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6:55 (금)
“차베스 실험은 실패…포퓰리즘・독재는 대안 될 수 없다”
상태바
“차베스 실험은 실패…포퓰리즘・독재는 대안 될 수 없다”
  • 여수령 기자
  • 승인 2022.01.27 20: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베네수엘라 주민자치’ 연구세미나 성료 “반면교사 삼아 한국형 모델 개발”
한국주민자치학회가 베네수엘라 주민자치운동을 주제로 개최한 4차례의 연구세미나가 1월 27일 성료했다.
한국주민자치학회가 베네수엘라 주민자치운동을 주제로 개최한 4차례의 연구세미나가 1월 27일 성료했다.

“차베스의 사회주의 실험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베네수엘라 주민자치 조직은 민중에 의한 자발적 조직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 조직되고 운영된 관변단체에 불과했다. 무분별한 포퓰리즘과 독재를 기반으로 한 ‘차베스 사회주의’는 결코 한국의 대안 모델이 될 수 없다.”

한때 국내에서 ‘차베스 붐’이 일었을 정도로 관심을 끌었던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 실험에 대한 날선 비판이 제기됐다. 한국자치학회가 1월 27일 서울 종로구 태화빌딩 그레이트하모니홀에서 개최한 제4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에서 김충남 박사(한국군사문제연구원 연구위원)는 ‘차베스 사회주의 실험의 참담한 실패: 한국에 주는 교훈’ 발표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김 박사는 “노무현 정부 당시 국내에 ‘차베스 붐’이 일어났고, 노무현 정부를 계승하겠다고 선언한 문재인 정부 역시 급진적 체제개혁과 광범위한 복지정책을 펼쳐 ‘베네수엘라 실패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며 “차베스의 사회주의 실험이 참담한 실패로 끝났음에도 이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차베스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면서까지 총체적인 사회주의 체제 전환을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지방자치는 사회개혁의 하부 실천수단으로 활용됐다. 따라서 한국이 지방자치에 초점을 맞춰 베네수엘라와 비슷한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은 심각한 오류”라고 단언했다. 

“차베스 사상은 반미민족주의-사회주의-포퓰리즘 혼합”

'차베스 사회주의 실험의 참담한 실패: 한국에 주는 교훈'을 발표한 김충남 박사.
'차베스 사회주의 실험의 참담한 실패: 한국에 주는 교훈'을 발표한 김충남 박사.

김 박사는 먼저 차베스의 사회주의 실험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전개됐는지 역사적 배경을 살폈다. 발표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과 세계 4위 가스 매장량을 가진 자원 부국으로,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중남미 모범국가로 손꼽혔다. 하지만 석유 의존도가 높은 베네수엘라 경제는 유가 폭락으로 국가부도 위기에 처했고, IMF 구제금융을 거치며 긴축재정으로 복지는 축소되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처럼 혼란한 상황에서 ‘민중에게 권력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한 우고 차베스가 1998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집권 후 개헌의회를 구성해 기존 헌법을 폐기하고 국가체제를 사회주의 체제로 바꾸는 헌법을 제정했다. 또 제헌의회를 통해 사법부와 입법부를 사실상 장악했다. 또 중앙정부 권력을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에 선거부와 시민부를 추가해 5권(權)으로 재편했으며 ‘수권법’을 가결해 1년 동안 49개의 대통령령을 발동했다. 

