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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회가 향약・촌계의 ‘환난상휼-자치성’ 계승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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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회가 향약・촌계의 ‘환난상휼-자치성’ 계승해야
  • 여수령 기자
  • 승인 2022.02.18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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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한국지방자치학회 동계학술대회 한국주민자치중앙회 기획세션 3세션
2022 한국지방자치학회 동계학술대회 한국주민자치중앙호 기획세션 세 번째 세션이 2월 18일 충주 수안보 상록호텔에서 열렸다.
2022 한국지방자치학회 동계학술대회 한국주민자치중앙회 기획세션 세 번째 세션이 2월 18일 충주 수안보 상록호텔에서 열렸다.

우리나라 주민자치 전통의 맹아로 평가받는 향약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주는 시사점을 살피는 시간이 마련됐다. 2022 한국지방자치학회 동계학술대회 한국주민자치중앙회 기획세션 세 번째 시간에는 한종수 향촌사회연구소 상임연구위원이 ‘한말・일제강점기 충청지역 향약・동계・계의 분포와 그 성격’을 발표했다. 

한 연구위원은 먼저 용어의 정확한 정의부터 살폈다. 발표에 따르면 향약은 조선시대 향촌의 자치규약으로 시행주체, 시행대상, 시행단위별로 그 성격을 달리한다. ‘향규’는 향임(鄕任)들간의 규약으로 그 내용은 유향소 운영관계나 향안입록자격에 관한 규정이며 16세기에 전성기를 이뤘다. ‘동계’는 왜란 후 나타난 현상으로 촌민의 지배를 위해 사족이 운영한 것으로 지역주민 모두가 의무적으로 참여했다. ‘주현형약’은 수령이 앞장서 운영하던 것으로 지역사회 상하 주민을 의무적으로 참여시켰으며, ‘촌계’는 상민마을에서 주민상호간의 협동을 위한 자치조직이었다. 

한종수 향촌사회연구소 상임연구위원.
한종수 향촌사회연구소 상임연구위원.

위정척사 성격 띤 ‘제천향약’과 ‘하곡향약’ 

한 연구위원은 이번 발표에서 한말 충청지역의 대표적인 향약 및 동약의 운영사례와 일제강점기 동계, 호포계, 혼인부조계, 상장부조계, 학계, 송계, 종계를 비롯한 다양한 목적계의 운영 특징을 살폈다. 

청주 화양동의 ‘화양동향약’은 우암 송시열의 11세 적손인 건암 송재경이 당시의 폐속과 인심일의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입정하고 한문과 국문으로 간포한 것이다. ‘화양동향약’은 서문이라 할 입의와 향약절목, 입약범례, 벌목, 회집독약법의 6부로 구성되며 말미에 발문이 덧붙여져 있다. 이 중 향약시행상 특이점이나 지역적 변용, 시대변모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61조에 달하는 ‘입약범례’다. 한 연구위원은 “‘화양동향약’이 지니는 가장 특징적이며 향약의 변용, 변모 모습은 일관성 있는 향약의 운영과 그 효과선양을 위해 따로 행문격식을 정해 놓은 점이다. 또 약중의 제반 사무를 위해 반드시 규정된 문식을 사용할 것을 못 박고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제천향약계입의’는 1904년 입정돼 제천 관내 8개 면에서 일률적으로 시행된 것으로, 당시 제헌 인근의 척사적 유림이 대거 참여한 향약자료다. 한 연구위원은 “제천향약은 갑진년(1904년) 봄, 동학의 잔당이 일진회란 단체를 조직해 친일행각을 벌이자 이에 대항할 방안으로 시행됐다. 내용은 대체로 ‘율곡향약’에 따라 저술했다. 특히 제천향약에 가담한 임원 142명 중 의병(장)이 26명에 달할 정도로, 제천향약은 위정척사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곡동약’은 강한 위정척사와 존화양이사상을 견지한 명와 이기진에 의해 1905년 무렵 입정 시행된 자료다. 주목할 점은 시행 효과를 높이기 위해 철저한 오가작통(五家作統)을 구성한 점이다. 한 연구위원은 “동약이 오가작통과 결합되어 시행된 예를 흔치 않다. 제천향약과 함께 하곡향약 역시 위정척사적 성격을 띠고, 전래의 오가작통과 동약을 결합해 외세의 침입을 막고자 한데 그 특징이 있다”고 분석했다. 

