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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주민자치위, 포퓰리즘인가 참여민주주의 모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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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주민자치위, 포퓰리즘인가 참여민주주의 모델인가?
  • 여수령 기자
  • 승인 2022.01.18 1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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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ㆍ재정 바탕으로 확산…정치적 부침에 비자발성ㆍ비효율 비판도
한국자치학회는 1월 18일 '베네수엘라 주민자치위원회의 형성과 발전'을 주제로 제2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를 개최했다.
한국자치학회는 1월 18일 '베네수엘라 주민자치위원회의 형성과 발전'을 주제로 제2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를 개최했다.

좌파 정권의 포퓰리즘 정책에 불과한가, 참여민주주의의 획기적 모델인가? 

베네수엘라 주민자치운동의 역사와 공과를 짚어보고 우리나라 주민자치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자치학회는 지난해 12월 ‘차베스 주민자치 운동노선의 빛과 그림자’를 주제로 제1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를 개최한데 이어, 1월 18일 서울 종로구 태화빌딩 그레이트하모니홀에서 제2회 세미나를 열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의 사회로 허석열 충북대 명예교수가 ‘베네수엘라 주민자치위원회의 형성과 발전’을 발표했다. 

허 교수는 “주민자치위원회는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거대한 정치적ㆍ사회적 실험 중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직접민주주의 실험”이라며 “헌법상 기구인 지역공공계획평위원회(CLPP)가 사실상 실패한 반면, 주민자치위원회는 현재까지 베네수엘라 정치문화를 바꾸는 핵심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풀뿌리 자발적 공동체’인 주민자치위원회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1998년 대통령에 당선된 우고 차베스는 당초 지역공공계획평위원회(CLPP)를 참여민주주의의 핵심적 주체로 삼았다. 새로 헌법과 법률을 제정해 기초자치단체마다 CLPP를 구성토록 하고 ▲지역사회 프로젝트 제안서 평가 ▲지자체 발전계획 수립 ▲지자체 투지예산 심의 ▲지자체와 정부의 조정업무 등의 역할을 부여했다. 

허석열 전 충북대 교수.
'베네수엘라 주민자치위원회의 형성과 발전'을 발표한 허석열 충북대 명예교수.

"입법 재정 뒷받침참여민주주의 중요 실험"

하지만 실제 시행과정에 여러 문제점이 나타났다. CLPP가 지나치게 넓은 지역을 포괄해 주민의 참여를 배제하는 결과를 낳거나, 재정자원이 인구비례에 따라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았으며, 특히 시장이나 주지사가 CLPP를 무력화 하려는 시도가 일어난 것이다. 허 교수는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법 개정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CLPP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였던 주민자치위원회가 각광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주민자치위원회는 주민들이 직접 근린지역 개발 프로젝트를 수립해 중앙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 받는다. 이로 인해 도시와 농촌, 원주민 구역에서 수만 개의 주민자치위원회가 구성됐고 이는 협동조합과 함께 새로운 참여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준 중요한 실험으로 평가 받는다”고 말했다.

주민자치위원회는 2005년 초 정부부처인 ‘민중참여와 사회개발부’의 제안으로 7개 지역에 3700개가 조직된 후 1년만인 2006년에는 335개 지자체, 16000개로 확대됐다. 주민자치위원회 실험이 단기간 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로 허 교수는 ‘입법’을 꼽았다. 허 교수는 “주민자치위원회의 결정은 법적 구속력이 있기 때문에 시장은 위원회의 결정을 따를 의무가 있다. 도시지역에서 이들은 200~400가구를 단위로 조직되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결정을 할 수 있고, 이웃들로 구성되어 직접민주주의 이상에 부합되는 참여를 이끌어내기가 훨씬 쉽다”고 진단했다. 

두 번째는 ‘재정’이다. 2006년에 새로운 ‘주민자치위원회법’이 통과되자 이 해에 약 15억 달러 정도의 자금이 주민자치위원회가 기획ㆍ실행하는 프로젝트에 지원됐다. 중앙정부 지원금뿐만 아니라 지자체 지원금, 각종 헌금, 주민자치위원회의 자체적인 기금 마련 등을 통해 조성된 기금이다. 허 교수는 “차베스 정부는 이듬해인 2007년 주민자치위원회 기금을 20억 달러로 증액했는데 이는 국가재정의 틀을 바꿀 만큼의 대규모 지원이었다”면서 “주민자치위원회는 재정을 주민의 욕구에 맞게 조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한 커졌지만 '비민주적ㆍ비효율적' 지적도

