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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주민자치제도뿐만 아니라 주민의 자치활동도 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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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주민자치제도뿐만 아니라 주민의 자치활동도 혼재”
  • 김지영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사회학과 교수
  • 승인 2019.02.0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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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사회학과 교수.
김지영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사회학과 교수.

김찬동 교수 발제에 대해 현행제도의 문제점과 앞으로 검토할 부분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지만, 이와 같은 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것과 실행하는데 있어 먼저 생각해 봐야할 문제가 있다. 본인은 발제자가 다루고 있지 않은 영역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보고자 한다.

문제 제기의 요점은 주민자치 영역과 활동이 혼재돼 온 역사가 짧지 않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주민자치가 처음부터 시민사회 영역의 공적 활동에 머물러 있었다면 좋겠지만, 발제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통·반장 제도와 같은 정부 영역의 공적활동, 마을공동체 사업과 같은 정부 영역의 사적활동, 아파트단지나 골목 시장상인회 같은 자치체 활동 등이 여기저기서 오랫동안 다양한 ‘주민’에 의해 이뤄져왔다.

이와 같이 다양한 영역에 참여했던 주민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주민자치’라는 말은 직접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자신들의 활동을 주민자치라고 생각하면서 활동해 왔을지도 모른다. 달리 말하면, 주민자치는 제도만 오랫동안 혼재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것이 주민의 자치 활동이라고 생각하고, 활동을 이어온 주민의 생각과 신념, 이념들도 오랫동안 얽힌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을 토대로 보면, 주민자치의 본래적 의미나 ‘당연히 이런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당위성이라는 차원을 넘어, 이미 자신의 활동이 주민자치의 한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소신과 신념을 갖고 활동해온 사람들은 지금의 주민자치 개념의 재정립과 법안이 만들어지는 것을 얼마나 자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인지하고 있을지는 그리 명확하지 않다.

앞으로 주민자치 개념이 명확해지고, 주민자치인 활동과 그렇지 않은 활동이 구분되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인력과 사업, 재정이 함께 움직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인적자원과 물적자원의 재배열 과정에서 어떤 주민이 주민자치의 영역에 남아있게 되고, 어떤 주민이 주민자치로부터 멀어지게 될까? 주민자치에 참여하는 주민이 소수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방안을 고안해야할 것인가?

제도가 만들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도가 만들어지는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 제도가 본래의 취지에 맞게 활용되고 지켜지는 것이다. 제도를 활용하고 지키는 주체는 결국 인간, 발제의 맥락에서는 ‘주민’이라고 할 수있다. 지금까지 주민자치의 애매한, 애매하기 때문에 매우 넓었던 스펙트럼 속에서 각자의 신념을 갖고 활동하고 있었던 다양한 주민들이 주민자치의 명확화 과정 속에서 돌이킬 수 없는 분열을 경험하거나, 서로 배척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앞으로 제도 개선과정에서 주의를 기울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전상직 회장 발제에 대해 주민자치 개념을 ‘연관된 지역의 생활관계들을 지역 주민들이 자치하는 과정과 체계’라고 명확히 정의한 후에 논의를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에 발제자의 주장이 매우 명쾌하게 읽힌다. 그러나 여기서 주장하는 것처럼 통·리와 같은 작은 단위에서 주민 활동을 주체적으로 하고 싶어서 신고제든 승인제든 주민자치회가 운영될 경우, 과연 주민자치회는 어느 지역에서 활발하게 작동하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누가 주민자치회를 원하는가’하는 물음과도 관련 있다. 주민자치회가 통·리와 같이 일상생활을 공유하거나, 일상의 공간을 공유하는 실제적인 좁은 단위로 좁혀지면, 주민 간의 관계가 긴밀한 지역일수록, 오랫동안 그 지역에서 함께 공존하며 상호작용을 한 경우일수록, 문제를 함께 풀려는 의지를 가진 주민이 많은 지역일수록 주민자치회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활동을 전개해 나가려고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시 말하면, 주민자치회를 실제적인 조직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구체화될수록 지역이 가진 특성에 영향을 크게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1인가구가 유독 많은 도시지역이나, 이사 빈도가 매우 높은 지역, 경제적인 불안정으로 이웃 주민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거의 없는 가구가 많은 지역, 이웃과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나 마을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거나 사업을 일으킬 생각을 거의 갖고 있지 않은 가구들이 집중돼 있는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주민자치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부족할 것이다. 또 주민자치회가 제대로 작동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가 생겨날 것이다. 주민자치 주체가 주민이기 때문에 사회적·경제적 환경은 주민자치회 활동 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러므로 제도 설계와 함께 고민할 점은 주민자치회라는 제도를 많은 주민이 환영하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방안일 것이다.

주민자치라는 이름이 제대로 작동하기도 전에 우리 사회는 행정이 담당하는 분야가 점점 더 확대되고, 행정이 해주지 못하는 서비스를 시장에서 구입해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주민자치회가 아니더라도 몇몇의 주민끼리 의견을 모아 행정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혹은 개인이 행정체제에 기대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또 행정이 아니더라도 개개인이 시장에서 자신이 필요한 서비스를 구입하거나, 혹은 그 지역에 오래 머물 예정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고, 일정 기간 묵인하고 지나쳐 버리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주민끼리 마음을 모아 어떤 사업을 기획하고, 서로의 의견을 조정하면서 때로는 갈등을 겪어가면서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비용과 시간이 들더라도 오히려 행정과 시장의 서비스를 활용하는 것이 자신의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와 같은 환경 변화에 주민자치회는 얼마나 잘 대처할 수 있을까? 이런 변화에도 여전히 주민자치회는 사람들이 만들기 원하는 조직일까? 이와 같은 근본적인 물음이 제도 마련과 함께 이뤄지지 않는다면, 주민자치회는 제도를 활용하는 주체인 주민에 대한 고려가 담기지 않은 제도로 남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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