발표자로 나선 박경하 중앙대 역사학과 명예교수(향촌사회연구소장)
발표자로 나선 박경하 중앙대 역사학과 명예교수(향촌사회연구소장)

동계・목적계로 촌락사회 자치적 기풍 형성

다음으로는 『조선농회보』 7권 7호에 실린 ‘충청북도 계에 관한 조사-1912’ 보고서 바탕으로 동계와 호포계, 혼인부조계, 상장부조계, 학계, 송계, 종계, 성황계, 우포계, 보계, 농구계 등 일제강점기 충청지역 동계와 목적계의 성격을 살폈다. 한 연구위원은 “농민은 봉건적 수탈에 자율적으로 대응하고 생활상의 현실적 필요에 따라 계를 조직해 운영함으로써 공동으로 경제적 곤란을 타개하려는 자활적 노력을 했다”며 “나아가 계를 촌락 내 유력한 자치조직으로까지 활동 영역을 확대함으로써 촌락사회 내부에서 자치적 기풍을 형성해 나갔다”고 평가했다. 

한 연구위원은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화양동향약’에서는 한말 무너져가는 미풍양속을 향약의 시행을 통해 되살리려는 노력을, ‘제천향약’과 ‘하곡향약’에서는 외세의 침탈 속에서 위정척사적 성격을 살필 수 있었다”며 “또 재지사족이 향촌지배를 목적으로 시행한 향약, 동계가 아닌 하민간의 수평적 상호부조 성격의 각종 계가 조직되어 자치적으로 운영된 점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통감부 시기부터 시작된 일제의 농촌 침투와 상품화폐경제로 계조직은 변화를 겪게 된다. 전통적 농촌계의 쇠퇴와 소멸, 존속 유지된 계의 재편성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한 연구위원은 “일제는 면(面)을 조선 농민 통치의 기본 단위로 편성하고 그 기능을 강화하면서 계조직의 경제 기반인 동유재산을 박탈하는 한편, 공유사업 수행 기능을 면으로 흡수했다. 이로써 촌락의 자치적 성격이 급속히 소멸되고 동계, 송계 등 촌락자치제로서의 계조직도 함께 쇠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1920년대 후반에 이르자 계금융은 민족적 자구책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식민지적 수탈의 요인이 되었으며 계금융에 의존도가 컸던 촌락 역시 붕괴됐다”고 덧붙였다. 

일제강점기 자료에 대한 사료 비판 필요

전영평 대구대 명예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에서 박경하 중앙대 역사학과 명예교수는 발제자의 분석에 동의하면서 몇 가지 보완점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율곡이 제시한 4가지 향약은 시행 시기, 목적, 주체, 대상이 다 다른 성격의 것이다. 향약은 사족집단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층민에 대한 신분적 지배질서를 확립하는 기구로서 기능했다. 곧 신분제적 지배질서와 지주제의 유지가 향약의 본질”이라며 “그러므로 화양동향약이 율곡의 향약을 모방했다는 상황은 부인할 수 없으나, 과연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 제정된 것인지 대한 사료 비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음으로 일제시기 향약 분포를 일본인 학자의 1912년 조사 보고서만을 통해 살핀 점을 짚었다. 박 교수는 “당시의 조사는 조사자의 현지답사가 아니고 충청지역 주재소에 조사를 의뢰하거나 교사들에게 위임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으므로 통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실제 보고서에서는 보은군에 어떠한 향약도 없었다고 나오지만, 1937년 조선총독부의 ‘전국 향약정신보급 상황’ 조사 보고서에는 충청북도에서만 1287개 단체가 있다는 통계가 있다”고 제시했다. 