주민자치위원회의 권한과 영향력이 커질수록 비판도 거세졌다. 위원회 조직 및 재정 운영이 비민주적ㆍ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다. 허 교수는 “주민자치위원회는 효율성 측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위원회 규칙은 누가 제정할지, 제정된 규칙은 어떻게 변경할지, 펀드 사용의 투명성은 어떻게 확보할지 등의 질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다양한 문제에 직면한 주민자치위원회운동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 내용을 채워가고 있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는 2013년 차베스 대통령 사망과 2015년 우익 야당의 총선 승리, 국제유가 하락과 미국의 정치개입,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등 적잖은 정치적ㆍ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허 교수는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주민자치위원회는 500만 호 아파트형 주거 건설, 코로나19 방역 등에 앞장서며 공동체의 방어막 역할을 하고 있다”며 “최근의 정치발전 과정에서 주민자치위우너회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결점을 극복하고 참여민주주의적 방법으로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한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현지에서 직접 관찰한 바로는 주민자치위원회가 많은 역동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주인공 민주주의’에 걸맞은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는 미흡한 듯 보였다”며 “위원이 거의 단독 출마에 의해 경쟁자 없이 선출되는 예에서 보듯, 주민자치위원회가 자원 배분을 통해 일단 주민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직 공동체 일에 대한 논쟁적 참여문화가 확립되지 않고 있다”고 아쉬움을 밝혔다.

허 교수는 “공동체 평의회 실험은 베네수엘라가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협동조합 운동과 더불어 차베스와 그 후계자인 마두로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21세기 사회주의의 한 축으로 성장하고 있다. 공동체 평의회에서부터 조직된 민주적 정치구조는 참된 민주주의의 중요한 조건이 될 것”이라는 전망으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사회를 맡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사회를 맡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국가 의존 한계자발적 시민조직 회의"

이어 질의응답이 진행됐다. 토론자로 참석한 전영기 시사저널 편집인은 “저는 조금 비판적 입장에서 바라봤다. 끊임없이 국가에 의존해야 하는 베네수엘라 주민자치위원회가 과연 자발적 시민조직인가? 국가 예산을 받기 위해 움직이는 조직일 뿐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최근 기사를 보면 마두로 정권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베네수엘라는 빈국으로 전락했고, 그 틈을 타 범죄 조직이 ‘자치 정부’ 노릇을 하는 마피아 세상이 형성되고 있다. 차베스 정권 이후 이들은 ‘시민을 대표하는 권력’을 자칭하지만 사실상 시민은 정치에 동원되는 수단이 아닌가”라고 질의했다. 

이에 대해 허석열 교수는 “지적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베네수엘라는 1980년대 이미 극심한 빈곤상태였고 차베스 집권 이후 추진한 개혁이 일부 성과를 낸 것은 사실이라고 본다. 다만 최근 경제적 어려움이 큰데도 국민들이 여전히 집권세력을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전에는 아예 정치에서 소외됐던 국민들이 주민자치위원회 등의 활동을 통해 자신이 베네수엘라의 주인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혁명의 성과를 부정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전은경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교수는 “주민자치위원회로는 지역 생활개선 프로그램은 가능할지 모르나 더 높은 차원의 사회개혁으로는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베네수엘라의 상황은 어떠한가”를 물었다. 허 교수는 “주민자치위원회는 도시의 경우 100~200가구 정도의 소규모 조직이라 한계가 있다. 때문에 더 큰 지역단위 개발계획 수립을 위해 여러 개의 위원회가 결합된 ‘코무나스’를 중심으로 활동이 전환되고 있다. 최근의 경제적 위기와 코로나19 상황을 돌파해나가는 희망을 코무나스에서 찾고 있다”고 전했다. 

"방향엔 공감…현실 적용 위해선 더 치밀한 설계 필요"

세미나를 기획한 전상직 한국주민자치중앙회 대표회장은 “오늘 발표와 토론으로 국가의 정치ㆍ경제적 위기 속에서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어떻게 극복 방안을 모색했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절박한 상황에서 그들이 찾은 해결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이를 우리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고 본다. 한국에서 주민들이 서로 소통하고 자발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정밀하고 치밀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총평을 밝혔다. 

한편, 한국자치학회는 오는 1월 25일에는 제3회 ‘차베스 포퓰리스트 레짐의 작동 구조와 차베스 공동체주의(김영섭 웹이코노미 대표이사)’, 28일에는 제4회 ‘차베스의 주민자치운동과 박정희의 새마을운동 비교(김충남 박사)’ 세미나를 진행한다. 세미나는 한국주민자치중앙회 유튜브로 생중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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