김 박사는 “차베스의 사상은 반미(反美) 민족주의, 사회주의, 포퓰리즘의 혼합이다. 그는 대내적으로 자본가들로부터 민중을 해방시키고, 대외적으로는 미국 등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을 목표로 내세우고 자신의 노선을 ‘21세기 사회주의’라 칭했다. 이를 위해 친노동・반기업적 사회주의 경제 정책을 시행했는데, 주요 기간사업을 국유화하는 한편 민간 기업도 협동조합 형태의 ‘사회적 기업’으로 만들었다. 국유화한 기업은 이득을 남길 동기가 없기에 부실기업으로 전락했고 산업 기반은 급속도로 무너졌다. 차베스 집권 후 7년 간 베네수엘라 산업체의 40%가 도산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또 차베스 정부는 석유 수익의 대부분을 복지정책과 정권유지에 쏟아 부으면서도 유전개발과 연구・투자는 외면해 석유 생산량이 2002년부터 2013년 사이에 30% 가까이 감소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김 박사는 “차베스 노선의 핵심은 포괄적 복지정책”이라며 “석유 수출에서 나온 막대한 자금을 최저임금 인상, 무상교육, 무상의료, 식료품 보조, 각종 연금제도 도입 등에 쏟아 부었다. 이 같은 과도한 복지지출로 국가부채는 2008년부터 급증해 2012년에는 2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그러나 교육, 일자리, 주거시설, 생활환경 등이 질적인 면에서 근본적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구조적 빈곤과 불평등이 여전했다”고 말했다. 

“체제 전환 위해 지방자치를 개혁 실천수단으로 활용”

이 같은 현실 속에서 지역공동체운동이 차베스의 사회주의 혁명 동원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이 김 박사의 진단이다. 김 박사는 “차베스는 민중과 소통한다는 명분으로 직접민주주의 방식으로 통치하기 시작했다. 사회주의혁명의 민중기반을 구축할 목적으로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어 마을평의회와 지역평의회라는 전국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그러나 마을평의회와 지역평의회는 민중에 의한 자발적 조직이 아니라 정부 주도 하에 전국적으로 동시에 설립된 조직으로, 지역의 자치나 발전보다는 정권의 지지기반을 구축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때문에 베네수엘라의 지역공동체운동은 엘 마이잘 등 소수 농촌 지역평의회를 제외하고 대부분 실패했다”고 말했다.

지역공동체운동의 실패 원인으로는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운동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 조직・운영되면서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관변조직화 된 점 ▲도시화가 90%에 달한 나라에서 도시빈민 중심의 활동이 성공하기 어려웠던 점을 꼽았다. 김 박사는 “지역공동체가 정부 지원을 두고 충성경쟁을 벌이게 되고 이는 지역공동체 상호간 그리고 지역공동체와 지역정부 간 갈등으로 확대됐다. 정부와 의회가 수행해야 할 결정권을 특정 세력이 ‘혁명’과 ‘민중’의 이름으로 통제하면서 오히려 민주주의 자체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 도시화가 이뤄진 상황에서는 도시빈민 중심의 마을평의회와 지역평의회의 활동이 성공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차베스의 잘못된 경제정책으로 산업기반이 와해되면서 2010년부터 감당 못할 물가폭등과 생필품 부족에 직면했다. 차베스 사후 마두로가 권력을 이어받았지만 무분별한 화폐 발행과 유가 폭락, 석유생산 급감 등으로 국민의 94%가 기본 식료품을 구입할 소득도 벌지 못하는 빈곤층으로 전락했다”며 “무분별한 포퓰리즘과 사회주의 독재로 몰락한 최악의 사례”라고 진단했다. 

이어 “포퓰리즘에 동조한 국민들도 문제였다. 대다수 국민들이 경제위기가 닥친 순간에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라고 확신하며 경제개혁 대신 ‘구원자’의 출현만 기다렸다. 그들은 가난에서 해방시켜주겠다는 차베스를 무조건 지지했는데, 무능한 통치자의 허황된 꿈을 결국 나라를 망치고 국민을 지옥으로 몰아넣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차베스 사회주의는 한국의 대안 모델이 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지방자치 발전한 한국에 베네수엘라 주민자치 도입 의문”