끝으로 “일제가 면을 조선 농민 통치의 기본 단위로 편성하면서 동유재산을 박탈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최근 답사한 남원 기지면 입암마을은 1795년 동계가 조성된 이래 일제강점기를 거치기까지 동의 공유재산을 그대로 유지했고, 해방 후 농지개혁에서 토지를 소작한 계원들에게 유상분배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제가 동유재산을 박탈했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짚었다. 

이종석 국립체육박물관 학예사.
이종석 국립체육박물관 학예사.

이종석 국립체육박물관 학예사는 “충청지역 향약을 시행 목적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당대 촌락사회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면서 “다만 다양한 사료가 활용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이 학예사는 “1912년 보고서는 일제강점기의 지극히 초반에 해당하는 시기이고, 이후 조선총독부의 보고서나 다른 활용 사료가 없지 않음에도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며 “1920~30년대 사료와 그에 대한 분석이 추가될 때 일제강점기 전체를 관통하는 촌락공동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세금과 관련한 호포계의 성격 규정에 관해 질의했다. 이 연구원은 “호포계는 1795년 창립 당시 부과 대상이 20세기와는 다른데 100년 넘는 연속성을 지닌 계로 볼 수 있느냐”며 “계의 명칭은 그대로이지만 호세의 성격이 크게 변화됐기에 호포계의 성격 및 규약이 일제강점기에 어떻게 변화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끝으로 이 학예사는 “일제강점기 이후 독립운동가를 후원하는 계나 활쏘기 운동장 비용 충당을 위한 계 등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주민들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다양한 계가 만들어졌다. 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다면 현재 주민자치회 운영에 적용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향약・촌계의 ‘환난상휼-자율적 운영’ 계승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먼저 “발표자는 조선후기와 조선총독부 시절 일제의 수탈에 맞서 농민들의 각종 계가 대응했다고 설명하는데, 이 시기 아래로부터의 다양한 목적계가 생겨난 배경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어 “발표자는 일제가 촌락공유재산의 자치적 운영을 빼앗고 관주도로 바뀌면서 관제화로 인해 주민자치가 쇠퇴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것이 오늘날 국가가 행정과 보조금 지금을 빌미로 혹은 시민단체를 앞세워 추진하고 있는 ‘마을공동체’과 어떻게 비견할 수 있고 오늘날 주민자치회 발전에 주는 시사점을 무엇이냐”고 질의했다. 

이에 대해 박경하 교수는 “조선시대의 동계는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신분제가 철폐되면서 동계의 강제성이 사라지자 경제적 목적에 따라 다양한 계가 생겨나게 됐다. 당시 국가 지원이나 금융조합 같은 것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주민들이 생계를 위해 스스로 공동체를 만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향약이 오늘날 주민자치회에 주는 시사점이라면, 환난상휼 정신과 자율적 운영방식을 꼽을 수 있다. 환난상휼은 생활공동체 조직에서 반드시 필요한 정신인 만큼 개인주의가 심화된 현대사회에서 주민자치회가 이런 정신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촌계는 주민들이 스스로 회비를 걷고 임원을 선출하고 자율적으로 운영했다. 그런데 현재의 주민자치회는 촌계 수준으로도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전상직 한국주민자치중앙회 대표회장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동계가 쇠퇴하는 과정에서 이질적인 계가 만들어져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 현실도 마찬가지다 1999년 주민자치위원회가 도입된 이래 공무원은 주민자치가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는데만 신경을 썼다. 20년이 지나고 보니 서울시는 시민단체를 투입해 주민자치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 오늘 발표와 토론을 통해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혜를 찾아내고자 하는 뜻을 읽을 수 있었다”고 총평하며 세션을 마쳤다. 

사진=이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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