단체와 보조금을 받은 단체가 적지 않기 때문에 각 도의 단체 중에서 특징적인 단체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전제하며 그런데 1933년 향약 장려 보조금 지원 사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조금이 지원된 단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사례가 제시되면 좋을 것 같다. 향약 장려 보조금 지원 전에 시행되었던 전국 향약 조사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파악할 수 있어 1937년 조사의 특징에 대해 보다 자세한 설명이 따랐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한 교수는 또 발표문에서는 향약정신을 기반으로 한 단체를 일제가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대해서는 간략하게만 제시된 것 같은데, 이에 대한 보충 설명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박경하 교수는 이에 대해 33천 개의 향약정신 관련 단체가 일제에 의해 악용되었다. 읍면동 단위에 모두 포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총독부의 식민지정책에 악용된 것이다. 향약정신 관련 단체에 150만 명 정도의 인원이 속해 있었으니 통치 수단으로서의 여파는 충분하다고 본다. 일제의 지방통제 쟁책 성과 역시 상당했던 것으로 보여진다라고 답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3·1운동 이후 일제는 조선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잠재우기 위한 방안으로 지방자치제 실시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1920년과 1930년에 지방제도 개정에서 지방자치제 실시는 허울에 불과하였다따라서 일제는 전통적인 향약의 자치기능을 강조하고 이를 지방자치제와 연관시켜 홍보함으로써 조선인들의 불만을 축소시키고자 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채 교수는 또한 일제는 향약의 자치적인 기능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향약 시행에서는 전통적인 향약의 자치기능을 약화시키고 향약을 관제화하려는 이중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라며 이를 통해 일제가 향약과 지방자치제를 연관하여 선전한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국가보조금 지급에 의한 통제방식은 베네수엘라 차베스식 주민자치운동에 이어 우리나라 박정희의 새마을 운동, 박원순의 서울형 주민자치사업에서도 유사한 패턴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라며 국가와 관의 통제와 보조금 지급에 따른 관제화, 관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오늘날 한국의 주민자치회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질문 드린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경하 교수는 역사적 자료를 통해 밝히기는 어렵지만 개인적 견해를 묻는다면 정답은 관에서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자발적 구성과 자율적 운영, 그리고 무엇보다 재정적 독립이 있어야 주민자치가 제대로 돌아 갈수 있다. 정부나 지자체에 재정을 의지한다면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향약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지역의 공유재산을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답했다.

끝으로 좌장을 맡은 정창원 교수는 향후에도 향약과 관련한 논의를 계속해 숙의되는 담론이 한국적 현실의 지방자치, 주민자치에 어떻게 적용되고 실현되어야 하는지 이끌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주민자치중앙회의 주민자치 기획세션이 지향해야 할 방향성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정리하며 세션을 마쳤다.

 

사진 = 이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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