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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글] 대한민국 도약의 새로운 동력 형성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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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글] 대한민국 도약의 새로운 동력 형성을 위해
  • 전상직 한국주민자치중앙회 대표회장
  • 승인 2018.03.0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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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직 한국주민자치중앙회 대표회장
전상직 한국주민자치중앙회 대표회장

지금 우리에게는 '실천할 수 있는 분권'과 '성공할 수 있는 자치'를 기획하는 것이 시대적인 사명으로 주어져 있다.

지방자치, 관료와 주민 구분 없는 지평

지방자치는 ‘단체자치’와 ‘주민자치’로 나눈다. 지방자치 선진국에서는 주민자치가 지방자치제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어 굳이 단체자치와 주민자치로 나눠서 대립적인 논쟁을 할 필요가 없다. 주민의 관료 지배가 잘 설계돼 있고, 관료의 주민 봉사가 잘 이뤄지고 있어 지방의 행정주체를 관료와 주민으로 나눌 필요가 없고, 방식을 행정과 자치로 나눌 필요가 없다. 그러나 주민자치가 성숙되지 못한 한국에서는 주민자치 성립과 발전을 위해 단체자치와 주민자치 속성을 따로 분리해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조선의 향촌에서는 단체자치 전통보다 주민자치 전통이 훨씬 더 강했다. 현재의 시·군·구인 부·목·군·현에는 수장만 파견됐고, 읍·면·동에 해당하는 지역이나 계층은 순수하게 마을의 사람들에 의해 경영됐다. 조선의 향촌은 지역을 나의 마을로 승인하고, 주민을 이웃으로 승인하고, 마을의 대소사를 나의 일로 승인하는 공동체로 성숙했다.

향촌자치, 조선의 자본이 되다

임진왜란 이전의 향촌자치체계였던 ‘향약’은율곡의 지적대로 생계에 허덕이는 주민들에게 도덕을 강요하는 폐해를 내포하고 있었지만, 양반들의 도덕적인 모범으로 상민들에게 향촌자치에 대한 동의를 얻어냈다. 따라서 마을을 위해 개인의 미덕을 발휘하는 것이 주민의 덕목으로 승인되고 발휘됐다.

조선의 향촌자치로 형성된 조선향촌의 사회적인 자본은 임진왜란 시 의병(義兵)이라는 형식으로 마을의 미덕을 넘어서서 국가의 공덕으로 발휘됐다. 국가가 기획하지 아니했지만 마을의 미덕들이 국가를 구출하는 공덕으로 발휘된 것이다. 또 세계 유례가 없는 사회적 시장체계인 ‘두레’가 형성됐다. 조선의 향촌자치는 이처럼 공동체를 배태할 수 있는 체계였으며, 조선의 향촌지도자들은 적어도 중기까지는 마을을 위한 주민들의 이타성을 선순환구조로 형성했다.

일제 강점기, 관료가 사회 파괴

그러나 훌륭한 조선의 향촌자치를 일제는 식민 통치를 위해 읍·면·동을 설치해 지방을 총독부 행정으로 완벽하게 편입하고, 통·리를 설치해 주민자치영역도 행정의 영향력 하에 둬서 국가의 공덕이 될 수 있는 주민자치의 전통을 뿌리째 파괴했다. 주민자치가 배태될 수 있는 뿌리마저도 없애 버렸다. 이제는 아직도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마을에서 미덕이 형성되고, 마을의 미덕이 대한민국의 공덕이 되도록 자치와 분권을 기획해야 한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혁명을 할 것인가 혁신을 할 것인가

먼저, ‘만인의 일을 만인에게’돌리는 분권(分權)도 ‘만인의 일을 만인이’하는 자치(自治)도 녹록하지 않지만, 분권과 자치를 동시에 이루는 것은 훨씬 더 녹록하지 않다. 자치로 분권을 이루면 혁명이 되고, 분권으로 자치를 이루면 혁신이 된다. 그러므로 과감하게 분권하고, 분권이 초래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다.

지방은 아직도 식민지다

‘분권 차원’에서 국가가 할 일은 국가가 하고, 시·군·구가 할 일은 시·군·구가 한다는 당연한 전제를 아직도 우리는 법령이나 제도 어느 것으로도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수권 차원’에서 시·군·구는 국가가 기대하는 시·군·구로 경영되고 있지 않으며, 주민들이 바라는 단체로도 경영되지 못하고 있다. 분권도 자치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치 차원’에서 주민들은 아직도 마을의 일이 나의 일이 아니라 관료의 일로 생각하고 있으며, 주민들과 이웃으로 함께할 기회가 없으며, 마을의 일을 함께할 수 있는 의지도 능력도 체계도 없다.
 
주민은 아직도 졸(卒)이다

주민자치는 주민이 주체고, 자치가 내용이고, 마을이 대상이다. 1999년 주민자치센터는 주민도 없고, 자치도 없다. 관료들이 주민자치 기획을 독점해 학계나 현장의 지성이 주민자치정책에 반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3년 시범실시 주민자치회도 대동소이하다. 성공에는 다소 부족했지만, 학계의 연구를 관료들이 뜯어내고 고쳐서 결국은 주민자치가 아닌 주민관치로 만들었다. 2017년 서울형 주민자치회는 주민과 자치가 없으면 주민자치는 반드시 실패한다는 경험을 반영하지 않고, 서울시 행정주도로 1999년 주민자치위원회의 실패를 관치로 확장시키고 있다.

자치분권에 대한 정치적 판단들이 정략에 머무르지 않고 성공할 수 있는 정책으로 탄생하기 위해서는 경험과 현장으로부터 유효한 분권 방안과 자치 방안을 충분히 도출해야 한다. 이와 함께 자치분권 행정이 성공할 수 있는 정책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국가, 그중에서도 행정부의 시각을 벗어나 국가·시장사회를 아우르는 자치분권 지평의 확보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자치분권에 대해서 정치적으로 명확하게 결단했지만, 정책적으로는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다. 따라서 ▲지방을 식민지에서, 주민을 졸에서 벗어나게 하는 지혜를 ▲학문, 정책, 현장 삼자에서 ▲자치와 분권의 양자가 활성화될 수 있는 학문적 생태계와 정책적 그리고 생태계 현장의 생태계가 활성화되길 바란다. 자치는 사람을 인격자로 만들어 주고, 마을을 공동체로 만들어 준다. 그러므로 자치는 사람에게 있어서나 마을에 있어서나 기본적인 양식이 된다.

※ 본고는‘2018 한국지방자치학회 동계학술대회’ 개회식 축사를 수정·보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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