문재인 정권과 차베스 정권의 유사점도 짚었다. 김 박사는 “차베스가 구체제를 해체하려 했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주류교체를 표방하며 무리한 적폐청산을 해왔다. 또 각종 위원회 설립, 국민청원제 도입, 주민자치회 설치 등 직접민주주의를 적극 도입하려 했다. 이와 함께 친노동・반기업적 경제정책, 전면적인 복지확대에서도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주민자치회 시범운영이 800여 곳으로 대폭 확대된데 대해 “지방자치가 뿌리내린 한국에서 베네수엘라 방식의 주민자치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주민자치회를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읍면동에 지원자치관을, 지방자치단체에 공동체지원국을 두고 있는데 이들 상당수가 친여 시민단체 출신들이 맡고 있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차베스의 사회주의 개혁을 한국에 도입하고자 했던 것은 단견이 아닐 수 없다. 베네수엘라는 유가 회복과 석유산업 투자 확대를 통해 회복될 가능성이 있지만, 무역국가인 한국은 국가경쟁력이 추락하면 회복이 쉽지 않다”며 베네수엘라 개혁 모델 도입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획일적 모델 아닌 지역실정에 맞는 주민자치 개발해야”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김봉수 신촌동 주민자치위원장은 “서울의 경우 주민자치회가 주치자치사업단 같은 시민단체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지원을 명분으로 만들어진 이 같은 중간 단체의 역할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가”를 물었다. 김 박사는 “주민자치에 왜 시민단체가 필요한가. 순수한 시민단체도 있지만 예산과 조직을 이용하려는 곳도 분명히 존재한다. 주민자치가 정치에 얽매이지 않도록 국민들이 이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바꿔나가야 해결될 문제”라고 답했다.

권행완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는 “새마을운동에서 주민자치운동의 정책적 대안을 찾을 수 있느냐”고 물었고 김 박사는 “박정희 시대의 새마을운동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현실과 발전수준에 맞도록 응용해야 한다. 새마을운동의 성공과 실패 사례에서 성공의 조건과 실패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 또 새마을운동 과정에서 새마을지도자를 육성했듯, 현 정부도 자치활동에 헌신할 사람을 모아 전문 인력으로 양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튜브 생중계로 세미나를 시청한 한 참가자는 “외국 사례들 중 한국이 배워야할 모델은 무엇이냐”고 질의했다. 이에 김 박사는 “주민자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토의하고 연구해서 방안을 찾아야지, 획일적인 모델을 개발해 전국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 주민자치 현장에 계신 여러분들이 답을 찾는데 앞장서 달라”고 당부하며 세미나를 마무리했다. 

한국자치학회가 베네수엘라 주민자치운동의 역사와 공과를 짚어보고 우리나라 주민자치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개최한 연구세미나는 이날로 마무리됐다. 한국자치학회는 지난해 12월 1회(‘차베스 주민자치 운동노선의 빛과 그림자’, 안태한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를 시작해 1월 18일 2회(‘베네수엘라 주민자치위원회의 형성과 발전’, 허석열 충북대 명예교수), 25일 3회(‘차베스 포퓰리스트 레짐의 작동 구조와 차베스 공동체주의’, 김영섭 웹이코노미 대표이사)’ 세미나를 개최했다. 

사회를 맡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그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차베스 정책을 벤치마킹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는데, 베네수엘라 주민자치운동의 정확한 실체를 규명해봄으로써 한국 주민자치 발전 방안을 모색하자는 뜻에서 4차례에 걸쳐 세미나를 진행했다”며 “발표와 토론을 통해 외국 사례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국내 사례와의 비교연구 필요성도 제기됐다”고 말했다. 

전상직 한국주민자치중앙회 대표회장은 “베네수엘라는 경제적으로 망했지만 차베스 정권은 여전히 살아있다. 나라는 망하고 정권을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베네수엘라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자는 뜻에서 세미나를 개최했다. 앞으로 다각적 연구와 토론으로 우리 실정에 맞는 주민자치를 설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공공성(公共性)’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연구세미나95]
  • 문산면 주민자치회, 주민 지혜와 협의로 마을 발전 이끈다
  • 제주 금악마을 향약 개정을 통해 보는 주민자치와 성평등의 가치
  • 격동기 지식인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연구세미나94]
  • 사동 주민자치회, '행복한 끼'로 복지사각지대 해소 나서
  • 남해군 주민자치협의회, 여수 세계 섬 박람회 홍보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